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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짧지만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간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옥주현)의 비극을 그린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짧지만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간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옥주현)의 비극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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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관심은 충분히 뜨거웠다. 이미 지난해 11월 EMK뮤지컬컴퍼니의 2014년 라인업이 공개되면서 <모차르트!>, <엘리자벳>, <레베카>를 잇는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의 신작 초연은 전작들의 만족도 대비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에 올해 9월 옥주현, 김소현, 윤공주, 차지연 등 국내 최고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보다 상승했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화려할 뿐 매력적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은 그녀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에서는 흥미로웠으나, 무리한 설정의 엉뚱한 전개는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통해 빛과 그늘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해하지만 공감하긴 어려운 무리수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이니셜을 가진 마그리드 아르노(차지연)는 극의 흐름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이니셜을 가진 마그리드 아르노(차지연)는 극의 흐름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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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최고의 자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기까지 짧지만 드라마틱한 생을 살다간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을 그린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은 소설, 만화, 영화 등의 소재로 심심찮게 등장해왔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아도, 역사의 희생양으로서 그녀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의문이 들었다.

답은 먼저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이니셜을 가진 마그리드 아르노(아래 마그리드)는 궁핍한 생활로 비록 거리에서 구걸하는 신세지만, 빈민을 선동하고 혁명을 주창하는 인물로 극의 흐름 상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극의 초반부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데 비해 혁명이 진행되면서는 왕정의 표적이 된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며 동정심에 흔들린다. 마그리드의 이러한 심경 변화를 두고 캐릭터의 성격이 모호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버금가는 높은 비중감이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마그리드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로부터 보통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그리드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로부터 보통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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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중앙에 자리한 선명한 이니셜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마리 앙투아네트다.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가상의 인물로서 역할한다. 일본 초연에서도 같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 바 있는데, 한국 공연을 위해 스토리 각색은 물론 캐릭터의 비중 및 성격 변화를 시도했음에도 무게 중심이 여전히 마그리드에 기울어져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극의 종반에 드러나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드의 이복 자매 설정은 일순간 멈칫하게 만들며 캐릭터의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는 극의 주제인 정의의 참된 의미마저 왜곡한다. 마그리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군중을 조종하려는 오를레앙 공작과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추잡한 소문을 조작하는 자크 에베르의 행동을 목격하며 혁명의 이면을 발견한다.

또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좌로부터 쫓겨나 단두대에 오르기까지 감시자 자격으로 측근에 있으면서 그들이 왕족으로서만이 아닌 그저 한 인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보통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름의 타당성을 확보한다. 극의 진행상 이복 자매 설정은 오히려 어렵게 확보한 타당성을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 본래의 의미를 퇴색하고 있진 않은지 반문이 필요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

극의 후반부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김소현(좌)/옥주현(우)) 드레스의 화려한 색감이 점점 빠져나가다 결국 흑백만 남게 된다.
 극의 후반부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김소현(좌)/옥주현(우)) 드레스의 화려한 색감이 점점 빠져나가다 결국 흑백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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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금껏 우리가 알던 철없이 순수하고 화려한 모습의 그녀와 그런 모습들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녀의 외로움과 불행을 교차해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에 결정타를 기록한 '목걸이 사건'이나 '바렌 도주 사건', '단두대 처형' 등의 역사 속 사건들은 사실과 허구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새로운 팩션 드라마 한 편을 완성한다.

특히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의 대명사인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한만큼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화로운 비주얼은 '역대 최고급'이다. 18세기 당시 궁중 생활을 재현하기 위해 고증을 거쳐 제작된 풍성한 주름 장식의 드레스와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의 가발은 마레 지구 빈민들의 단순하고 초라한 의상들과 대비를 이루며 귀족과 군중의 갈등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이 강화되면서 그녀의 드레스 주름과 보석장식, 화려한 색감이 점점 빠져나가다 결국에는 흑백만 남게 된다. 이는 경사진 무대와 더불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추락을 은유하며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표현하는데 일조한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로 기억되는 불운한 여인, 고작 14살에 정치적 비즈니스 차원에서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여인, 남편은 죽고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며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했던 여인, 극의 전개에서 보여준 아쉬움과는 별개로 관심 밖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이번 작품을 계기로 한층 더 궁금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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