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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변호사가 이리 힘이 없나?"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서평을 쓰는 지금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법정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변호하는 대한민국 변호사들의 모습을 TV나 영화에서 보고 '참 대단하다' 여겼던 변호사! 그들! '전관예우' '대형로펌' '변호사 국회의원' '변호사 시장' 등등 내가 아는 그들은 항상 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고백 그리고 고발>의 저자 안천식 변호사는 참 지지리도 힘이 없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영화 <변호인>과 책 <고백 그리고 고발>의 변호사, 왜 이리 다를까?

영화 <변호인>에서 송 변호사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외친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 변호사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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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2)에서 송 변호사(송강호 분)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외친 말이다.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이야기다. 적어도 영화에서 변호사란 힘없고 죄 없는 국민을 대신해 법에 기대 '대한민국은 정의롭다'고 증명하는 자이다.

송 변호사는 독서모임을 하다 영장도 없이 잡혀간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의 변호를 맡는다. 부림 사건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에 놀란 신군부가 부산지역 사상단속을 위해 조작한 용공사건이다. 거듭되는 공판의 변호를 통해 송 변호사는 법원이 상식과 준법에 대한 최후의 보루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도 책도 권력과 그 비호세력, 자본력과 그 추종세력이 모두 등장한다. 영화를 본 후 가슴이 후련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는 가슴이 답답하다. 저자가 당당한 변호를 못해서 답답한 게 아니다. 제대로 변호를 해도 먹히지(?) 않는 사법 권력이니 답답한 거다. 둘 다 대한민국 변호사 이야기인데 왜 이리 다를까.

저자는 김포의 재개발 지역 주민을 대리해 2005년 8월부터 2014년 9월까지의 약 20여 차례의 소송을 치렀다. 10년간 있은 한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완전히 졌다. 위증관련 형사사건 몇을 제외하고는 무려 18번의 민사소송 모두에서 패소했다.

상대는 굴지의 건설회사다. 그들의 변호는 대형로펌이나 전관예우가 가능한 로펌에서 전담했다. 젊고, 패기 있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현장을 발로 뛰며, 증거와 증인을 찾아다니며 성실히 변호하는 저자는 계속 진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그랬다. 그의 자료를 읽으면 분명히 그가 이길 것 같다. 그러나 무조건(?) 진다. 위증도 상관없고, 증거 불충분도 상관없다. 이미 지고 이기고가 결정된 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조차 믿지 못하는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주의

책은 20여 차례의 소송과정과 진행상황을 면밀히 들려주고 있다. "재미도 없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읽기도 쉽지 않은 책"이라고 출판사도 소개할 정도다. 법에 문외한인 내가 그의 싸움을 책으로 읽어낸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실은 법률용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자리가 밟혀서 그랬다. 하물며 그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이었던 저자는 어떠했을까.

실체진실을 제대로 밝혀주는 법관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 나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법원을 통하여 실체진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헌법은 왜 법원을 통하여만 실체진실을 밝히라고 하고 있는 건인가?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단지 법에 대한 무지 때문일까?(194쪽)

국민들은 점차 법원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전관예우 등 연고주의의 폐해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권력가나 자본가에게 들이대는 법의 잣대와 일반 국민들에게 들이대는 법의 잣대가 각기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법관들은 독립하여 재판하기보다 스스로의 권력에 도취되어 가면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341쪽)

변호사 양반(?)이 이런 장탄식을 한다면 분명 무슨 문제가 있긴 있는가 보다. 법을 다루는 분들 주변에. 본시 법은 만민에게 평등해야 한다. 필적감정에서 서울시내 다섯 곳에서 일치하지 않는다고 감정한 것을 대검찰청 문서감정실만 일치한다고 감정한다. 허위진술에 의해 판결하고 위증이 판명되면 그 진술이 심리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무슨 거대한 힘이 이 사건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84쪽)

오죽 했으면 저자가 이리 말을 할까. 변호사가 서울지방 검찰청 담당 검사실에서 당한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다. 증인 중 한 명을 무고죄로 고소했는데 담당검사가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종용했다. 저자가 증거가 충분하다고 하며 안 된다고 하니 한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당신 변호사 몇 년 했어?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우리가 당신들 뒤치다꺼리하는 사람들이야? (중략) 대리인이면 대리인답게 사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지.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도대체 꿍꿍이가 뭐야? 뒷조사 한 번 해볼까? (중략) 뭐, 정의? 웃기고 앉아있네. 당신이 무슨 정의를 안다고 설쳐대는 거야?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91쪽)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

실체진실을 제대로 밝혀주는 법관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 나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법원을 통하여 실체진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른다.(194쪽)
 실체진실을 제대로 밝혀주는 법관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 나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법원을 통하여 실체진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지도 모른다.(194쪽)
ⓒ 도서출판옹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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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담당검사의 처신은 대기업 관계인을 봐주기 위한 축소수사 의도를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재정신청 건에 대해서도 "항소하더라도 무죄부분이 번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고, 형량도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항소를 하지 않았다"며 대리인의 재정신청 자체를 검찰이 받아 주지 않기도 했다.

재판에 동원된 대형 건설회사의 대리인 대형로펌, 두 증인의 위증, 나중에 저자가 찾아낸 한 증인의 진술번복, 검찰과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법집행, 법원의 계속되는 무의미한 판결 등 모두가 일방통행이었다. 책을 읽으며 국가권력의 개발논리에 편승하는 자본권력과 그 추종세력의 벽이 이리도 두터운데 의욕에 앞선 변호사가 이들 세계를 너무 모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재산을 빼앗기고 아파하는 한 주민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변호사로서 해야 할 의무다. '남 주려고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억울한 사람 도우라고 변호사가 있다. 그는 충실했다. 정열을 다 바쳤다, 그리고 철저히 법만으로 안 되는 걸 배웠다. 그러나 억울해서, 아직 법 주변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출판사를 차리고 책까지 냈다. 박수를 보낸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에 의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원은 독립적으로 오로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한다. 법원은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도 철저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법관들은 법치주의의 파수꾼의 사명을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들이다. 국민은 이들의 불편부당한 판결을 통해 억울함이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법원은 그런 것 같지 않다. 법을 다루는 이들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미 우린 그렇게 그들을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를 산다. 책을 통해 그 법에 몸담고 있는 이의 몸부림을 통해 '과연 그게 사실이구나' 확인한 것 같다. 저자의 마지막 말에 일말의 희망을 본다.

"비록 미련하였을지언정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은 아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348쪽)

덧붙이는 글 | <고백 그리고 고발>(안천식 지음 / 도서출판옹두리 펴냄 / 2014. 11 / 348쪽 / 1만3000원)



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옹두리(2015)


태그:#고백 그리고 고발, #안천식,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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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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