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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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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7평 '밀실'에 들어가다

"저 앞에서 좌측으로 가면 됩니다."
"여긴 공사를 하고 있어서요. 저쪽 우측 샛길로 가야 합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 게다가 공부까지 잘하는 그는 친절하기도 했다. 교수식당에서 나와 10여 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세심하게 길 안내까지 했다.

"아, 사진기자가 오신 댔죠?"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복도에 설치된 투명 가림막 잠금장치를 열어놓고 자기 방으로 안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7평 밀실. 책상에서 한 발짝 떼면 붉은 천으로 둘러싼 접이용 침대에 누울 수 있다. 천장까지 맞닿은 책장은 빼곡했다. 그가 앉은 자리에서 우측에 꽂힌 책은 표지만 봐도 숨이 막히는 형법 관련 서적. 딱딱한 한문 제목이 붙어있다.

건너편 좌측에는 철학, 역사, 소설, 에세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책들이 있다. 시집만 해도 100여 권. 이렇듯 그의 좌뇌와 우뇌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책장 사이에 네 명이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일요일만 빼고 거의 매일 8시간씩 그가 자신을 구속한 곳은 서울대 법대 17동 504호다.

"여긴 밀실이다. 성곽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방해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밀실이자, 나의 성채다. 학자에게는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길고 깊게 생각하려면 단절이 필요하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일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가 입은 청바지처럼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으로 날카로운 발언을 거침없이 날리던 '영남 좌파' '강남 좌파'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지난 6일 오후,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성채에 들어가서 2015년 을미년, 첫 번째 '아만남'(아름다운 만남)을 시작했다. 그의 '감옥'에 갇혀 두 시간 남짓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나의 시] 말랑말랑한 힘

그의 글에는 직선과 곡선이 교차한다. 우선 형법이라는 그의 전공은 강하고 딱딱하다. 또 보수 우파들이 연출하는 공안 반동의 정치 그리고 정글자본주의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그의 글은 서슬이 퍼렇다.

직설로 끝날 때도 있지만 그 속에 영화와 소설, 노래 등을 버무린 글도 눈에 띈다. 그 이질적 요소 중에 유독 시가 많다. 이성적이고 절제돼야 하는 형법과 감성적이고 풍부한 시어, 얼핏 보면 궁합이 맞지 않지만 그의 글 속에서는 자연스레 녹았다. 그 배경이 궁금했다.

"형법학 책을 보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시를 본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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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을 좋아하나? 어떤 시가 좋나? 기자의 상투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긴 다리로 책장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가서 시집을 몇 권 꺼냈다. 한 시집을 펼쳐서 표지 뒷면에 적힌 시인의 친필 사인을 보여줬는데,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표정에서 묻어났다. 함민복 시인이 직접 줬다는 시집이다.

"함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좋아한다. 우락부락한 망치나 쇠보다 말랑말랑한 힘이 더 세다. 도종환 시인의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도 좋아하는데 내 나이로 볼 때 나는 (오후) 3시쯤 와 있다. 정호승 시인의 <밥값>도 좋다. 대선이 끝난 뒤 광화문에 섰던 내게 많은 위로를 줬다. 그리고 안도현 시인도…."

- 아, 이제 그만 하시고(웃음)…. 직접 시를 쓰기도 하나?
"내가 어찌 감히…."

- 동영상을 찍어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니, 애송시를 한번 낭송해 달라.
"(손을 가로로 내저으며) 아이고…."

'좌파 교수'의 시낭송을 듣는 데 실패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장석남 시인의 <수묵정원9-번짐>이란 짧은 시를 인용한다.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번짐'은 곡선이다. 그가 추구하는 공감과 연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조국 교수는 때로는 강철같이 강한 쇠를 말랑말랑하게 녹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나갈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 

[나의 드라마] <미생>의 공감대... 정글자본주의에서의 '인간선언'

- 혹시, 드라마 <미생>을 봤나? 
"봤다. 웹툰은 처음부터 봤다."

- 무엇에 끌렸나?
"회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가 미생이다. 회사원이든 아니든, 지역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 다수가 '장그래 상태'다. 장그래가 아니어도 가족 중에 한 명은 장그래다. 그런데 우리 세대의 당연한 경로는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 취업하고 돈을 벌어 대출을 끼고 집 사고 결혼하는 것이다. 내 고향 친구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부산에서 집 사고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

지금은 비정상 사회다.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이런 사회 공식이 깨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런 문화와 법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다. '나라가 거덜 난다'는 공포 속에 만들어진 국가의 친기업·반노동 정책이 유지된다. 기업 사내 보유금이 넘쳐흘러도 많은 사람들이 장그래로 살아야 한다. 

