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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한 뒤, 보수 일변도의 언론지형에서 '열린 진보'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여기 <오마이뉴스>와 나이가 같은 닮은꼴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2000년 남한산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학교 개혁 운동은 2009년 혁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된 뒤,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혁신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을 되살리는 행복한 학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을 행복한 학교에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11일 오전 경기도 부천 부명초등학교에서 2학년 1반 담임 김선희 교사가 등교하는 학생을 안아주며 아침맞이를 하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교문과 교실에서 아침맞이로 학생들을 반겼다.
 11일 오전 경기도 부천 부명초등학교에서 2학년 1반 담임 김선희 교사가 등교하는 학생을 안아주며 아침맞이를 하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교문과 교실에서 아침맞이로 학생들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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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경기도 부천 부명초등학교에서 신현철 교장(오른쪽)과 김경아 교무혁신부장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기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11일 오전 경기도 부천 부명초등학교에서 신현철 교장(오른쪽)과 김경아 교무혁신부장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기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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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8시 40분 경기도 부천시 부명초등학교 후문. 신현철 교장과 김경아 교무혁신부장은 등교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일이 인사했다. 신 교장은 한 학생에게 "오늘은 할머니랑 안 오고, 혼자 왔네?"라고 물었다. 신 교장과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쓴 신 교장에게 "왜 마스크를 쓰고 계세요?"라며 물었다. 신 교장은 교문 앞을 지나는 인근의 부명중학교 학생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이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신 교장은 "지난해 졸업한 학생들"이라며 귀띔했다. 옆에서는 6학년생 이가영(13)양이 김경아 부장에 안겨 "졸업하기 싫다"라고 하소연했다.

등교시간인 9시가 가까워오자, 학생들이 뜀박질을 했다. 한 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있는 걸 보니, 늦지 않았네"하면서 속도를 줄였다. 각 반 교실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일일이 껴안았다. 신 교장은 "매일 교문과 교실에서 아침맞이 행사를 한다"면서 "학생들과 더 가까워졌다"라고 말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라 학교 현관에 들어서니, 다른 학교와 다른 풍경이 눈에 띈다. 각종 상패나 교목·교화 등을 소개하는 학교 소개란이 없다. 대신, 학부모와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학생들을 맞는다. 새 학기부터 교무혁신부장을 맡는 양동준 교사는 "현관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명초는 인기 학교다. 자녀를 이곳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학교 주변에는 전셋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학부모가 기피하는 학교였다. 그 뒤 학생 수는 280여 명에서 360여 명으로 늘었다. 부명초의 변신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고 했던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교장·교사의 노력이 어우러져 가능한 일이었다.

자녀를 부명초에 보내지 않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부명초등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학교 현관에 각종 상패나 교목·교화 등을 알리는 학교 소개란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학부모들이 만든 작품으로 이 공간을 꾸몄다.
 부명초등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학교 현관에 각종 상패나 교목·교화 등을 알리는 학교 소개란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학부모들이 만든 작품으로 이 공간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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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눔 프로젝트 수업의 하나로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부모님 밥상 차리기'를 하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눔 프로젝트 수업의 하나로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부모님 밥상 차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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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이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손수 만든 케익을 들어보이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2학년 1반 학생이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손수 만든 케익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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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화(43)씨의 아이는 새 학기에 6학년생이 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부명초는 동네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학교였다. "유치원 쪽에선 졸업반 엄마들에게 인근의 ㄱ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위장전입을 알아봐준다고 했다"면서 "공부를 많이 시키는 ㄱ초등학교에 보내면 결국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위장전입을 하지 않고, 2010년 아이를 부명초에 보냈다. 하지만 장씨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30년 전 제가 학교 다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양동준 교사는 "학교가 작고 시설이 낙후돼 교사들도 오기 싫어하는 학교였다, 학교에 대한 애정없이 '시간을 때우자'는 생각을 가진 교사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미경 전 부명초 학교운영위원장은 "대안학교에 보낼지 고민하던 차에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바꿔보라'는 안순억 전 남한산초 교사의 말을 접하고 학교를 바꿔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집에 모여 책을 읽고 공부했다. 학부모들은 부천시의회, 부천교육지원청 등을 무작정 찾아가 "남한산초와 같은 좋은 학교로 만들어 달라"라고 호소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에게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해 학부모들은 혁신학교를 준비하는 교사들을 만났다. 양동준 교사는 "저희가 생각하는 학교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학교가 잘 맞았다"라고 전했다. 학부모와 뜻을 함께하는 교사 5명은 2011년 부명초로 왔다. 당시 기존 교장과 교사들은 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들은 다른 교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든 일을 도맡아했다.

그해 9월 신현철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교의 변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현철 교장은 작은 것 하나를 결정할 때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교사들과 회의했다. 또한 학생들 사진을 보면서 이름을 외웠다. 신 교장은 "매일 아침맞이를 하면서 학생들과의 거리감이 없어졌다"면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인데도 복도를 걷고 있는 저를 보고 뛰어나온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먼저 학부모들과의 소통을 강화했다. 일부 학부모만 강제로 참여하는 녹색어머니회와 같은 학부모 단체를 없앴다. 대신, 학부모들끼리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이나 반·학년 모임을 지원했다. 학부모 원혜선(45)씨는 "다른 학교 학부모들은 학원을 중심으로 공부 얘기를 하지만, 이곳 학부모들은 학교와 아이들 얘기를 한다"라고 말했다.

