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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한·미·일 외무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발표하는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 ⓒ 오마이뉴스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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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깨지는 '침묵의 카르텔'-문화,동아,중앙,MBC,SBS 보도/ 이병한 기자


김병기/이병한/박수원 기자

오마이뉴스는 오랜 숙고 끝에 이 기사를 내놓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24일 이 기사와 관련한 전모를 파악한 후 주요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언론인을 포함한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게 이 기사의 공개여부에 대해 자문을 구해왔습니다.

아무리 공인이지만 술자리에서의 발언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하는가라는 점과 이 기사가,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당시 시점에서 자칫 한미 외교관계 등 국익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 '내부검토과정'의 주요 고민거리였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자문단의 의견수렴 끝에 이 기사를 오늘(11월2일)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기사가 1)공인의 공-사석에서의 몸가짐 2)한국 고위층-여론주도층의 '폭탄주 커뮤니케이션' 문화 3)고위공직자와 폐쇄적 출입기자단의 공생 문화 4) 한국남성들의 의식 속에 내재된 여성비하 혹은 성희롱적 사고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국민적 토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 무엇보다 '뉴스게릴라의 뉴스연대-새 소식으로 새 세상을 만들자'는 것을 모토로 내건 오마이뉴스는 '그 자리의 그 발언들'이 "문제 있다"고 처음으로 편집국에 알려온 한 뉴스게릴라(11월 2일 오후 1시 현재 6천37명)의 건강한 문제의식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례가 한 장관 개인의 자질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
ⓒ 오마이뉴스 노순택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자들과 함께 '아셈 뒷풀이' 저녁술을 하면서 부적절한 발언을 해 장관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0월 23일 저녁 정부중앙청사 근처 한정식집에서 약25명의 외교통상부 출입기자 및 10여명의 외교통상부 간부(미주국장, 아주국장, 공보관 등)들과 '아셈 뒷풀이' 만찬을 하면서 폭탄주를 마시고 "올브라이트와 서로 포옹할 일이 있었는데 안아보니 가슴이 탱탱하더라", "KBS 심야토론에 나가서 토론을 할 때 졸릴 때마다 방청객으로 나온 구로공단 여공들의 짧은 스커트 속 팬티를 보면서 잠을 깼다"는 등 자신의 '성희롱에 해당될 수 있는 행위'를 언급했다.

이 장관은 이날 저녁 7시 20분쯤 식당에 나타나 소주 서너잔을 마신 8시경부터 기자들에게 폭탄주를 마시자며 조니워커 블랙 2병을 꺼냈다. 이 장관은 스스로 폭탄주를 만들어 약 35명의 참석자들에게 직접 돌렸다. 이 장관은 자신도 폭탄주 2잔을 마셨고 그 후부터 문제의 발언들을 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발언들.

"올브라이트 그 여자는 나하고 동갑이야. 그래선지 서로 좀 친근한 면도 있다고. 난 60넘은 할아버지라서 쭈글쭈글한 편인데 올브라이트 그 여자는 다르다고. 전에 한번 서로 포옹할 일이 있었는데 안아보니 가슴이 탱탱하더라구... 얼마나 탱탱한데."

그때 이 장관 바로 주변에는 주요언론사 기자들이 앉아 있었고 여기자도 있었다. 일부 기자는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 "장관님께서 지금 성희롱하신 거다. 벌금이 3,000만원이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여성을 언급한 문제의 발언은 계속됐다.
이 장관은 KBS 심야토론에 나갔을 때 여공들의 팬티를 훔쳐본 이야기를 했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장관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때가 언제인지, KBS 심야토론에 나갔는데 말이야.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방청객 대부분이더라고. 그날따라 토론이 길었어. 4시간 동안 생방송이니 긴장 될 것 아니야. 또 너무 늦은 시간이라 피곤하고 졸리지... 미치겠어. 방청객으로 온 여공들도 피곤했나 보지 아마. 처음에는 바르게 앉아있던 여자 방청객이 그냥 다리를 벌리고 잠이 그렇게 든 거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으니까 팬티가 보여 나도 잠이 확 깼지. 그 다음부터는 토론하다가 졸리면 그쪽 쳐다보고... 계속 그러면서 겨우 방송을 끝냈다니깐."

이후 이 장관은 다시 올브라이트 이야기를 꺼내면서 폭탄주 예찬론을 펼쳤다.

"25일 북한에 갔다온 올브라이트를 만나면 한마디 할 꺼야. 우리 한국에 대해서 알려면 반드시 한국 기자를 만나 폭탄주를 마셔보라고... 올브라이트한테 우리 25일 저녁식사 후에 만나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자고 말한 뒤 만나면 폭탄주를 먹이고 싶어."

그러면서 이 장관은 "폭탄주를 마시지 않고는 한국을 논하지 말라"고 크게 말했다.

