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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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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이 왜 몰락했습니까? 이용자들이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때문에 유튜브로 사이버 망명했거든요."

2014년은 인터넷 역사에서 어떤 해로 기록될까? 우리나라만 해도 '다음카카오 합병'이란 큰 뉴스로 출발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카카오톡 사찰 암초에 부딪혀 '텔레그램 사이버 망명'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이 '기술'만 앞세우다 보니 정작 사용자 프라이버시 같은 '인터넷 철학'이 부족했던 탓이다. 바로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가 지난 9월 말 펴낸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메디치)에서 지적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정지훈 교수는 최근 정부와 서울시의 '우버(Uber) 택시' 단속에도 큰 우려를 나타냈다(관련기사: 서울시 "우버 신고하면 최대 100만원 지급" ). 우버가 택시 사업자 영역을 침범해 불법 소지가 있는 건 맞지만, 막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국내 기업의 혁신까지 가로막아 해외 업체에 시장을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텔레그램 망명과 지난 2009년 유튜브 망명이 대표적이다.

"우버 택시 섣불리 막으면 혁신 차단... '카카오 택시'로는 역부족"

"단순히 막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앞으로 혁신적인 서비스가 들어올 때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버도 영세한 택시 사업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초기엔 불가 여론이 우세해도 우버를 써본 사람이 늘수록 왜 안심할 수 있고 더 나은 서비스를 못 쓰게 하느냐는 저항이 생겨요. 결국 혁신을 막지 말라는 여론에 우세해지면 법도 바뀔 수밖에 없는데 그 시점이 되면 국내 업체들은 대비가 안 돼 있어 우버 같은 해외 서비스에 시장이 다 넘어가게 돼요. 유튜브처럼 말이죠."

구글 유튜브는 지난 2009년 한국 정부에서 인터넷 실명제 대상이 되자 이를 거부하고 국내 계정에서 동영상 등록이나 댓글 쓰기를 차단했다. 하지만 국내 사용자들은 외국 계정으로 바꾸는 '사이버 망명'에 나서 유튜브는 오히려 더 활성화된 반면 '판도라TV' 같은 국내 사이트들은 '실명제' 장벽에 막혀 사용자가 급격히 줄었다. 이른바 '국내 기업 역차별'일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에도 역행하는 사례다.   

"근시안적으로 우버를 불법으로 취급하고 택시 산업만 지키려했다가는 되레 중장기적으로 국내에서 혁신적인 서비스가 못 나오게 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어요. 택시 시장도 어렵지만 택시 공급을 점차 줄인다든지 택시 기사 월급 보장 같은 공영화 정책과 맞물려 가야 하고, 이와 별도로 국내에서도 우버 같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어야 해요. '카카오 택시'도 하나의 대안이지만, 택시만으로 실효성이 없어요. 우버처럼 단계적으로 늘려가야죠."

실제 우버는 국내에서도 이용자를 기존 택시 사업자와 모바일로 연결해주는 '우버 택시' 외에도 자가용 운전자와 연결해주는 '우버 엑스'와 고급 승용차를 제공하는 렌터카 업체와 연계한 '우버 블랙'(렌터카 업체 대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버 엑스와 우버 블랙이 불법 논란에 휘말리자 다음카카오는 최근 서울택시조합과 손잡고 내년부터 모바일로 택시기사와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가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업체인 '우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진은 '우버엑스' 홍보 이미지.
 국토교통부가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업체인 '우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진은 '우버엑스' 홍보 이미지.
ⓒ 우버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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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가 두둔하는 건 실정법 위반 논란을 자초한 '우버'가 아니라 우버로 대표되는 '공유경제' 패러다임이다.

"우버가 단순히 콜택시 서비스였다면 (기업 가치가) 40조 원씩 평가받겠어요? 서비스 사용자와 제공자의 신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확한 가격을 책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공유 경제' 패러다임이기 때문이죠. 공유 경제는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건 온라인 경제와 같지만, 무한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와 달리 차든 집이든 사람이든 자원이 한정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중요해요."

