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롤라와 엔젤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롤라 역을 맡은 배우 오만석과 엔젤들.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롤라와 엔젤들의 화려한 무대는 관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 롤라와 엔젤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롤라 역을 맡은 배우 오만석과 엔젤들.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는 롤라와 엔젤들의 화려한 무대는 관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 CJ E&M


쇼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다. 쇼 뮤지컬은 여러 세부 장르로 나뉘는 뮤지컬 중에서도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원색적으로 반짝이는 의상,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신나는 음악, 눈이 부실 정도의 조명 등이 '쇼 뮤지컬'하면 일반적으로 연상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개의 쇼 뮤지컬은 이야기보다 보여주기에 치중한다. 내실 있는 스토리, 공감을 이끌어내는 메시지에 신경 쓰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막대한 자본을 투여해 최대한 화려하게 꾸민다. 쇼 뮤지컬을 본 관객은 무언가를 얻어가기보다는, 안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비워내는 데 그친다.

물론 이정도만 해도 충분히 의의가 있을지 모르나, '킬링 타임'을 위해 10만 원 넘는 돈을 쓰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칫 속 빈 강정에 그치고 마는 여러 쇼 뮤지컬의 범람 속에서, 나는 별 다른 기대 없이 한 작품을 보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쇼 뮤지컬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난 22일 막을 내린 뮤지컬 <킹키부츠>의 이야기다.

원작을 뛰어넘는 완성도... 명작 그 이상의 명작

영화 <킨키 부츠>의 포스터 2005년, 영국에서 제작되어 2006년 4월 14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킨키 부츠>의 포스터. 원제는 뮤지컬과 영화 모두 'Kinky Boots'이지만, 어쩐 일인지 국내 표기가 다르다. 본래 올바른 표기는 '킹키'가 맞다.

▲ 영화 <킨키 부츠>의 포스터 2005년, 영국에서 제작되어 2006년 4월 14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킨키 부츠>의 포스터. 원제는 뮤지컬과 영화 모두 'Kinky Boots'이지만, 어쩐 일인지 국내 표기가 다르다. 본래 올바른 표기는 '킹키'가 맞다. ⓒ 부에나 비스타

뮤지컬 <킹키부츠> 역시 무비컬(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Movie+Musical)이다. 1999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2005년 영화 <킨키 부츠>가 제작됐다. 이 영화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한 것이 2013년, 그리고 세계 최초로 국내 라이선스 작업을 거쳐 충무아트홀에서 막을 올린 게 지난 2014년 12월이었다.

영화 <킨키 부츠>나 뮤지컬 <킹키부츠> 모두 원제는 'Kinky Boots'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는 '킨키 부츠'로 표기됐으나 이번 뮤지컬은 '킹키부츠'로 적혔다. 25일, 국립국어원에 문의한 결과, "심의된 바 없으나, 영어 사전의 발음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대조하면 'Kinky'는 '킹키'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킹키부츠>는 어느 구두 공장의 이야기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런던으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하고픈 찰리,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얼떨결에 구두 공장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구두 공장은 이미 반품된 재고가 창고 가득 쌓여 있는 상황, 공장을 지키기 위한 찰리와 직원들의 이야기가 극의 한 축을 맡는다.

동시에 <킹키부츠>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이다. 어려서부터 여성용 구두를 신고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롤라. 권투선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도 권투선수가 되기를 바라지만 롤라의 선택은 권투 글러브 대신 반짝이 드레스였다. 우연한 계기로 찰리와 만난 롤라는, 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찰리네 공장의 구두 디자이너가 된다.

롤라의 정체성은 '드래그 퀸(Drag Queen)'이다. 드래그 퀸은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자를 의미한다. 반드시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게이가 많다. 그런 롤라의 고민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드러내면서도 남성의 몸무게를 버틸 수 있는 부츠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화는 불편하고 약하며, 남성화는 섹시하지 않다. 찰리는 공장을 구하기 위해 이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롤라와 함께 길고 화려한 '킹키 부츠'를 만들어 밀라노에 출품하려 한다.

뮤지컬은 대체로 영화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사건의 순서와 인과관계,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도 거의 똑같다. 심지어 대사마저 유사하다. 약간 늘어난 로렌의 비중, 롤라와 돈의 결투가 팔씨름에서 권투로 바뀐 부분, 엔젤을 밀라노 무대에 세울지에 대해 갈등하는 장면, 롤라와 롤라 아버지의 만남 정도에서 약간 차이가 날 뿐이다.

국내로 번안되면서 성적 표현에 대한 부분은 약간의 수위 조절을 거쳤다. 유쾌하고 직설적인 농담 덕분에 느낄 수 있었던 카타르시스가 다소 줄어든 건 분명 아쉽다. 원작에서 롤라는 성소수자라는 약자의 지위와 동시에 흑인이라는 자아도 가지고 있다. 존재 자체가 복합적 차별의 피해자인 그의 캐릭터가 국내 무대에서는 표현하기 쉽지 않아 힘이 조금 약해졌다.

