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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기억> 책표지
 <세월의 기억> 책표지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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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컷 만화로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해 사랑을 받고 있는 <경향신문>의 '장도리'가 2015년으로 20년을 맞이했다. 1995년 박순찬 화백이 시작한 '장도리'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독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며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박순찬 화백은 '장도리'를 엮은 네 번째 책 <세월의 기억>을 출간했다. 지난해 12월 29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근처 커피숍에서 박 화백을 만났다. 다음은 박 화백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시사만화 '장도리'를 책으로 엮어 <세월의 기억>을 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출간 직후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독자들께서 많은 관심을 주셨습니다. 한 해 (2013~2014년) 동안 연재된 장도리를 묶어 출판한 책인 만큼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의미를 두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정리하면서 다시 보면 느낌이 또 다를 것 같아요.
"일일 연재 신문만화가는 매일 매일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의 실체를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해서 만화를 그려야 하기 합니다. 때문에 사안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의미 파악이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안의 근본적 실체에 대한 접근이 아닌 단편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난 후엔 처음 나타났던 모습과 다른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정리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아이템은 어떻게 잡나요.
"'지금 이 순간 주된 이슈'에 대해 고민합니다. 또는 시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짚어내는 것이기도 하구요.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으려고 하고 있죠. 그게 아이템입니다."

- 매일 그려야 하잖아요.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소재를 만화로 엮는 게 잘 떠오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아이템이라는 것은 전혀 제로일 수는 없어요. 다만 작가 본인이 만족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고민합니다. 제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근데 그게 잘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는 거죠."

- 마음에 안 들지만 아이템을 냈을 때 반응이 좋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작가 본인의 마음에 든다고 해서 독자들 마음에 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대로 작가는 매우 부족한 만화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로 넘어가면서 만화에 대한 접근 태도가 매우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데요. 만화를 많이 보아온 젊은 세대는 지난 세대보다 분명히 만화를 깊이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즉, 만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젊은 세대일수록 작가의 의도나 취향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신문 만화가는 다양한 사안을 다뤄야 하는 만큼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적 고찰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독자의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화적 표현, 유가족에게 상처될까 조심스러웠다"

박순찬 화백
 박순찬 화백
ⓒ 박순찬 화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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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세월의 기억>이잖아요. 세월과 세월호,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된 것 같아요.
"두 가지 의미 맞아요. 2014년은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라는 크나큰 상처를 입은 해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과 함께 상처가 생긴 이유를 밝혀내야 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겪은 일을 기록을 통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기억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 말씀하셨다시피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였던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리면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특히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당한 어린 학생들 부모들의 심정은 이루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유가족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어른들의 자책감과 슬픔의 무게가 지금까지의 어느 대형사고 때보다 커서 만화 그리는 데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해서 조심스러웠는데 그런 여러 가지를 담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리는 데에도 신중하게 그려야할 필요를 많이 느꼈고 쉽지 않았어요."

-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특히 만화적으로 표현을 할 때는 짧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자극적일 수 있어요. 그래서 희생자나 유가족을 생각했을 때 단순한 표현으로 또 다른 상처가 되진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 책을 보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타이틀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참사 이미지를 삽입했던데.
"제가 '장도리'라는 만화를 1995년에 시작했는데 그해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대형 참사를 겪었어요. 19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참사를 겪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참사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과거사건 때 그린 만화 몇 가지를 골라서 책에 넣었죠."

- 세월호 참사는 과거 참사들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고 보세요?
"똑같지는 않지만 참사가 벌어지게 된 배경, 그 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공무원의 모습들, 정치권의 행태들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유도 이전 참사들과 마찬가지로 돈 때문이었고, 참사가 벌어진 후 정치권에서 보인 모습은 사태의 수습과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겉치레였다는 점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장도리 20년, 가장 만족하는 작품은...

- 2015년이면 '장도리'가 20주년을 맞습니다. 느낌이 새로울 것 같아요.
"매일 신문에 연재하는 만화의 특징이 하루하루 마감을 하잖아요. 오늘 마감하면 그걸로 오늘 일은 끝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하루하루 마감 하다 보면 어느덧 1년이 지나고 그게 쌓여 어느덧 20년이 되었어요. 사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게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한편 그동안 출간한 책과 작업한 것들을 보면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흐른 만큼 연재중인 '장도리'도 뭔가 새로운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해요."

2012년 12월 10일자 <경향신문> '장도리'
 2012년 12월 10일자 <경향신문> '장도리'
ⓒ 경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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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작품과 아쉬웠던 작품을 뽑아 주세요.
"먼저 아쉬운 작품을 말하자면, 많죠. 시간이 지나고 '좀 더 잘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마감 하면 생각 안 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다음 날 또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마감한 걸 생각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못해요. 그래서 후회할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안 하죠. 이미 지나간 것은 독자들이 판단해야지 제가 후회해야 소용없잖아요.

잘한 것은 웬만하면 생각하려고 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작가의 손을 떠난 것은 독자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봤을 때 독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지난 대선 때 88만원 세대를 소재로 했던 만화가 있었어요. 그 대선이 가장 첨예했잖아요. 세대 간의 대결도 있었고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등 두 진영으로 갈린 선거였잖아요.

그때 88만원 세대에 대한 소외가 있었다는 내용을 그린 게 있어요. 그 내용이 뭐냐면 산업화 세대는 자기들 덕에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민주화 세대 역시 자기들 덕에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다고 서로 주장하는 거예요. 서로 잘났다고 말하는데 목이 타잖아요, 그래서 소리를 치니까 88만원 세대가 물통을 지고 물을 가져다주는 만화인데, 그게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물론 저도 만족하는 작품 중 하나예요."

- 천문기상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는데, 만화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만화는 어릴 적부터 그렸고 보는 것도 좋아하고 생활의 일부였어요. 4년간의 대학 전공이라는 것이 직업 선택의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사람의 길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전공한 천문학과 부전공인 건축공학 역시 저의 사고에 영향을 줌으로써 만화 작업에도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공부는 만화작업에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습니다. 만화 그리기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일부였고 대학 시절엔 만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여러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극화를 하려고 했는데 <경향신문>에 입사해 연재를 하면서 시작했죠."

- 초기엔 힘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
"물론이죠. 처음엔 매일 연재하기나 네 컷이란 방식 등 모든 게 힘들었어요. 그러나 결국 사람의 모든 일은 훈련이 중요하다고 봐요. 훈련을 통해서 익숙해진다고 생각해요. 반복해서 하다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 '장도리'라는 이름에 의미가 있나요?
"장도리는 못을 박거나 뽑는 도구입니다. 아주 작은 도구인데도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유용한 것 같아요. 이름 자체가 발음하기도 좋고 재미있고요."

- 시사 만화가로서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매일 매일 시대가 흘러가잖아요. 매일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긴다는 것, 1년의 분량이 모이면 나중에 뒤돌아 볼 수도 있고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찾고 싶습니다."

- 만화 저널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과거에는 잡지 형태를 통해 연재되었고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웹툰 방식으로 연재되는데 결국 만화라는 건 출판물이고 인터넷이든 잡지든 신문이든 크게 보면 저널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양을 키워야죠. 그리고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여타 기사 형식과 달리 만화는 시각적인 요소와 스토리를 통해 단순한 메시지가 아닌 감성적인 뉘앙스를 포함하여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불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 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순천, #경향신문, #장도리, #세월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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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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