이 장관은 10월 25일 오후 신라호텔에서 북한을 방문하고 서울로 들어온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측은 "그날 모임에서 실제로 그런 발언들을 했느냐"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거듭된 질문에 확답을 회피한 채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오랜만에 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진 자리였기에 기자들을 위해 분위기를 띄우려고 과장되게 발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25일 '한·미·일 외무장관 공동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노순택

김형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경숙 정책부장 등 주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무리 술자리였지만 기자들이 다수 있는 자리에서 공직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면서, "이번 기회에 폭탄주 문화와 공직자-기자의 취재문화, 여성비하문화 등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이정빈 장관이 '여공 팬티' 훔쳐본 KBS 심야토론

▲KBS 심야토론. 토론자 앞에 방청객들이 앉아 토론을 경청한다.
이 장관은 지난 7월 22일 KBS 심야토론 <급류타는 한반도 주변정세, 과연 기회인가>에 출연했다. 이 장관과 최평길 연세대 교수, 김학준 인천대 총장 등 5명이 패널로 참석한 이 토론회는 밤 11시 15분부터 새벽 1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KBS의 한 관계자는 "당시 방청객은 특별한 단체가 아니라 그냥 아르바이트로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왜 이들을 '구로공단 여공'으로 알고 있었을까?

이 장관은 패널 중 유일한 외교당국자였다. 아무리 심야에 있었던 토론이지만 '급류타는 한반도 주변정세, 과연 기회인가'를 '국민의 방송 KBS'에서 논하면서 "졸려서 미치겠다"는 식으로 대했다니, 또 그 졸음을 외교당국자의 사명이 아닌 여공의 팬티 훔쳐보기로 해결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폭탄주와 공인의 언행

1999년 6월 7일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폭탄주를 마신 후 직무실로 돌아와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검찰에서 만든 거야"라는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 이 발언이 한겨레신문을 시작으로 각 일간지에 공개돼 정치쟁점화 됐고 결국 진 부장은 후에 구속까지 됐다. 이 사건 이후 법무부는 검사들에게 "폭탄주를 자제하고 언행을 조심하도록" 강도 높은 소양교육을 실시했다.

올 7월 26일에는 환경부 소속기관인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김시평 위원장(1급)이 출입기자단과의 점심 자리에서 폭탄주 3-4잔을 마신 뒤 김명자 장관을 가리켜 "우리 아키코상은 미인"이라고 하고 여기자들에게 "여자가 안경을 쓰면 매력이 50%이상 떨어지니 벗고 다녀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조선일보에 보도됐고 김 위원장은 곧 사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형구 폭탄주 사건' 직후인 1999년 6월 18일 충남도 행정개혁보고회의에서 "본인 건강이나 2세를 위해서도 폭탄주는 끊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외교총수는 그 날, 농담이 섞인 것일 수 있지만, 폭탄주 예찬론을 펼치면서 마치 폭탄주문화가 우리문화의 진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고위공직자와 기자와 취재문화

장관, 국회의원, 검사 등 우리 사회의 고급취재원들은 드물지 않게 출입기자단과 폭탄주를 즐긴다. 그곳에선 그들만의 뉴스와 대화가 오간다. 그 모임은 일종의 멤버쉽이다. 출입기자단에 등록된 주요언론사 기자가 아니면 초대받지도 못한다. 그런 '선택받은 기자'가 아니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런 모임은 일종의 취재의 연장이며 공석의 연장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나온 대화는 국민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출입기자단에 속한 한 주요언론사 사회부 기자는 "기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폭탄주가 끼어야만 취재가 되는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면서, "진형구 발언이 있었을 때 신문마다 폭탄주문화가 문제 많다고 했으면서 정작 기자들은 그런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는 "출입기자단의 폐쇄성이 공직자와 기자 사이의 취재문화 개혁을 방해한다"면서 "현재의 출입기자단 제도를 개혁해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겨레21>은 출입기자단의 문제를 집중조명했다
기자의 천국, 특혜의 밀실(한겨레21 329호)
기자실의 다짐 “특권을 버리마”(한겨레21 329호)
펜의 위세로 들들 볶는다 (한겨레21 330호))


남성우월의식과 술자리와 여자이야기

여성문제 전문가들은 남성위주 사회의 문제점들이 술자리에서도 본격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여성비하 발언이나 성희롱적 발언들이 다반사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운동연합 이경숙 정책부장은 "남성위주 문화가 뿌리깊은 우리 사회엔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술자리 문화를 개혁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여기자는 "한국 고위공직자들이 남성우월 문화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미국 여성 국무장관과 인사차 포옹하면서 '가슴'을 생각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서 "그런 의식으로는 정부나 기업이 세계 속에서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데에서도 예상치 않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 반응 "있을 수 없는 일"

이정빈 외무장관의 술자리 발언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언행"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형완 협동사무처장
"공직자로서의 자질 미달이다. 이를 언론이 문제삼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언론과 고위공직자 술자리 문화의 도덕적 파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경숙 정책부장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남성위주 문화가 뿌리깊은 우리사회엔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고위공직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이런 언행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당사자는 사과해야 한다."

-녹색연합 김타균 정책실장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공직자가 어떻게 공식 자리에서 그런 언행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정빈 장관은 누구인가

1937년(63세)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재학시 고등고시에 합격(1959년, 11회)해 1960년부터 외무부에서 주로 일했다. 외무부 중동과장, 제1차관보, 주러시아대사 등을 거쳤으며 2000년 1월 13일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고 있다. 조인스닷컴(중앙일보 홈페이지)의 인물정보란에는 그의 주량이 '맥주1병'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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