국내 초연한 뮤지컬 <킹키부츠>가 원작 영화나 오리지널 뮤지컬에 비해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딱 이 정도이다.

막을 내리니 팬들을 '앓게' 만든 마법

프라이스 앤드 선 공장 찰리 역의 김무열과 롤라 역의 오만석이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공연하는 모습. 군 제대 후 뮤지컬 복귀작으로 화제몰이를 했던 김무열은, 막이 오른 초반 준비가 덜 된 모습을 보여 많은 팬에게 실망을 안겼다. 그러나 점차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돌아선 팬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오만석의 연기와 노래는 말할 것도 없다.

▲ 프라이스 앤드 선 공장 찰리 역의 김무열과 롤라 역의 오만석이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공연하는 모습. 군 제대 후 뮤지컬 복귀작으로 화제몰이를 했던 김무열은, 막이 오른 초반 준비가 덜 된 모습을 보여 많은 팬에게 실망을 안겼다. 그러나 점차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돌아선 팬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오만석의 연기와 노래는 말할 것도 없다. ⓒ CJ E&M


처음 뚜껑을 열었을 때, 뮤지컬 <킹키부츠>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 성소수자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에 아직 우리사회는 경직되어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확실히 흥행했지만, 국내에서도 성공할지는 의문이었다. 역시나 초반 흥행은 기대보다 저조했고, 몇몇 배우는 연기력과 가창력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점차 공연이 진행될수록 우려는 탄성으로 바뀌었다. 논란을 낳았던 배우는 혼신의 노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극이 막을 내릴 때쯤,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도 있고, 새롭게 재조명받은 배우도 있지만 실망을 준 배우는 아무도 없었다. 앙상블도 숙련되어 있었고, 특히나 롤라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엔젤들의 관능미는 발군이었다.

국내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처음 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디 로퍼의 음악도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쇼 뮤지컬이 본래 갖추어야할 요소들인 화려한 의상과 조명, 무대, 노래 중 어느 하나 뒤처지는 게 없었다.

정선아의 로렌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로렌 역을 맡은 정선아. 그녀는 차고 넘치는 연기와 노래로 완벽하게 로렌을 소화한다. 비록 영화보다는 비중이 늘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그릇에 비해 배역이 전체 극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작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미나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도 훌륭하지만, 역시 그녀에게 맞는 옷은 <아이다>의 암네리스나 <위키드>의 글린다처럼 밝고 화사한 배역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사태만 아니었어도, 그녀에게는 훨씬 더 멋진 별명이 붙었을 테다.

▲ 정선아의 로렌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로렌 역을 맡은 정선아. 그녀는 차고 넘치는 연기와 노래로 완벽하게 로렌을 소화한다. 비록 영화보다는 비중이 늘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그릇에 비해 배역이 전체 극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작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미나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도 훌륭하지만, 역시 그녀에게 맞는 옷은 <아이다>의 암네리스나 <위키드>의 글린다처럼 밝고 화사한 배역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사태만 아니었어도, 그녀에게는 훨씬 더 멋진 별명이 붙었을 테다. ⓒ CJ E&M


그리고 이토록 화려한 외양을 안에서 튼실하게 뒷받침하는 게 있다. 바로 메시지다. <킹키부츠>에는 여러 메시지가 들어 있지만, 영화와 뮤지컬이 방점을 찍는 부분은 살짝 다르다. 영화 <킨키 부츠>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What Can I Do?)"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난관을 돌파하는, 자기 성장의 드라마이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두려워서 회피하고픈 마음,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졌다.

뮤지컬 <킹키부츠>에도 이런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있다. 롤라가 돈에게 "진짜 남자가 되는 법"이라고 소개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여라"이다.

롤라는 매일 밤,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간다. 그런 롤라를 경멸과 조롱의 눈으로 바라보는 돈은, 성적소수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회 인식을 대변한다. 뮤지컬 <킹키부츠>는 자신을 멋대로 규정하려는 주변의 억압과 편견을 타파하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결과적으로 쇼 뮤지컬로서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단점을 메우는 효과를 낳는다. 지난 23일, 뮤지컬 <킹키부츠>를 사랑해 준 관객들을 위한 '땡큐 영상'이 업로드됐다. 뮤지컬 커뮤니티는 벌써부터 국내 재연을 기다리는 팬들로 가득하다. CJ E&M은, 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CJ, <킹키부츠> 속 찰리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뮤지컬 <킹키부츠>의 홍보 포스터 뮤지컬 <킹키부츠>의 홍보에 사용된 포스터. "킹키하라!"는 이들의 외침, 그러나 CJ는 찰리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사일까?