정 교수도 현재 우버의 비타협적 행태에는 비판적이다.

"글로벌 혁신한다고 해도 특정 나라를 상대할 때는 지역 사회의 룰을 지켜가며 협상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원칙을 무조건 따르라는 우버쪽 대응도 많이 아쉬워요. 온라인 인터넷은 국경이 없지만, 오프라인 인터넷은 이 땅에 있는 걸 갖고 하는 만큼 무조건 글로벌 표준을 지키라는 건 무리죠. '우버엑스'는 확실히 불법이라 안 되고 '우버블랙'은 법적 다툼 여지가 있다 치고, '우버택시'는 (택시 사업자들을) 잘만 구슬렸으면 두 가지 사업은 가능할 텐데 말이죠."

'스티브 잡스'에 묻힌 C언어 창시자 '데니스 리치'의 죽음

정지훈 교수는 의과대학을 나왔지만 의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융합 전문가다. 틈틈이 '하이컨셉&하이터치'란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과 IT 분야에 대한 다양한 글을 올리고 있고, '얼리아답터'로서 스마트워치, 3D 프린터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하지만 정 교수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게 그 걸 만든 사람과, 그 안에 내포된 철학이다.

정 교수가 쓴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는 4년 전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 삼국지를 다뤄 화제가 됐던 <거의 모든 IT의 역사> 후속이다. 당시 주인공이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스타라면 이번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터넷 확산의 숨은 주역들이다.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시기에 숨졌지만, 그 그늘에 철저히 가렸던 천재 컴퓨터과학자 데니스 리치가 대표적이다.

데니스 리치는 1960~70년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들의 필수 도구인 'C언어'를 창시했고 컴퓨터 운영체제(OS) 원조인 '유닉스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는 등 인터넷 발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데니스 리치를 비롯한 초기 인터넷 확산 기여자들은 단순히 기술만 개발한 게 아니라 리눅스로 대표되는 '오픈소스 운동'을 통해 공유와 확산이라는 '인터넷 철학'을 함께 퍼드렸다. 정작 국내 기업들은 이들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해 '철학'은 외면했다.  

"인터넷은 기술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연결을 통해 혁신의 힘을 분출하게 하는 인프라에요. 그래서 네트워크를 혼자 가져가지 않고 서로 나누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게 해 사회 변화와 혁신을 가져 왔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도구적으로 인터넷을 받아들였어요. 돈벌이와 산업적으로 접근하다보니 인터넷 혁신의 의미가 쉽게 사라지고 가볍게 생각하는 풍토가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인터넷 역사 전체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죠."

"국가주의에 맞선 시민주의... 한국도 '카톡 사태'로 눈 떠"

정지훈 교수가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최근 인터넷을 둘러싼 '국가주의'와 '시민주의'의 대립이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네트워크에 적극 개입해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입장과, 인터넷은 영토도 없고 장벽도 없다는 글로벌 시민주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광장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를 포함해 중국, 러시아, 중동 국가 등은 여전히 국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미국과 서방은 민간의 역할과 자유로운 공유 가치를 높게 쳐왔는데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 감시 프로젝트를 폭로하면서 유엔 기구를 중심으로 국가주의가 기세를 올리고 있어요.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건 맞지만) 이렇게 되면 글로벌 시민들의 자유로운 발언과 혁신이 저하되고 국가 차원의 감시가 더 확대될 수 있어요."

