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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 날, 부처님 오신 날 - 둔황 02
▲ [당신에게 실크로드 08] 오늘은 좋은 날, 부처님 오신 날 - 둔황 02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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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막고굴을 사랑한 방법

"무지한 사람이었죠."

막고굴의 주지였던 왕원록 도사에 관해 묻자, 가이드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한마디 툭 던졌다. 경멸이 가득한 표정이다. 사실, 막고굴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 왕원록이라는 사람이 가장 궁금했다. 수수께끼의 장경동을 발견하고, 또 서방탐험가에게 그 보물들을 다 팔아치워 중국 역사에 역적으로 남은 인물. 악명과 달리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너무나 해맑았다.

오럴 스타인은 그에 대해 작고 왜소한 체구에 순진한 표정과 교활한 표정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한다
▲ 왕원록 도사 오럴 스타인은 그에 대해 작고 왜소한 체구에 순진한 표정과 교활한 표정이 동시에 나타났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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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 관람은 티켓을 사고 난 후 가이드 투어도 신청해야 한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중국인 가이드가 까만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 그리고 하얀 면장갑을 끼고 등장했다. 자외선이 강해서란다. 가이드의 안내로 매 석굴마다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하고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막고굴은 명사산 끝, 가파른 절벽에 조성된 석굴군이다. 둔황시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늘씬한 백양나무가 울창하다. 지금은 말라 붙었지만, 과거 이곳에는 강이 흘렀다. 대천강, 사막의 오아시스다.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있기에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었다.

4세기, 낙준이라는 승려가 이곳에서 금빛 석양을 보고 석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천년 동안 승려, 조각가, 화가, 민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굴을 팠다. 벽에는 진흙을 발라 캔버스를 만들고 각지에서 가져온 안료로 고운 벽화를 그렸다. 그렇게 파기 시작한 석굴이 벌집 모양으로 지금은 약 1.6Km에 이른다. 멀리서 보면 다세대 주택 같다. 석굴이 745개, 그중 벽화나 불상이 남아 있는 것은 492개다.

푸른 백양나무가 울창한 사막의 오아시스, 그곳에 천불동이 있다
▲ 막고굴 외경 푸른 백양나무가 울창한 사막의 오아시스, 그곳에 천불동이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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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 당을 거치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둔황은 실크로드 역할이 감소함과 동시에 쇠락했다. 모래에 파묻힌 이곳을 지키고 있던 이가 바로 왕원록이라는 도교 도사였다. 왕원록은 인근 사람들이 왕보살이라고 할 만큼 성실하고 검소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 말기였었던 중국은 문화재의 가치도 몰랐고 관리 능력도 없었다.

장경동의 발견, 그리고 약탈

"천둥 번개가 치자 바위틈이 갈라졌다. 그 틈을 깨어보니 밀실이 나타났고 그 안에 경전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도사 왕원록이 직접 서술한 장경동 발굴 경위다. 16호 석굴에는 9세기의 승려 홍변의 가부좌상이 있다. 이 가부좌상 너머의 벽을 깨니 그곳에 사각형 공간이 있었고 그 숨겨진 공간에는 3m가 넘는 높이로 온갖 문서가 쌓여 있었다. 불경뿐 아니라 유교경전, 소수민족의 문헌, 사회관련 문헌뿐 아니라 비단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정교한 예술품도 있었다. 이곳이 막고굴 17호굴, 장경동이다.

승려들이나 화공들이 기거했다고 한다
▲ 막고굴 북굴군 승려들이나 화공들이 기거했다고 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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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를 발견한 왕원록이 지방 관리에게 알렸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탐험가가 왔다. 오럴 스타인이다. 그는 현장법사를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모실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왕원록 도사에 이걸 이용해 몇 번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왕원록은 현장법사를 수호성인으로 모신다는 이 이국인에게 넘어갔다.

결국, 오럴 스타인은 수만 점에 이르는 고서와 그림을 은화 40닢에 살 수 있었다. 그 후 비상한 기억력과 중국어에 능통한 펠리오가 나타나 문헌의 목록을 만들고 다시 6000여 점의 문서를 반출했다. 그 과정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다(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관한 글은 http://omn.kr/bb8h 참조). 지금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다. 그 후 러시아, 미국 등 다양한 나라의 탐험가들이 차례로 이곳을 방문했고,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도 한몫 단단히 챙겼다.

지금 오타니 컬렉션 중 일부는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에 남아있다. 오타니에게서 유물을 사들인 한 사업가가 조선광산채굴권을 얻기 위해 조선 총독부에게 뇌물로 바친 것이 일본 패망 후 그대로 남은 것이다.

고문서 정리를 하는 프랑스의 펠리오. 그는 넉달 동안 유물을 조사했다
▲ 작업중 고문서 정리를 하는 프랑스의 펠리오. 그는 넉달 동안 유물을 조사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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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문서들을 팔아 치운 왕원록 도사는 부자가 되었을까? 아닌 것 같다. 그가 받은 돈은 다시 이 곳 막고굴을 보수하는 기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335굴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대 조성된 석굴인데, 유마힐경변이 그려져 있는 벽화로 유명하다. 이 벽화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데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이 함께 그려져 있다. 벽화만 당대 조성한 그대로 남아 있고 불상은 청대에 보수되었다고 한다. 이 보수를 왕원록이 사람을 사서 했단다.

"그럼 왕원록은 자기가 받은 돈을 다 보수하는 데 썼네요."
"그런 셈이죠."
"정말 막고굴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이렇게 보수도 하고..."

내 말에 가이드는 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어조로 툭 던진다.

"이쁘지도 않아요."

