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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아 아사한 개의 사체와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개들.
▲ 남양주에서 아사한 개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아 아사한 개의 사체와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개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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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동물자유연대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주인이 있는 개 세 마리가 경기도 남양주의 한 밭에 설치된 철제 사육장에 방치되어 있고, 그 중 한 마리는 굶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제보 전화였다.

남양주 시청에서 동물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지역 경찰과 함께 달려간 현장에는 노란빛 털에 몸집이 작은 발바리의 사체가 철장 밖에 버려져 있었다. 겨우 일어설 수 있는 크기의 사육장 안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백구 한 마리가 영하의 날씨에 몸을 피할 곳도 없이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죽은 녀석의 몸은 다리와 골반 사이가 푹 들어가 있을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위장에는 담즙뿐' 엄동설한에 굶어 죽은 강아지

동네 주민들은 개 주인이 이런 식으로 개를 길러왔고, 작년에도 같은 사육장에서 개가 굶어 죽은 일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렵게 만난 주인은 "다른 개들과 싸우다가 죽은 것"이라고 우겼지만, 죽은 개의 몸에는 외상이나 출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남은 두 마리의 개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보고 동행한 공무원에게 피난 조치를 요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은 주인에게 사료와 물, 바람막이를 제공하라고 권고만 할 뿐이었다. "개가 굶어 죽도록 먹이를 주지 않은 것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라며 동행한 지역 경찰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역시나 동물보호법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경찰은 수사는 고사하고 역정만 내고 돌아갔다.

결국에는 사체를 수습해 농림부 검역검사본부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 결과, '다른 질병은 없으며 위장에 음식물이 전혀 없고 검은 색 담즙만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료를 섭취하지 못한 데 사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나왔다.

몸집도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오랫동안 주린 배를 참다 웅크리고 죽어갔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왔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여름이면 땡볕과 겨울이면 칼바람과 싸워야 하는 뜬장(지면에서 떨어져 있는 철창)에서 외로운 삶을 살지 않아도 되니까.

부검 결과를 첨부해 경찰에 고발, 현재 개 주인은 기소된 상태다. 하지만,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는 벌금만 내고 말 것이다. 남아있는 개들을 데려가게 해달라고 여러 번 설득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는 개 주인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었다.

동물 방치해서 '죽어야만' 학대라고? 

작년 3월 안양에서 주인이 방치해서 기르던 '미래'. 구조 당시 뭉친 털이 항문을 막고 있어 배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중이다.
▲ 안양에서 주인이 방치한 개의 구조 전후 사진 작년 3월 안양에서 주인이 방치해서 기르던 '미래'. 구조 당시 뭉친 털이 항문을 막고 있어 배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중이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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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개가 있는데, 주인이 묶어놓고 밥도, 물도 주지 않아 깡말랐어요. 제가 밥을 챙겨 주려 해도 그냥 놔두라고 화를 내요."
"옆집에 개가 있는데 다리가 부러져서 뼈가 다 드러났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있어요. 저러다가 염증이 생겨서 죽을 것 같아요." 

동물보호단체에 가장 많이 걸려오는 전화 유형 중 하나다. 바로 '주인이 있는 동물이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구조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도구, 약물을 사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는 등 고의적인 행동으로 동물의 몸에 직접적인 상해를 입혔을 경우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죽은 발바리처럼 동물을 '방치'하는 경우에는 '고의로 사료, 물을 주지 않아서 동물이 죽음에 이르렀을 경우'만 동물학대로 인정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혹한·혹서에 몇날 며칠을 물 한 모금, 밥 한끼 주지 않아도 '숨만 붙어 있으면' 학대가 아니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도 동물이 죽기 전에 구하거나 손을 쓸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처벌은 솜방망이, 남의 물건 망가뜨리는 '재물손괴죄' 보다 못해

법에서 규정하는 학대 행위라 할지라도 처벌 규정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아무 이유 없이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도 구형할 수 있는 최고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나마 2009년 개정으로 징역형이 생겼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몇십만 원, 죄가 중한 경우 몇백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끝난다.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같은 동물 학대라고 할지라도 의도치 않게 발생한 학대부터 고의적이고 잔혹한 방법의 학대까지 수위를 나누어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처벌 수위도 일반적인 학대는 1~3년의 징역이지만 고의성이 강하고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5년에서 10년의 징역이나 15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는 주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주인에게서 피해 동물을 압수하는 것은 물론 동물학대자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다른 동물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2013년 고양시에서 60대 남성이 기르던 두 마리 강아지 중 한 마리를 술김에 창 밖으로 던져 죽인 사건이 있었다. 동물자유연대의 요청으로 고양시는 살아 있는 강아지를 피난 시켰지만, 3일 만에 주인에게 되돌려주었다. 동물보호법을 적용해 동물을 죽인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소유물인 개를 국가가 압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계류 중인 동물보호법 개정안만 15개, 국회에서 낮잠만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인천에서 구조된 '노엘'. 판자로 만든 집에 가두고 사료만 주면서 2년을 길렀다.
▲ 인천에서 구조된 '노엘'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인천에서 구조된 '노엘'. 판자로 만든 집에 가두고 사료만 주면서 2년을 길렀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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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동물학대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현재 2012년부터 국회에서 발의되어 계류 중인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총 15건에 달한다. 대부분 '동물학대 처벌 강화'나 '동물 학대 행위를 목격했을 때 누구든 동물을 피난시킬 수 있게 하는' 조항처럼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내용들이다.

이 중 작년 4월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내용을 마련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신체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치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민 의원은 '동물을 굶겨서 집단 폐사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아사 직전의 살아 있는 동물을 구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접하고 매우 안타까웠다.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행법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입법안의 취지를 밝혔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안에는 계류 중인 법안들을 취합해 동물보호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정확한 일정은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사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동물이나 환경 문제는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다음 회기로 넘어 가기 일쑤다. 하루빨리 동물보호법을 재정비해 동물 대상 범죄가 난무하는 사회적 현실에 맞는 수준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동물을 고통에서 보호하는 것이 동물보호법의 기본 원칙

얼마 전 절에서 기르던 진돗개를 쇠파이프로 폭행한 사람이 '나머지 개 두 마리도 죽여 버리겠다'고 주장한 사건이 있었다. 엄연히 '동물보호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동물학대범이 또다시 범행을 저지르겠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65년 영국 정부가 농장동물(가축)에 대한 인도적 처우를 위해 제창한 '동물의 5대 자유'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물복지의 기준이 되었다. '갈증과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ž·상처·ž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제3조에서도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으로 선언적으로나마 명시되어 있다. 법의 기본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법, 숨이 붙어 있을 때 동물을 구할 수 있고, 동물학대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느낄 만한 벌칙이 있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진짜 '동물보호법'이 필요한 때다.

동물보호법 개정안 촉구 서명운동에 동참하려면 클릭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형주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채식잡지 월간비건 2월호에 동시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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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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