학교는 등수를 매기는 지필고사 형식의 시험을 비롯해, 경쟁과 차별을 부추기는 활동을 없앴다. 대신 학생의 자기평가와 교사들의 조언을 통지서에 담았다. 학부모회장 강진영(35)씨는 "불안하지 않느냐고 묻는 학부모들이 있다"면서 "시험이 있으면 내 자식의 등수가 낮을까봐 불안하지만,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칠판에 놓인 책들... 기자 온다고 연출했을까

부명초등학교 교실에는 학생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책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안진영 교사는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교육"이라며 "교실 곳곳에 책을 비치해두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부명초등학교 교실에는 학생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책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안진영 교사는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교육"이라며 "교실 곳곳에 책을 비치해두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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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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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초등학교는 '앎'과 '삶'이 하나 되는 행복한 부명공동체라는 교육철학으로 혁신교육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부명초등학교는 '앎'과 '삶'이 하나 되는 행복한 부명공동체라는 교육철학으로 혁신교육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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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교실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 교실 곳곳에 책이 놓여 있다. 심지어 칠판에도 책들이 놓여 있다. 혹시 기자가 온다고 연출한 걸까? 안진영 교사는 "학생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교실에 책을 많이 뒀다"면서 "판서하는 수업은 거의 하지 않고, 체험활동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이 학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인문학 수업을 꼽는다. 교사들은 교과서가 아니라 문학작품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양동준 교사는 "독서인증제로 학생들이 책을 무조건 많이 읽게 만드는 게 아니라, 책을 수업 안으로 끌어들였다"면서 "학생들의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생각하는 힘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안진영 교사는 "'교과서를 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는 만큼, 교과서보다는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80분 블록수업을 통해 깊게 다룰 수 있다"면서 "지난해 11~12월에는 '정'이라는 주제로 국어·도덕 등의 수업에서 관련 작품으로 수업했고, 학생들은 요양원 등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라고 말했다.

인문학 수업 결과 학생들은 수업에 적극 참여했다. 안진영 교사는 "학생들이 발표를 많이 한다, 자기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라고 전했다. 5학년생인 이서영(12)양은 "교과서로 배우면 지루한데, 다양한 교재로 공부하고 체험학습을 많이 하니 재밌다, 인문학 수업을 하면 이해가 잘 된다"라고 전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같은 반 공혜연(12)양은 "제 수준에 맞는 책으로 공부할 수 있어 좋다"라고 거들었다.

강진영씨는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다른 학교 갈래?'다"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부명초를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혁신교육을 받기를 원하는데, 근처에 마땅한 혁신중학교가 없다, 앞으로 혁신중·고등학교가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학교, 마을교육공동체의 첫 발을 내딛다

부명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로부터 지원받은 빈 교실에서 목공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목공동아리 '피노키오' 소속 학부모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부모들끼리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부명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로부터 지원받은 빈 교실에서 목공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목공동아리 '피노키오' 소속 학부모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부모들끼리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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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학교가 파한 뒤, 학교 4층 목공실은 떠들썩했다. 목공동아리에 속한 학부모들이 나무를 자르고 이어붙이며 가구를 만들었다. 학교가 빈 교실을 지원했고, 부천시 지원으로 각종 공구와 기계를 마련했다. 신 교장은 "학교 공간을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2월 첫째 주에 5일 동안 진행된 겨울 문화예술학교에서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학생들도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 교장은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도 모두 보살피자'는 문화가 학교에 퍼졌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데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학부모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장순화씨의 말이다.

"학부모들끼리 서로 알게 되고 학생들과도 친해지면서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길에서 인사를 하고, 다른 아이들이 잘 노는지 지켜보기도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면, 내 아이를 먼저 탓한다. 학부모와 학생 서로에게 신뢰가 있기 때문에 싸움은 더욱 커지지 않는다. 학교가 동네를 바꾸었다."

부명초등학교 학생들이 쉬는 시간 30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명초는 기존 수업시간을 2교시씩 묶어 수업간 1교시를 80분으로, 쉬는 시간을 30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 조정은 교사와 학생이 수업에 능동적이며 주체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부명초등학교 학생들이 쉬는 시간 30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명초는 기존 수업시간을 2교시씩 묶어 수업간 1교시를 80분으로, 쉬는 시간을 30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 조정은 교사와 학생이 수업에 능동적이며 주체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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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창간 15주년 기획 : 행복한 학교

[①-1 남한산초] "대학 안 가고 하고 싶은 일 하니 행복해요"
[①-2 남한산초] 무허가 사설 강습소, 혁신학교의 시작이었다
[② 선사고] 졸업식장에 조폭이...학교가 '완전' 뒤집어졌다
[③ 조현초] 산만한 학생에게 "약 먹이세요"... 서울과 양평은 달랐다
[⑤ 삼각산고] '잡스런 빵' 없앴더니, 학교에 '롯데월드' 생겼다
[⑥ 동화중] 욕하며 대들어 뼈가 녹을 정도.. 이런 학교가 변했다, 행복하게
[⑦ 오산혁신교육지구] 일진 학생들에게 토론을 가르쳤더니...


태그:#창간기획 : 행복한 학교, #행복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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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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