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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열아홉 살 청년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는 1973년 봄, 뉴욕 슬럼가에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띄운다. 교육적 이상주의에 불타던 크리스는 그해 늦가을, 후에 아내가 된 벳지와 이 학교를 찾았고, 그 뒤로 40여 년을 이곳에 머무른다. 그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몸으로 체득한 지혜를 글로 썼다. 크리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지난 7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5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크리스가 쓴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를 함께 읽었다. 1장부터 7장까지 읽고 미국의 대안학교 알바니 프리스쿨의 사례를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문제아는 없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공양희 옮김/ 도서출판 민들레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공양희 옮김/ 도서출판 민들레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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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 프리스쿨은 3살에서 15살까지 아이들 60여 명이 다니는 대안학교다.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는다. 학교는 아이를 쉽게 문제아로 판단하지 않는다. 크리스는 무마사토라는 다섯 살 여자아이의 예를 든다.

무마사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열 명의 형제 가운데 아홉째인 무마사토는 거의 매일 총격전이 벌어지는 슬럼가에서 자랐다. 늘 애정에 굶주려 있는 이 아이는 때를 가리지 않고 분노를 폭발했고,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사와의 일대일 접촉에 집착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날카로운 성향의 이 무마사토를 '문제'가 있는 아이로 보지 않았다. 참고 견디며 관대하게 지켜봤다. 여전히 거칠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마사토는 부모와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크리스는 아이의 타고난 생명력을 해치는 일 없이 자유롭게 아이를 만난다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 프리스쿨이 주목하는 것은 아이들의 힘을 믿는 것이다. 아이들은 배움에 대한 타고난 의지가 있는데, 두려움 앞에서 이 의지는 질식해 버린다고 크리스는 말한다. 부모가 가진 두려움은 아이에게 전달된다. 부모가 지닌 공포나 의심, 불안 등의 감정은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두려움을 심는다. 두려움을 품은 아이들은 경직되고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의 두뇌는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하고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해독제는 신뢰다. 신뢰는 미지의 것과 연관되어 있고 미지의 것은 당연히 위험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전폭적인 믿음을 보여 줄 때 훨씬 빨리 또 쉽게 배우고, 그 배움은 특정한 기간 안에 끝나지 않고 평생을 두고 이어진다. 프리스쿨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살아 있는 증거가 되어 주고 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141~142쪽)

나의 자유가 너의 자유를 방해한다면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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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프리스쿨이 아이들을 신뢰하고 잠재력을 끝까지 믿어 주는 모습에 공감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강압하는 형태의 공교육, 입시를 위해 한 줄 세우기를 강요받아 온 자신의 경험 때문에 자유와 신뢰를 강조하는 프리스쿨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생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깊이 사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배움의 기폭제를 두려움으로 붙잡을 것인가, 신뢰로 부여잡을 것인가를 구분하는 게 진정한 배움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프리스쿨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다.

'프리스쿨은 자유를 강조하는데, 한 친구의 자유를 보장해 주려다가 다른 친구들의 자유가 침해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유만 강조한다면 교사는 어떻게 학생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자유를 주고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 자유를 보장해 주되, 배움의 과정에서 교사의 개입은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철학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답했다. 영국의 억압에서 자유를 쟁취한 미국의 역사적 배경에서 자유와 개인주의는 미국인들의 뼛속 깊이 배인 중심 가치다. 하지만 미국의 공립 학교가 이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획일적, 억압적 교육으로 치닫게 된 데에 대한 반작용으로 프리스쿨에서는 이 자유를 더욱 제대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 보았다. 

최봉실 교장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철학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최봉실 교장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철학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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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책을 보다 보면 크리스의 생각이 변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를 강조하던 그는 후에 "세월이 흐르면서 때로는 다루기 어려운 아이에게 우리 학교가 너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줄 필요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최 교장은 "크리스는 무조건 자기 맘대로 하려는 아이를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한 아이를 끝까지 제대로 만나려고 했던 그는, 결국 학교는 한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위한 것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고 전했다.

"어떤 경우든 반항적인 수업 거부자들이 집중과 주의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인습적인 학교 교육으로부터 당분간의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 찬 아이들에게 배움이 얼마큼 즐겁고 신나는 것인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일 역시 중요하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113쪽)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진짜 자유는 내 주장만이 관철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몸담은 관계 속에서 얼마나 책임감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사랑으로 임하고 있는가를 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책임감을 갖고 성숙한 인격을 쌓는 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최봉실 교장의 말이다. 마음대로 행동하던 아이들과, 아이들의 선택에 1차적으로 교육의 권위를 둔 크리스는 야외 오두막 교육 장소인 '레인보우 캠프' 경험을 통해 새로운 교육의 방향을 경험한다. 이곳은 어려움을 참아 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조절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 장소였다. 또 어려움을 참고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훈련을 통해 책임감을 몸에 익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권위와 자유의 이중주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이 전체 토론하는 모습.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이 전체 토론하는 모습.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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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 교장은 교사의 권위 개입과 학생의 자유를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을 경계했다. 사실 권위와 자유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서로 갈등이 생겼을 때나 어른들이 서로 갈등을 겪을 때, 그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일까를 분별하는 데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한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면 구성원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되지요.

그 상황에서 분명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무엇이 본질인지 분별하고 끝까지 찾아내려고 하면,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본질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결국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그것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은 진정한 권위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온전히 자유를 경험하게 되지요. 참된 권위와 자유를 함께 경험하면 이를 분리하지 않게 됩니다."

최 교장은 권위는 교사이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권위는 교사가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때 비로소 확보되는 것이라고 했다. 갈등 상황이 생기거나 토론이 잘 안 이뤄질 때는 서로가 자신의 이익에만 파묻혀 있거나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생각하는 경우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두를 고려했을 때는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권위는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역할을 교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끝으로, 최 교장은 한 아이의 리듬에 맞게 교육하는 것은 그 존재를 둘러싼 모든 관계를 고려하는 것과 동시에 가야 한다고 했다. 평시에는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가르치고 배우게 되지만, 때로는 각자의 속도와 상관없이 동시에 반드시 바다를 건너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충분히 함께 한 걸음을 걸어낼 수 있다. 최 교장은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배려할 때 그 아이를 연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크리스의 말대로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믿고 가야 할 바를 분별해 가르칠 때, 아이들은 거뜬히 그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음 시간(11월 14일)에는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8장부터 13장까지를 읽고 토론한다. 문화, 종교, 인종, 계급, 여성과 남성 등 아이들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크리스의 의견을 놓고,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육, #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프리스쿨,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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