미생은 한 회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사회의 비정함, 정글 자본주의가 투영돼 있다. 그 속에서 비정함을 넘을 수 있는 씨앗도 보여줬다. 오 차장과 함께 힘들어하면서 연대하려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인간선언을 했다. 우리 모두가 회사에서 개처럼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돌아봐야 한다. 장그래뿐만 아니라 재벌회사의 정규직인 박창진 사무장까지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장그래처럼 잘리거나, 정규직으로 개처럼 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함께 맞서야 한다."

그는 7평에 갇혀있는 게 아니라 정글 자본주의를 깨려는 몸부림에 공감하면서 그들과의 연대를 꿈꾸고 있다. 

[나의 책] 양날의 칼 '형법'... 그 절제와 개입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10만인클럽' 회원 가입서를 받아 든 조국 교수는 해맑게 웃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천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일을 주저않는 '영남 좌파' '강남 좌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법대 연구실에 있는 그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만났다. '10만인클럽' 회원 가입서를 받아 든 조국 교수는 해맑게 웃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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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고 드라마도 본다는 그가 마냥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7평의 방 안에 가둔 것에서도 문인의 원칙주의적인 완고함과 무인의 절도가 묻어났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절제의 형법학>을 펴냈다. 사형제, 국가보안법, 군인간 합의동성애, 존속살해죄, 간통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다뤘다. '수구 인사'들로부터 '종북 좌빨'이라고 몰매를 맞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학자적 발언에도 용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 반응도 뜨겁나?
"(<절제의 형법학>은) 대중서가 아닌 법학서다. 그럼에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법률가 집단에서 많이 회자된다. 한 판사는 법원 통신망에 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웃음) 대중도 볼 수 있는데 주 독자층은 법률가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봐서 형법 과잉상태를 바꿨으면 한다."

-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형법 과잉상태에 빠졌나? 
"권위주의 정권 때부터다. 시민들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형법으로 제약했다. 민주화가 된 뒤에도 그대로다. OECD 국가에서는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 게 범죄 목록에 들어갔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은 6-4 또는 7-3으로 헌재 결정에 찬성했는데, 8-1로 해산이 결정됐다.

재판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관용의 정신을 압도했다. 즉 '저 사람의 사상이 싫다'는 판단이 헌재 결정으로 이어졌다. 다수파가 소수파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형법 등을 동원해 처벌하고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 정치적 보수주의와 도덕적 보수주의가 결합해 형벌권을 남용하고 있다."

- 600여 쪽의 두꺼운 책을 내면서 이 사회에 쏘아올리고 싶었던 화두는?  
"범죄는 엄벌해야 한다는 중벌주의, 엄벌주의가 만연돼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범죄라고 규정돼 있는 행위의 실질을 봐야 한다. 범죄가 아니어야 마땅한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많다. 간통이나 군인간 합의동성애 같은 시민의 사생활, 교사의 정치활동 등 표현의 자유 등은 범죄로 규정되면 안 된다. 범죄가 아니어야 할 행위가 범죄로 규정돼 시민의 자유와 행복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 <개입의 형법학> 집필에 들어갔는데, 어떤 내용을 담나?
"(한국은) 경제범을 너무 가볍게 처벌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형량이 가볍고 가석방을 통해 쉽게 풀려난다. 또 외국의 경우 살인죄, 강도죄, 강간죄 등 중범죄의 공소시효는 매우 긴데, 우리는 반밖에 안 된다.

공소시효를 만들 당시 평균 수명이 짧았다. 지금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엄청 늘어났는데 형량은 그대로다. 전문가가 아니면 이런 영역에 관심이 없다. 한편 재벌은 3~4세 후계체계를 구축하는데, 내부 비리와 범죄가 저질러졌을 때에는 통제 방안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각종 부당이득이 많은 데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 경제범도 그렇지만, 최근 정윤회 문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조사 결과는 '박근혜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고서 작성자의 자작극'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내용도 <개입의 형법학>에서 다룰만한 주제인가?
"그렇다. 사실 정윤회 문건은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 명백하게 상호이해가 충돌하기에 상설특검법의 취지에도 맞다. 검찰 총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인데, 검찰이 청와대의 속살을 파헤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십상시'를 공개적으로 엄호하는데 검찰이 전면수사를 할 수 없다. 검찰이 '십상시'를 친다면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검찰의 자질 문제 이전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오늘도 7평 공간에서 <절제의 형법학>을 펴내고 <개입의 형법학>을 쓰면서 스스로를 절제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에 적극 참여하면서 개입하고 있다. 때로는 시인과 산책하기도 하고, 깊고 길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7평 공간은 한없이 팽창하고 축소하는 그의 소우주였다.

☞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다음 인터뷰 기사 보기).





태그:#조국 교수,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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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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