청대 보수한 불상이 볼품이 없다는 거다. 하긴, 스타인도 왕도사의 보수를 보고 '둔황의 조소예술이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국민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 왕원록 도사. 좀 짠한 느낌이 있다. 어느 누구도 막고굴의 진가를 모를 때, 그 혼자 막고굴에 애정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무지로 비롯된 '잘못된 사랑'이긴 했지만.

하지만 왕원록 도사보다 더 나쁜 것은 무지한 촌부를 꾀여 '학술조사', '문화재연구'라는 이름 아래 약탈을 자행한 스타인이나 펠리오와 같은 제국주의 열강의 탐험가들이다. 지금도 그 문화재들을 돌려주지 않는 그들 나라의 뻔뻔함이다.

비단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비슷하게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무단 반출된 후 환수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도 얼마나 많은가.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발굴 조사 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파괴는 물론 빼돌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적 차원으로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경전을 읽고 싶다고요"

둔황에서 갈 수 있는 근교 여행지 중에 둔황 고성이 있다. 보통은 옥문관, 서천불동, 야단지질공원 등과 묶어서 가는 코스다. 진짜 성은 아니고 이노우에 야스시 원작의 소설 <둔황>의 영화 촬영세트장이다.

소설 <둔황>은 송나라의 조행덕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다. 서하 여인을 만나 그녀와 그녀의 문자에 매혹 당해 관리가 되기를 포기하고 모험을 선택한 남자다. 서하군대가 이곳에 밀려올 때 조행덕은 경전을 두고 도망치지 못하고 있던 승려들을 만난다.

"우리가 읽은 경전은 극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아직 읽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단 말입니다. 읽기는커녕 펼쳐보지도 못한 경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리는 경전을 읽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덕의 몸에는 머리끝까지 뜨거운 전류 같은 것이 흘렀다. - 이노우에 야스시, <둔황>

그는 깨닫는다. 재물이나 목숨, 권력은 소유하는 자들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전쟁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영원'을 걸고 지켜야 할 것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승려들을 도와 경전들을 막고굴에 넣고 봉인하게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17굴 장경동에 문서를 쌓아둔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에서처럼 전쟁을 피해 문서를 피난 시켰다는 설과 낡아서 관리하기 어려운 문서를 보관하고자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중국은 글과 종이를 중요시하는 풍습상 문서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둔황 고성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영화 세트장을 거닐면서 당시 둔황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조행덕은 삶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에, 영원히 남을 '가치'를 선택했다. 거침없이 매혹 당하고, 마지막까지 선택한 가치를 놓지 않는 삶.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이야기다.

오늘은 좋은 날, 부처님 오신 날

5월 6일은 석가탄신일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막고굴로 향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년 사월 초파일이면 둔황 사람들은 막고굴에 모여 춤과 노래를 즐기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둔황 사람들은 정토신앙을 숭상했다. 전체 막고굴 벽화의 4분의 1이 서방의 정토를 다룬 것이다. 벽화를 보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비천이 날렵한 자태로 날고 있다. 비천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둔황 사람들에게 이곳은 부처의 나라였고 극락정토의 입구였다. 모래 바람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불국토였다.

오늘 중국 사람들은 막고굴 입장료가 10위안이란다. 보통 입장료는 180위안인 걸 생각할 때 파격적인 가격이다. 입장하면 막고굴에서 가장 큰 불전인 96번 굴 북대불전에서 불상을 한 바퀴 돌며 참배할 수 있다고 한다. 측천무후를 모델로 한 거대 불상의 뒤태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100% 한족의 얼굴'를 이용해 표를 사 보려 했다. 하지만 신분증을 보여 달란다. 결국, 아쉽게 후퇴했다.

치안 경계를 강화한 모습
▲ 부처님 오신 날 치안 경계를 강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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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대 꼬나 물고, 우수에 젖은 눈빚으로
▲ 얼후 연주자 담배 한대 꼬나 물고, 우수에 젖은 눈빚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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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 앞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참배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하는 악단도 있고 무도복을 맞춰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팔을 활짝 펴고 비천처럼 춤을 춘다. 그냥 빙글빙글 돌기만 해도 즐거운가 보다.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다
▲ 춤추는 사람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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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 날~
▲ 신나는 할머니 오늘은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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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뭐하세요?"  "할머니 대체 뭐하세요?"
▲ 구경하는 아이들 "할머니 뭐하세요?" "할머니 대체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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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날 부처님 오신날
▲ 둔황의 미소 오늘은 좋은날 부처님 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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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삶, 사람들은 늘 팔을 활짝 펴고 춤출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당시, 막고굴은 험한 현세를 살아가는 위로였고, 석가탄신일은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축제였을 것이다. 지금도 막고굴은 각박한 우리 삶 속 오아시스가 되어,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고 있다. 이 생이 끝나고 돌아갈 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비천처럼 아름답게 돌아갔으면 싶다.

긴 소매를 펄럭이며, 오늘처럼 즐거운 기억만 가지고.

[여행정보]  둔황 근교 여행지 가는 법
서천불동이나 옥문관 같은 둔황 근교 여행지는 택시를 대여하거나 투어버스에 참여해야 한다. 각 유스호스텔이나 호텔 앞 여행사에서 반나절 투어를 진행한다. (85RMB) 오후 12시에 출발해 둔황고성, 서천불동, 옥문관, 한대성벽, 야단지질공원 등을 둘러보고 밤 10시에 도착한다. 이런 투어의 경우 이동거리가 길고 따로 식사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기 먹을거리를 싸서 가는 것이 좋다.

각 관광지 입장료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니 충분한 현금을 지니고 가자. (둔황고성 입장료 40RMB, 서천불동 40RMB, 옥문관 40RMB, 야단지질공원 80RMB)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둔황, #막고굴, #장경동, #석가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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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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