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이다.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FA 선수들의 엄청난 몸값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올해 한국프로야구 FA 자격을 신청한 선수들은 모두 19명. 이 중 8명만이 원 소속팀 협상 마감일인 지난 26일까지 구단과 계약을 체결했다. 최대어로 꼽혔던 SK 최정이 4년간 총액 86억 원으로 FA 역대 최고액 계약을 경신한데 이어, 삼성 윤성환(4년 80억 원, 투수 종합 최고액), 안지만(4년 65억 원, 불펜 역대 최고액) 등이 잇달아 신기록 대결에 합류하며 초반부터 FA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LG 역시 프랜차이즈 스타 박용택(4년 50억 원)을 잡는 데 성공했다.

'너무 아쉬워' 1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대 SK 와이번스의 경기. 6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SK 최정이 삼진 아웃당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너무 아쉬워' 지난 9월 12일, 6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SK 최정이 삼진 아웃당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FA 최대어로 꼽힌 최정은 최근 SK 와이번스와 4년간 86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 연합뉴스


억, 소리 나는 FA 시장...

아직 자유 협상이 아닌 원 소속팀과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들에게 들어간 몸값만 약 395억 원으로 거의 400억 원에 육박한다. 삼성이 윤성환, 안지만, 조동찬(4년 28억 원) 3명의 내부 FA를 잡는 데만 173억 원을 들이며 현재 FA 최다 지출 구단에 이름을 올렸다. 2위는 SK로 최정, 김강민(4년 56억 원), 조동화(4년 22억 원)을 잡는 데 164억 원을 들였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FA 시장에서 기록했던 최고 연봉 총액 532억 원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진짜 FA 광풍은 지금부터다. FA 투수 최대어 중 꼽혔던 장원준이 롯데와의 협상이 결렬되며 시장에 나왔다. 롯데 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장원준은 최고 88억 원의 조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 나올 경우 몸값이 더욱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 계약이 성사됐다면 최정의 기록을 뛰어넘는 FA 역대 최고액이다. 장원준이 시장에 나와 선발 투수 영입을 노리는 구단들의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사상 첫 FA 100억 원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밖에도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현역 최다승 투수인 배영수를 비롯해
권혁(삼성), 이재영, 나주환(SK), 김사율, 박기혁(롯데), 송은범, 차일목(KIA), 박경수(LG) 등이 FA 시장에 나왔다. 대다수가 즉시 전력감으로 손색없는 선수들이다. 최근 FA시장의 과열화 양상을 감안할 때 이들의 몸값은 예상보다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 FA 시장의 떠들썩한 돈잔치에 여론은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다. 국내 프로 야구 시장 규모나 선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몸값에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다.

선수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부족... 스타 선수 의존 높아져

한국 FA 시장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대형 계약이 흔치 않았다. 2004년 심정수가 삼성과 60억원에 계약을 맺었던 사례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고액의 몸값이 오가는 경우가 적었다. 20~30억 원대(4년 기준)만 해도 엄청난 대형 계약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2011년 이택근(넥센), 2012년 김주찬(KIA)이 연이어 50억 원을 받으며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강민호는 롯데와 75억 원에 계약하며 심정수의 역대 최고액 기록을 9년만에 경신했다. 정근우(70억 원)과 이용규(67억 원)이 뒤를 이었고, 장원삼(삼성)은 60억 원으로 투수 최고액 기록을 경신했다. 한국 야구가 10구단 시대를 맞이하면서 선수들의 수요는 자꾸 올라가는데 공급은 부족하다보니 결국 몇몇 스타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그러나 정작 고액 FA들이 과연 몸값만큼 그 가치를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강민호는 올시즌 고작 98경기에 출장해 타율 0.229(310타수 71안타) 16홈런 40타점이라는 참혹한 성적에 그쳤다. 한화는 이용규와 정근우를 영입하며 FA 시장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도 3년 연속 꼴찌에 그쳤다. 장원삼은 11승 5패 평균 자책점 4.11로 팀 우승에 공헌했지만, 60억 원 몸값에 어울리는 성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KIA, 양현종 MLB 포스팅 응찰액 수용 거부 KIA 타이거즈가 왼손 에이스 양현종(26)의 미국 프로야구 진출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KIA는 26일 "메이저리그(MLB) 구단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양현종을 영입하겠다고 적어낸 최고 응찰액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7월에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양현종.

▲ KIA, 양현종 MLB 포스팅 응찰액 수용 거부 KIA 타이거즈가 왼손 에이스 양현종(26)의 미국 프로야구 진출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KIA는 26일 "메이저리그(MLB) 구단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양현종을 영입하겠다고 적어낸 최고 응찰액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7월에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양현종. ⓒ 연합뉴스


국내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이 최근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가 포스팅시스템에 받은 냉대는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김광현이 샌디에이고로부터 제시받은 몸값은 200만 달러(한화 22억 원)였다. 양현종은 약 150만 달러(16억 원)로 추정되며, 구단의 반대로 결국 메이저리그 도전이 불발됐다.

올해 FA 시장에서 이 정도 가격으로는 쓸만한 백업 야수나 불펜 투수를 영입하기도 벅차다. 구단 동의 하에 해외 진출 자격을 얻었던 이 선수들이 만일 2년 뒤 국내에서 완전 FA 자격을 얻는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금액을 투자해야햘까.

몸값 높은 최대어들, 정말 그 몸값 다할까

올해 투수 최대어로 꼽히는 장원준이나 윤성환도, 국내 야구계에서 이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보기 어렵다. 타자 최대어 최정은 최근 2년간을 놓고보면 미국 진출을 선언한 강정호보다 개인 성적에 뒤진다. 이들이 과연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면 과연 지금같은 몸값을 기대할수 있을까.

이대호-오승환-류현진 등 진정한 일류급 선수들은 FA 자격을 얻으면 가장 먼저 해외 진출을 생각한다. 결국 일류에는 다소 못미치는 1.5~2류에 가까운 선수들이 국내에서는 슈퍼스타 대우를 받으며 엄청난 몸값 거품을 양산하는 구조다.

한국에서 프로 야구단을 운영하는 데는 대략 연간 200억~400억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선수단 연봉이고, 절반 이상이 고액연봉 선수들의 몸값으로 지출된다. 프로구단들이 중계권과 관중 입장료, 광고 등으로 수익을 내지만, 대부분은 모기업의 예산 지원으로 버텨내는 적자 구조다.

한국보다 야구 수준이 더 높은 일본도 평균 연봉대는 월등히 높지만 FA 선수들의 몸값만 치면 한국이 오히려 더 높을 정도다. 한국 야구의 경우, 정작 무명 선수들의 최저 연봉은 몇 년재 제자리 걸음인데 비하여 일부 고액 연봉자들의 배만 불리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다. 예산은 한정되어있기에 구단은 결국 그 인건비를 메우기 위해 다른 곳의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액 연봉자들이 몸값 대비 제 몫을 하는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이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이야기가 나와도 스타 선수들의 몸값은 치솟기만 하고, 내려 올줄 모른다. 구단은 선수들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올라가서 협상을 하기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이런 현상을 자초한 것은 애초 눈앞의 성적만을 위해 무분별한 지출을 남발했던 구단이기도 하다. 거품을 넘어 증기 수준에 이른 지금의 한국야구 FA 시장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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