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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자유시장 초입에 위치한 건어물 가게엔 동해와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하다.
▲ 황지 자유시장 황지자유시장 초입에 위치한 건어물 가게엔 동해와 그리 멀지 않아서인지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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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가 있다. 검룡소와 황지연못에서 솟아오른 물이 긴 여행길을 떠나 한강과 낙동강에 이르는 것이니, 가히 양강의 발원지인 태백은 우리 강산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 건너편에는 '황지자유시장'이 있다. 햇살은 맑았지만, 입춘이 지난 뒤 추위니 꽃샘추위라고 해야 할 만큼 추운 날씨였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시장은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적었다.

황지자유시장 근처의 길목마다 좌판을 벌여놓은 분들이 계셨다. 추운 날씨에 몹시도 을씨년 스러워 보였다.
▲ 황지재래시장 황지자유시장 근처의 길목마다 좌판을 벌여놓은 분들이 계셨다. 추운 날씨에 몹시도 을씨년 스러워 보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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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랜 기다림 끝에 손님이 오면 햇살에 움추려 들었던 몸이 기지개를 켜듯 일어난다. 오랜만에 일어서려니 사지가 아프지만, '아이고야!'하는 소리에는 이력이 붙었다. 노구에 성한 몸이 어디 있으랴.

동행한 지인이 좌판에서 샀다며 귤을 하나 내민다. 좌판에 놓였던 귤이 얼었을 만큼 추운 날씨, 그런 날에 그들은 오후의 햇살 한 줌에 기대어 그곳에 서 있는 것이다.

손님과 대화를 마친 후 별로 탐탁하지 않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길자(75세) 신진제유 사장님.
▲ 신진제유 손님과 대화를 마친 후 별로 탐탁하지 않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길자(75세) 신진제유 사장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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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진제유, 신진제유의 주력품목은 엿기름, 고춧가루, 메주, 들기름, 참기름, 미숫가루 등이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던 김길자씨, 뭔가 불만인 듯 나가는 손님을 바라보는 모습에 뜨악한다. 잠시의 망설임, 나는 가게로 들어가 미숫가루를 하나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태백의 이야기들을 나눴다.

신진제유의 김학수, 김길자 씨 부부
▲ 김학수, 김길자 씨 부부 신진제유의 김학수, 김길자 씨 부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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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워서 손님들이 없나 봐요?"
"아니에요, 본래 그래요. 한때 잘 나갈 때는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어요."
"이 곳에 사신 지 오래 되셨어요?"
"예, 평생을 살았지요. 집사람과 만나 연을 맺은 지도 벌써 53년이 되어갑니다."

그 사이 김길자씨는 이까짓 늙은이들 찍어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마음껏 사진을 담으라고 하시며, 어찌 되었든 황지시장이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신진제유 김학수(79세)의 맑은 웃음, 평생 태백에 살면서 호황기와 불황기 모두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 신진제유 김학수 씨 신진제유 김학수(79세)의 맑은 웃음, 평생 태백에 살면서 호황기와 불황기 모두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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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자(75세) 씨와 남편 김학수 씨가 한 살림을 한 지 53년이 되었다고 한다. 낯선 이방인에게 커피를 권하고,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눌만큼 그들의 마음은 넓었다.
▲ 신진제유 김길자 씨 김길자(75세) 씨와 남편 김학수 씨가 한 살림을 한 지 53년이 되었다고 한다. 낯선 이방인에게 커피를 권하고, 스스럼 없이 대화를 나눌만큼 그들의 마음은 넓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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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둘이 있어. 하나는 지금도 공사판에서 일하니까 힘들지. 사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여적 살아왔지. 그때는 대단했어. 한창때는 12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4만이 조금 넘어."

두 분이 결혼한 나이로 견주어볼 때, 공사판에서 일한다는 아들은 아마 나보다 한 두 살 어릴 것이다. 이 땅의 50대, 그 나이에도 공사판을 떠도는 아들을 두었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일 터이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필자가 아들과 거의 비슷한 나잇대라고 하니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비록 커피믹스 한 잔이지만, 원두커피 못지않은 맛이다. 허긴, 모든 음식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니까.

기름틀과 깻묵 등 작업도구들과 작업의 흔적들이 놓여있다.
▲ 신진제유 기름틀과 깻묵 등 작업도구들과 작업의 흔적들이 놓여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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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메주지만, 우리네 살림살이에 메주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
▲ 메주 못생긴 메주지만, 우리네 살림살이에 메주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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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무명씨들, 이들이야말로 진정 이 땅을 몸으로 사랑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무명씨라는 이유로, 이 땅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못생김의 대명사 '메주' 같은 삶이다. 그러나 메주가 없는 장이 없고, 음식의 맛을 내는데 메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이까짓'이라고 말하지만, 그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도 끝내 살아갈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들이 있다. 흥할 때도 있었고, 지금은 흥하지 않지만, 이 불황의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그들은 품고 있었다.

절구와 절구궁이, 김학수 씨와 김길자 씨는 이리도 단단한 절구와 절구궁이같았다.
▲ 절구 절구와 절구궁이, 김학수 씨와 김길자 씨는 이리도 단단한 절구와 절구궁이같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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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절구와 절구궁이, 두 부부의 평생의 삶이 집약된 이미지처럼 보였다. 단단하다. 그리고 평생을 빻고 또 빻아도 닳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서 태초부터 낙동강과 한강의 근원이 된 황지와 검룡소를 가진 태백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맨 처음엔 시장에 이렇게 사람이 없어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시장을 돌다 보니 사람은 적어도 상인들 간의 훈훈한 인정과 손님 대하는 모습은 여느 시장과 다르게 친밀하다. 이런 시장이라면 따스한 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장도 많이 봐갈 준비를 하고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장사하다 보면 약사빠르게 계산하고 잇속을 챙기는 데 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 황지자유시장 상인들은 그런 약사빠름과 잇속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것이 희망의 빛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8일, 황지자유시장을 방문하여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황지, #황지자유시장, #황지재래시장, #낙동강발원지,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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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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