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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드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페스탈로치는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 인류의 발전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 <페스탈로치의 생애와 사상> 페스탈로치는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 인류의 발전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 박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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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페스탈로치 아니?"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 파스퇴르였다."

10월 10일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새들마을학교가 함께 준비한 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발제를 듣기 전 지인과 나눈 대화다.

페스탈로치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근대교육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저서도 <은자의 황혼>(서문문고)과 <겔트루드는 어떻게 그의 자녀를 가르치나>(한국학술정보(주)) 정도다.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을 들어도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을 요약해 보겠다. 특별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10월 10일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새들마을학교가 함께 준비한 교육문화연구학교 2회가 열렸다.
▲ ‘페스탈로치를 통해 본 근대교육’ 발제 중 10월 10일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새들마을학교가 함께 준비한 교육문화연구학교 2회가 열렸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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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지식), 가슴(도덕), 손(기술)을 하나의 인격으로 조화롭게 도야하는 전인교육.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고가는 사랑과 믿음을 통한 가정교육. 인간의 발달 순서에 맞게 구성된 수(수학), 형(기하), 음(언어)의 교육. 암기를 통한 주입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내재된 것을 스스로 계발시키는 자발성의 원리. 노작 활동을 통한 생활 중심 교육. 자연적 권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 교육.

전인교육은 학교 다닐 때 주구장창 들었던 지덕체 교육과 비슷하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학교 교과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순차적으로 짜여 있다. 아이들에게 내재된 힘을 길러내야 한다며 아이를 중심에 둔 교육은 요즘 지나칠 정도다. 헌법은 모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이 이게 다가 아니지만 더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우리에게 새로울 게 하나 없다. 페스탈로치는 정말 특별할 게 없는 교육가였던가.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아이를 기를 수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위해선 머리와 생니를 팔아야 했다.
▲ 레미제라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아이를 기를 수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위해선 머리와 생니를 팔아야 했다.
ⓒ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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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18세기 유럽, 영화 <레미제라블>을 기억하는가. 가난한 자는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 있어야 했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아이를 기를 수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위해선 머리와 생니를 팔아야 했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그 비참함을 전복시킬 수 없었던 시대.

페스탈로치가 스위스인이긴 했지만 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는 <레미제라블> 속 혁명을 보기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런 현실에서 페스탈로치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자식을 버리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때 가정교육을 이야기했다. 서로 물고 뜯지 않으면 당장 내 먹을 것이 없어지는 판에서 도덕적 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단지 먹고 살려고 기술을 배워 일하며 사는 인간이 아니라 도덕성, 소명을 가지고 일하며 노동의 기쁨으로 누리라고 이야기했다.

페스탈로치가 이런 현실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더 철저히 현실 속에서 살았다. 인생 대부분은 고아와 가난한 이들과 살았다. 그들과 함께 살며 실패했고 또 실패했다. 세웠던 고아원이 학교가 농장이 망하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그의 생을 보면, 빛을 찾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평생 가난과 실패와 싸워야 했다.

발제를 맡은 새들마을학교 김민수 선생님.
 발제를 맡은 새들마을학교 김민수 선생님.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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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한 김민수 선생님은(새들마을학교) 철저히 현실을 살았기에 페스탈로치의 삶과 교육 이론이 어렵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수탈된 백성으로 사라져 갈 아이들의 삶을 새로운 삶의 소망과 신앙적 가치로 전환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와 페스탈로치의 만남이 다행이라고 했다.

"페스탈로치를 통해 가난한 아이에게의 교육이 직업교육에서 지적인 능력,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 윤리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전인교육으로 변환된 것이다.

그것이 한 번 솟아올랐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세계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우리가 받고 있는 지금의 교육이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것을 계속 외워야 하는 교육이 아니다. 직관에 따라 인식하고,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공부를 하는 것이다.

론 지금 우리 공교육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 입시와 경쟁 속에 정말 페스탈로치의 교육이 구현되고 있는지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준다. 이 현실 속에 어렵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수탈된 백성으로 사라져 갈 아이들의 삶을 새로운 삶의 소망과 신앙적 가치로 전환시켜 준 페스탈로치가 있어 다행이다. 사그라지지 않고 지금 우리의 장에서 만나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 인류의 발전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교육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도야된 존재, 나만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그가 맺고 싶은 교육의 결말이다. 심지어 철저히 개인에게 한정될 수밖에 없는 신체의 도야조차 그에게는 조국 국민들의 삶에 충실히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조국에 충실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 우선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이웃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식구를 위해서, 나아가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도 건강해야 한다. 요새를 지키듯 스스로 건강을 지키자." (페스탈로치)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식구를 위해서,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 요새를 지키듯 건강을 지키자."(페스탈로치)
▲ 새들마을학교 체육시간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식구를 위해서, 이웃과 나라를 위해서 요새를 지키듯 건강을 지키자."(페스탈로치)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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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강의 주제였던 '한글날에 헤아려 보는 참된 교육 정신, 충(忠)의 길'과도 상통한다.(관련 기사: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자기 한 몸조차 챙기기 힘든 그 비참한 현실 속에서 나를 위한 것이 너를 위한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그렇게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가난한 자의 구원자, 민중의 목자, 고아의 아버지, 인류의 교육자, 민중학교의 창설자, 인간, 그리스도인, 시민으로 남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았다. (페스탈로치 묘비에 적힌 글)

중세와 비교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처절하다. 캄캄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공부의 참의미와 기쁨을 잃어버린 채 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 오로지 나만 위하는 교육 현실 속에서 나만 아는 삶이 다른 이들의 삶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 무지몽매한 채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자라나는 아이들. OECD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다 말하는 아이들. 그로 인해 파생된 학교 폭력, 성적 비관 자살, 왕따…….

첫날 난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무겁게 느꼈다.(관련 기사: 선생님? 이제 기억났어요) 캄캄함 속에 잠시 멈췄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길이 어디 있을까. 페스탈로치가 걸었던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캄캄한 시대 캄캄한 인생을 살았던 페스탈로치.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묵묵히 걸어가 결국 그 빛을 발견하고 자기 눈앞에 있던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을 선사한 사람. 책 속의 교육 이론이 아니라 그 교육 이론대로 산 사람.

그 삶이, 그 걸음이,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이 사회의 교육에 그리고 그 교육을 만들어온 우리 어른들에게 도전을 던진다. 언제까지 그렇게 캄캄하다며 멈춰 있을 거냐고.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용감하게 생명의 교육 그 길을 향해 걸어가라고. 그 길 끝에 반드시 빛을 만나게 될 거라고.
 
우리는 페스탈로치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 발제 후 모둠 나눔 우리는 페스탈로치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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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용감하게 생명의 교육 그 길을 향해 걸어가자.
▲ 발제 후 모둠 나눔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용감하게 생명의 교육 그 길을 향해 걸어가자.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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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http://club.cyworld.com/saedeulmaeul)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대안교육, #페스탈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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