올 하반기 인터넷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카카오톡 검열' 논란도 이런 대립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인터넷 감시 상황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스노든은 (미국 정부가) 겉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하자고 하면서 왜 뒷구멍으로 몰래 보느냐는 문제 제기였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국가보안법과 안보 이슈 때문에 국가에서 인터넷을 통제하고 유사시 개인정보를 가져가는 걸 너무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카카오톡 검열 논란을 계기로 국가가 '빅 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가상의 감시자... 편집자 주)처럼 개개인을 감시하고 인터넷을 통제하는 게 과연 옳은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실정법대로 개인 정보를 내주는 게 올바른 처사냐는 사회적 논란이 일어난 거죠."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다음카카오' 한남동 사무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사찰하는 검찰과 사법부 및 정보제공에 협조한 카카오톡을 규탄했다. 이들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톡 대화방에 함께 있었다며, "공권력 앞에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10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다음카카오' 한남동 사무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사찰하는 검찰과 사법부 및 정보제공에 협조한 카카오톡을 규탄했다. 이들은 검찰이 압수수색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톡 대화방에 함께 있었다며, "공권력 앞에 발가벗겨진 느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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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에도 국가기관이 한메일 등 국내 이메일 감시 논란이 불거지면 구글 지메일 등으로 사이버 망명 붐이 일었고, 국내 수사기관의 손길을 미치지 않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외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싸이월드나 미투데이 등 토종 SNS를 누르는 데도 기여했다. 앞서 유튜브 사례도 마찬가지지만 올해 카카오톡 사태처럼 큰 파장을 불러오진 못했다.

"지메일이나 유튜브는 전 국민적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가 일부에 국한되고 대안도 많아 폭발력이 크지 않았지만 카카오톡은 사실상 우리나라 국민 거의 모두가 쓰는 서비스여서 체감도가 달랐어요. '사이버 망명'은 국가도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침해해선 안 되고 무단으로 해선 안 된다는 적극적인 집단 의사 표명이에요. 다음카카오도 타격이 있었겠지만 앞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프라이버시 대비를 철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거예요."

"모바일 대세는 '언번들링'... 네이버-카카오톡도 쪼개야 산다"

끝으로 한국에서 2000년 전후 <싸이월드> 미니홈피, <오마이뉴스>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가 먼저 나왔는데도 해외 진출에 실패하고 결국 <페이스북>, <허핑턴포스트> 같은 후발 주자에 추월당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물었다. 이는 국내 인터넷 상용화 20년을 맞아 나온 '투 베터 라이프 스타일-인터넷 편'에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응답하라 인터넷? 스마트폰도 가끔 꺼두세요" )

"2가지를 같이 봐야 해요. <싸이월드>나 <오마이뉴스>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면 글로벌화 안 됐을까요? 영어권이면서 거대 시장에서 자기네들 서비스라는, 한국에선 가지긴 어려운 위치가 갖는 한계가 가장 중요한 전제가 돼야 해요.

두 번째는 <싸이월드>나 <오마이뉴스>나 우리나라 인터넷 서비스들이 전반적으로 플랫폼이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기업 '사일로(창고)'에 가둬놓고 수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처럼 개방형 혁신을 해야 했는데 국내 서비스는 너무 폐쇄적이었어요. '집토끼'로 하면 당장 상업화가 쉽고 (개방하면) 경영상 어렵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 개방된 생태계를 만들어야 결국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다양한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는 게 구글이나 페이스북 방식이죠."

반면 최근 모바일 메신저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한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행보는 그 '반면교사'다.

"네이버의 경영 실험이 성공했다고 봐요. 큰 기업이 인수합병으로 거대화하는 통합 작업 대신 기존 기업을 분야별로 쪼개고 분사시켜 나가는 거죠. '라인'도 NHN 일본법인에서 작게 시작했는데 더 많이 준비한 '네이버톡' 대신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고, '밴드'도 모바일에서 기존 '네이버 카페'를 대체해 버렸어요.

모바일에서 PC 포털처럼 서비스를 모으면 무겁기만 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조개는 '언번들링(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한꺼번에 묶어 제공하는 '번들링'과 반대되는 개념... 편집자주)'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카카오톡도 독립적인 앱을 계속 만들 듯 모바일과 인터넷 미래에서는 '언번들링'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태그:#정지훈,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카카오톡, #우버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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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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