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나는 경찰서 내부에 있는 새로운 건물로 안내 받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강력계다. 근데 내가 왜 강력계로 가야 하는 거지? 내가 벌인 행동이 '강력 범죄'라도 된단 말인가. 다르게 생각해보면 살인, 강도, 폭행 이런 사건 처리하기에도 모자를 형사들이 나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일이 강력 범죄로 분류되는 사실이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관련기사] '박근혜 풍자 포스터' 옥상에서 뿌렸더니...

이런데다 기운 빼시면 진짜 강력범죄자는 언제 잡을겁니까?
▲ 강력범죄 용의자가 된 나 이런데다 기운 빼시면 진짜 강력범죄자는 언제 잡을겁니까?
ⓒ 강드림

관련사진보기


특유의 투박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조서작업은 시작되었다. 조서가 시작되기 전 '진술거부권'을 쓰겠는지 여부를 묻는 절차가 있다. 진술거부권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쓰시겠어요?" 
"일단 봐서요." 
"그럼 제가 묻는 것에 다 대답하시겠다는 거죠?" 
"아니 아저씨가 뭘 물어볼 줄 알고 제가 다 대답하나요."

확실히 경찰이란 한국말을 참으로 피곤하게 악용하고 있는 집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꼬투리 잡고 늘어지기는 기본이고, 불필요한 억측과 개연성 붙이기 등등 말로써 이미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나이,성별, 주소, 직업, 직장명, 가족관계, 종교 등 이 사회에서 어릴적부터 관습적으로 질문받아온 온갖 불필요한 신상 파악이 쏟아진다. 직장명이나 가족관계와 종교는 이 사건과 거의 관계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인데 그것을 굳이 답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또 그것을 경찰은 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저들에게 그것은 보호의 대상 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인 듯했다. 사실, 경찰의 존재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정보를 더 잘 보호해달라고 만든 직업이 아닌가.

그리고 문제의 포스터 질문이 이어졌다. 'WANTED'가 무슨뜻이죠? 'MAD GOVERNMENT'는요? 난데없이 초등학교 단어 테스트 같은 걸 하기 시작했다. 그 어렵다는 경찰시험을 준비했다는 사람이 그 뜻을 몰라서 내게 물은 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내게서

'저는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 이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선동할려고 했던 것입니다'라는 진술을 얻어서,

'이사람은 이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불순한 사람이니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한다'라는 그럴싸한 법률적 근거롤 씌워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뜻이 여실히 느껴졌다.

WANTED가 무슨뜻인지 MAD GOVERNMENT가 무슨뜻인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WANTED가 무슨뜻인지 MAD GOVERNMENT가 무슨뜻인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 이하

관련사진보기


'아저씨는 정말 제가 죄를 졌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사실 나를 취조한 형사는 특별히 정치적 신념과는 거리가 먼 그냥 '생활인'으로 보였다. 말그대로 먹고살려고 택한 일이 형사였고,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고 그 일을 하는 우리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아버지이고 가장 말이다. 그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나같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전화를 하고, 조서를 받고,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일이다. 왠지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사회는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1시간반 가까이 조사를 받고나자 진술한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지장을 근 30번은 찍은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본인임을 인증하는 지문판독기까지 거쳤다. 거기에는 10년도 전에 내가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찍었던 지문이 화면에 그대로 있었다. 이 사회는 이런 식으로 '오래전부터 나를 관리해오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사회에 있어 나는 그냥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사를 끝마쳤다. 지난 기사 덕분에 나는 가히 폭발적인 조회수와 악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조사내내 마음이 딱히 어둡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이 사회가 가진 부조리에 분노하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예술과 행동으로 저항할 것이다. 가만히 입을 닫고 있다가 겨우 술이나 한잔 들어가야 욕 몇마디 하는 것은 사실 저들에 '동조' 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름이 아니라고 본다.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 '겁먹는 것'. '그래서 입을 닫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경찰 조사의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계속 시끄럽게 떠들겠다.

대한민국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걱정마십시요. 신에게는 아직 12만장의 포스터가 있습니다.
 걱정마십시요. 신에게는 아직 12만장의 포스터가 있습니다.
ⓒ 강드림

관련사진보기




태그:#박근혜풍자, #이하작가, #강드림, #인간실격패, #삐라살포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