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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전북 군산에서는 작은 화재에 윤락녀 5명이 질식사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일부터 화재현장에서 '우리의 또다른 누이들'의 비극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군산윤락가 화재현장 취재 2탄

"이 정도면 옛날에 죄 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잿더미 현장에서 뒤늦게 발견된 임양의 일기장 ⓒ 오마이뉴스 최경준
2000.6.29
아침 6시 40분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너무너무 우울한 날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참고 참고 또 참아 겨우 울음을 달랬다.

거울속에 내 자신을 보았다. 형편없어 보였다. 항상 거울을 보며 묻는다. 너 여기 지금 왜 있니? 빨리 집으로 가야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모든 게 싫다. 짜증만 난다. 지겹다. 하루하루가...

잠들기가 싫다. 눈뜨기도 싫다. 말하기는 더 싫다. 언니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죽고 싶다.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 하루하루가 짜증의 연속이며 따분하다.

내가 무슨 죄를 크게 지었기에 지금에 고통을 받는지... 하루 빨리 가고 싶다.

하느님, 저에게 단 한번에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 성실하게 옛 일들을 뉘우치며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이젠 지쳐가고 있어요. 그러다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산다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의 고뇌는 정말 참기가 어렵습니다. 도와주세요. 새로이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임OO 양의 일기중에서



지난 9월 19일 전북 군산시 대명동 윤락가 화재 참사로 희생된 임OO(20)양의 일기가 발견됐다.

임양의 아버지 임OO 씨는 딸의 믿기지 않는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이 현장감시를 끝내고 돌아간 뒤 임양의 친구들과 함께 지난 9월 20일 화재 현장을 찾았다.

모두 7개의 칸막이 방으로 만들어진 화재 현장은 처참한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이방 저방 둘러보던 임씨는 스무살의 딸이 5개월전 집에 잠깐 들러 가지고 갔다는 흰색 바지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딸아이가 있었던 방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애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근데 OO야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죽은 딸아이의 일기장을 보고 있는 임씨. ⓒ 오마이뉴스 최경준
그 때 소지품을 찾고 있던 임양의 친구들이 불에 타다 남은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일기장을 찾아냈다. 일기장은 불에 타지 않고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안의 내용은 식별이 가능했다.

"일기장은 중요한 수사 자료가 됐을 텐데 경찰이 현장 감식에서 못찾았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임씨가 이런 사실을 경찰에 항의하자 군산 경찰은 뒤늦게 일기장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임씨는 일기장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경찰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일기장은 임양이 이곳 군산 대명동 윤락가에 들어온 지난 2월 초부터 기록이 돼 있다. 윤양은 일기장에 "갇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빚'을 갚고 윤락가를 떠나고 싶다"고 적고 있다.

또한 친구와 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도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다.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꿈꿔, 그 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너와 울 언니 내 동생 하구 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근데 OO야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임양과 지난 7월 7일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했던 어머니 박OO 씨(45)는 임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준비하고 있던 평범한 딸이었다고 전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워낙 말재주가 좋고 재미있는 애라서 친구가 많았어요. 나중에 크면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했죠. 친구네 집에 있다고 연락을 해서 그런 줄 알았지 이런 데 있었으리라고는 정말 몰랐어요."

화재가 발생했던 9월 19일 그녀가 잠들기 직전에 썼던 일기에는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쓰여있다.


임양의 일기장은 불에 타다 남은 침대 매트리스 밑에 있었다. 그 일기장을 발견한 것은 현장검증을 한 경찰이 아니라 소식을 듣고 이틀 뒤에야 현장에 달려간 임양의 친구들이었다. ⓒ 오마이뉴스 최경준
2000.9.17 아침 6시 25분

짜증이 난다. 아파서 짜증이 나고, 일 하지 못해 짜증하고 눈치 보여 짜증나고 그래서 더욱 더 짜증이 난다.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치면 칠수록 항상 제자리. 난 항상 그래 정말 이럴 땐 딱 죽고 싶다. 모든 걸 잊고 죽고만 싶다. 인간에게 질려 버리고 짜증이 난다. 남자! 남자! 남자가 싫어진다. 자꾸 외롭고 슬퍼지는 이유가 뭘까?

하루하루 더할수록 이런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하루 어디에서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발길가는 대로 스트레스 좀 풀고 싶다. 예전엔 그럴 수 있었는데... 언제 쯤 그런 날이 올까?

두렵다. 일이 두려워진다.
아프기 싫은데 자꾸 아프니까 싫다.

나! 나 좀 도와주세요. 제대로 인간답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이 정도면 옛날에 죄 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시고 저 좀 도와주세요.




<최경준 기자의 군산윤락가 화재현장 연속보도>

1.윤락가 화재 현장에 갔더니
3.[임양 일기장 전문 2] "목욕탕에라도 혼자 갈수 있다면"
4.[임양 일기장 전문 3] 하루최고 13명 상대, 월수입 기록
5."내 딸이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6.재발방지 및 불법매춘을 뿌리 뽑을 때까지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
7.5명 숨진 화재 윤락업소 '포주'의 장부
8."세상에 이런 곳에서...책임자 처벌하라"
9.이제 새가 되어 자유를 찾으소서
10.'포주' 박씨 검거 직후 인터뷰 "난 억울하다"
11.화재참사 면한 매춘여성의 폭로 "10만원씩 걷어 경찰에 상납했다"
12.<군산윤락가 화재 희생자 49재> "사건을 축소, 은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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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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