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해 9월, 충남고교평준화운동본부와 천안고교평준화학부모모임 회원들이 충남도의회 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천안고교평준화 조례개정을 지연시켰다며 도의회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지난 해 9월, 충남고교평준화운동본부와 천안고교평준화학부모모임 회원들이 충남도의회 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천안고교평준화 조례개정을 지연시켰다며 도의회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지난 27일 충남도의회 임시회의장. 김지철 충남교육감이 의원들에게 새해업무 보고를 하기 위해 앞에 섰다. 순간, 예산 출신 김 모 의원이 신호에 따라 10여명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이날 퇴장을 주도한 김아무개 의원은 지난 2010년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 부결을 주도한 후 음주 추태를 벌여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날도 회의장 퇴장을 주도하며 듣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해 방청하던 도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충남교육청이 발의한 '천안지역 고교평준화 조례개정안'을 문제 삼고 있다. 천안지역 고교평준화 추진은 지난해 충남교육감에 당선한 김지철 교육감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도의회는 조례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며 시기 상조론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조례안 반대 이유가 '괘씸죄'?

도교육청은 치밀하게 준비를 끝냈다며 이번 임시회에 '고교평준화 조례개정안'을 재상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새누리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절대 통과시켜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다. 부결시킨 안건을 3개월 만에 다시 상정, 이른 바 '괘씸죄'가 추가된 것이다. 이날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업무보고를 듣는 것조차 거부한 것은 '괘씸죄'를 적용한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조례 저지에 나서고 있는 일부 새누리당 강경파 의원들의 입김이 다른 같은 당 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미래가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다.

도교육청은 부결된 지 3개월 만에 왜 같은 안건을 또 상정한 것일까?

천안지역 평준화 논란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안지역 학부모들이 평준화를 위한 준비위를 구성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모든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전형방법을 내신 성적과 선발고사 성적에 의해 선발한 후 학생의 희망 및 거주지 등을 고려해 전산 추첨 배정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2년. 충남 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충남고교평준화 주민조례제정운동본부'가 충남도의회에서 고교평준화 조례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충남 7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충남고교평준화 주민조례제정운동본부'가 충남도의회에서 고교평준화 조례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천안시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하지만 지금도 고교입학전형을 학교별로 각각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가 서열화됐다. 고교입시 경쟁으로 사교육비가 크게 증가했다. 참다못한 학부모들이 '교복 색깔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1만 7000명 서명 받아 만든 평준화조례.. 73.8% 평준화 찬성

2004년 당시 교육감에 입후보한 오제직 교육감은 평준화 도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오 교육감은 당선됐지만 입장을 바꿨다. 천안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고교평준화 도입을 위해 수십만 장의 홍보물을 배포했다. 천안교육청과 도교육청을 오가며 집회를 갖기도 했다. 그 사이 교육감이 또 바뀌었다. 충남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충남고교평준화 주민조례제정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이들은 1만 7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조례 발의를 위한 청구인 명부를 도의회에 제출했다.

결국 도의회는 지난 2012년 여론조사를 통해 도민 65% 이상이 찬성할 경우 고교평준화를 시행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조례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전임 교육감이 재직하던  2013년 말 조례에 따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8%가 고교평준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당시 도교육청은 2016학년도에 천안지역에 고교평준화를 도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평준화에 대비한 진학지도와 학습을 추진해 왔다. 이제 관련 조례에 고교평준화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으로 '천안시'를 명시하면 된다.

그런데 '천안시'를 명시하기만 하는 개정조례안을 도의회가 지난해 부결시켰다. 도교육청은 부결된 조례개정안을 재상정한 이유에 대해 "내년에 평준화가 도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그에  맞춰 준비해온 학생과 학부모의 열망을 저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20일 오후 7시, 천안교육지원청 대강당에서 '천안지역 고교평준화를 위한 의견수렴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20일 오후 7시, 천안교육지원청 대강당에서 '천안지역 고교평준화를 위한 의견수렴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철지난 10년 논쟁, 또 하자는 이유 뭔가? 

천안 고교평준화는 10 여 년 동안 수도 없는 논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고교평준화 추진을 결정한 교육감은 전임 보수 교육감이고 전대 도의회 의원들이다. 이해 당사자들이 보수와 진보를 떠나 오랜 협의를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때문에 도의회가 때 묻은 '시기상조론'을 꺼내들며 조례안에 반대하는 데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진보교육감에 대한 막무가내식 발목 잡기라는 의심이 그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진보교육감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2016년 고교평준화를 대비, 학습준비를 해온 8500여명 천안지역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2만여 명의 학부모들이 도의회의 결단을 갈망하고 있다. 설령 도교육감의 괘씸죄가 크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너그러운 포용이 필요하다. 

고교평준화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교육의 문제다. 교육 문제는 교육적인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태그:#천안고교평준화, #조례개정안, #충남도교육청, #충남도의회, #새누리당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