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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벨 문학상 참피언>이라는 제목의 기사.(중간의 사진이 파트릭 모디아노)
 <프랑스, 노벨 문학상 참피언>이라는 제목의 기사.(중간의 사진이 파트릭 모디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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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 문학상이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에게 수여되었다. 1968년 23세의 나이로 발표한 데뷔작 <별의 광장>(La place de l'étoile)부터 최근 내놓은 신작 <네가 동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Pour que tu ne te perdes pas dans le quartier)까지, 근 50여 년 동안 30개의 작품을 발표한 모디아노는 많은 프랑스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모디아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책을 출판하는 걀리마르 출판사 사장은 10월 6일자 <르피가로>와 한 인터뷰에서 "모디아노는 최근 몇 년간 계속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게 사실이지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언젠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수상은 모디아노에게도 뜻밖의 소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모디아노는 올해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최종 경쟁자 리스트에 올랐다.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마권업자들이 꼽은 최종 경쟁자 5위에 들었던 모디아노는 결국 미국 작가 필립 로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케냐 작가 응구기, 레바논 시인 아도니스, 벨라루스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세예비치 등을 제치고 올해 노벨 문학상을 차지하게 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한 프랑스 작가, 모두 15명

걀리마르 출판사에서 발행한 모디아노 작품들과 최신작 <네가 동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걀리마르 출판사에서 발행한 모디아노 작품들과 최신작 <네가 동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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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모디아노의 수상으로 노벨 문학상을 탄 프랑스 작가는 총 15명으로 늘어났다. 이번 모디아노의 수상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데, 프랑스 작가 쉴리 프뤼돔이 1901년 첫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프랑스는 노벨 문학상 수상 최다 국가'라는 타이틀을 더욱 굳건히 해줬기 때문이다.

15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중 미스트랄의 작품은 프랑스 남서부 지역 언어인 옥시탄 언어로 이루어졌고, 중국 작가 가오싱젠 작품은 일부 희곡만 불어로 작성하고 나머지 소설은 중국어로 썼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처음이자 마지막 작가로 남아있는데 이유는 "어느 누구도 살아생전에 어떤 종류의 영광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르트르를 포함한 15명의 노벨 문학상 프랑스 작가 중에서 미스트랄과 가오싱젠을 제외한 13명이 불어로 작품을 쓴 작가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 불어로도 작품을 쓴 사무엘 베케트와 1911년의 불어권 벨기에 작가 수상자 모리스 메테를링크까지 감안하면, 프랑스어를 사용해 작품 활동을 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결국 15명된다.

스웨덴 노벨 아카데미는 따로 자신들의 통계를 내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리스트엔 11명이 올라가 있다. 여기에는 1998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중국 작가와 알제리에서 출생한 카뮈, 마다가스카에서 출생한 시몽, 과들루프(프랑스령)에서 태어난 페르스 등 4명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서양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국가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수는 프랑스 작가 15명, 미국 작가 12명, 영국 작가 10명, 독일 작가 8명, 스웨덴 작가 8명, 스페인 작가 6명, 이탈리아 작가 6명, 폴란드 작가 4명, 아일랜드 작가 4명 등이고 언어권으로 분류하면 영어권 27명, 불어권 16명, 독일어권 13명, 스페인어권 11명, 스웨덴어권 7명, 이탈리아어권 6명, 러시아권 5명, 폴란드어권 4명, 노르웨이권 3명이다.

그동안 통계를 따져보면 알겠지만, 노벨 문학상은 대부분 서양 작가에게 수여되었다. 이에 대해 <리베라시옹> 한 독자는 10월 9일자 기사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리스트를 보면) 일본인, 중국인, 인도인, 브라질인, 아르헨티나인 등 몇 몇 나라만 예로 든다고 쳐도 이들이 전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아니면 서양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라고 댓글을 남겼다.

이런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앞서 언급한 수상자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양 작가가 아닌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고 있는데, 인도의 타고르(1913), 일본의 가와바타(1968)와 오에(1995),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1986), 이집트의 마푸즈(1988), 터키의 오르한 파묵(2006), 중국의 모옌(2012) 등이 있다. 한국은 아직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어권 언론들은 모디아노의 수상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모디아노가 프랑스 내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지만 그 외의 다른 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기사에서 한 기자는 "올해 노벨 문학상이 미국 작가 필립 로스에게 돌아가지 않은 게 유감스럽다"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왜 당신은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 영국인은 그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을 잘 알지 못하고 모디아노라는 작가도 잘 모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의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당황스럽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웹사이트 <더 데일리 비스트>와 영국의 <더타임스>도 '파트릭 모디아노가 대체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영어권 언론들의 이런 반응은 영어로 번역된 모디아노의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디아노의 작품은 세계 36개국 언어로 발표됐지만, 50여개 작품 중 10여개 만이 영어로 번역·출판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익명의 개인들을 건져낸 모디아노

기자가 소장하고 있는 모디아노 작품들
 기자가 소장하고 있는 모디아노 작품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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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모디아노를 선택한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를 '현시대의 마르셀 푸르스트'에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가장 포착하기 힘든 인간의 운명을 묘사하고 나치 점령시대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억의 예술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모디아노의 작품에는 기억과 역사, 과거로의 탐구, 정지된 시간, 흔들리는 기억의 개념들이 항상 넘쳐난다. 간략한 단어와 수많은 침묵으로 이루어진 그의 글은 묘한 분위기와 우울한 서정성을 자아내게 한다. 모디아노만의 독특한 작품 분위기, 슬픈 음악, 대부분 성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주인공들이 거쳐 간 수많은 장소들, 얼마 되지 않는 한두 개의 단서로 그들의 과거를 찾아가는 시간 여행.

모디아노는 역사에서 버림받은 채, 길 잃고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익명의 개인들을 망각에서 건져내어 그들에게 살과 피를 되돌리는 작업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뚜렷하지 않은, 뭔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의 책은 읽는 재미도 쏠쏠한데, 기자도 단골 독자로 다른 많은 프랑스인들처럼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새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산다. 상업성에 의연하지 않고 초기 데뷔시절부터 지금까지 근 50여 년간 계속 시간을 헤쳐서 잃어버린 자아성을 탐구하는 그만의 작품세계에 박수를 보낸다.


태그:#파트릭 모디아노,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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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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