▲ 뮤지컬 <킹키부츠>의 홍보 포스터 뮤지컬 <킹키부츠>의 홍보에 사용된 포스터. "킹키하라!"는 이들의 외침, 그러나 CJ는 찰리에게 부끄럽지 않은 회사일까? ⓒ CJ E&M


<킹키부츠>는 관객들에게 "킹키하라!"고 외친다. 뮤지컬 <킹키부츠>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들은 모두, 이 "킹키하라"는 조어에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밟히는 곁가지가 있다. 공장을 살리면서, 모든 직원을 지키고 싶어하는 찰리의 이야기다. 찰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구두 공장의 새로운 경영자다. 경영자이자 자본가인 그는, 자신의 공장이 맞닥뜨린 경영 위기를 실감한다. 제3국에서 수입된 값싼 구두가 물밀 듯 시장에 침투한다.

평생을 신을 수 있을 정도로 품질에 자부심이 있는 '프라이스 앤드 선'의 구두이지만, 오히려 값싸고 금방 닳는 신발이 회전율도 높고, 이윤도 많이 남는다. 소비자도 싼 가격에 혹해 더 이상 비싼 구두를 찾지 않는다. 구두 공장 열에 아홉은 문을 닫는 상황,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를 바라보며 찰리는 절망에 빠진다.

경영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여기서 뻔하다. 노동자의 수를 줄인다. 찰리는 직원들을 한 명씩 불러다가, 공장이 처한 위기를 호소하며 쉬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는 아예 15명을 해고시킨다)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다.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기업들은 흔히 노동자의 고통 분담을 강조한다. 아니, 강요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삶의 문제다. 작품 속 대사처럼 누군가의 교복이, 내일의 도시락이 달려 있는 일이다. '프라이스 앤드 선'의 경영주 찰리가 여타 자본가와 다른 지점이 여기에서 나온다. 공장이 로렌의 아이디어와 롤라의 디자인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자, 쉬라고 했던 직원을 가장 먼저 복직시키는 사람이 바로 찰리다.

김무열의 찰리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찰리 역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 김무열. 찰리는 아버지가 물려준 구두 공장 '프라이스 앤드 선'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맡지만, 후에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구두를 만드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족같은 공장 직원들을 아무도 해고시키지 않기 위해 헌신한다. 누구들과는 다르게.

▲ 김무열의 찰리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찰리 역을 소화하고 있는 배우 김무열. 찰리는 아버지가 물려준 구두 공장 '프라이스 앤드 선'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대신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맡지만, 후에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구두를 만드는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족같은 공장 직원들을 아무도 해고시키지 않기 위해 헌신한다. 누구들과는 다르게. ⓒ CJ E&M


찰리의 약혼녀 니콜라는 제안한다. 공장 문을 아예 닫고 팔자고, 아버지도 포기한 공장을 너가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 니콜라에게, 찰리는 외친다. "평생 함께해 온 저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저 사람들 인생이 통째로 달려" 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소리 지른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있어 보이기'를 바라는 니콜라에게, 찰리는 진짜 있어 보이는 건 따로 있다고 일갈한다.

그가 자신의 공장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공장이 그저 쉽게 팔고 포기할 수 있는 자본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찰리는 노동자를, 직원을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동료로,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이다. '프라이스 앤드 선'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도 반납한 채 야간근무와 주말노동에 뛰어든 건, 누군가가 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찰리의 저런 마음가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자가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고, 공장을 점거하고, 천막을 치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 회사가 이중장부를 작성하고, 회계를 조작하고, 경영 위기를 과장하여 노동자를 내몰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도 다들 모르쇠로 일관한다. 굴뚝 위에 올라가 추위에 떠는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캐릭터가, '프라이스 앤드 선'의 찰리 같은 사람이 아닐까.

"킹키하라!"는 메시지에는 이런 맥락도 깔려 있다. 내가 직급이 낮고, 월급이 적고, 미래가 불안해도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 내가 성적 소수자이고, 유색인종이고, 취향이 독특해도 내 삶은 나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도, 틈새를 노려 돌파구를 만들면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노력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찰리가 지키고 싶었던, 만들고 싶었던 공장 없이는 로렌도 롤라도 새 삶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왜인지 모르게 개운하지가 않다. 이토록 멋진 인물들이 화려한 무대에서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지건만, 묘하게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뮤지컬 <킹키부츠>를 제작한 회사가 CJ E&M이기 때문이다.

한 약품업체 인수 후, 직원들에게 노조탈퇴를 종용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기업이 있다. 택배업체를 합병한 후, 노사 갈등이 불거진 기업도 있다. 이들의 수수료 협상은 2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어떤 기업은, 인사팀 직원이 해고된 직원을 미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특정 물품에 대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창조경제를 응원하고, 제일 잘하는 것은 '문화'라고 하면서 상영관 배급 문제로 문화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는 기업도 있다.

모두 CJ의 이야기다. CJ는, '프라이스 앤드 선'의 찰리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킹키하라!"고 외칠만한 자격이, CJ에게 있는걸까?
뮤지컬 <킹키부츠>의 포스터 2014년 12월 2일 막을 열었던 뮤지컬 <킹키부츠>가 지난 2월 22일 국내 초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며 '킹키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던 이 작품의 재연도 무척 기대된다. 그러나 혓바닥 어딘가에 씁쓸함이 남아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 뮤지컬 <킹키부츠>의 포스터 2014년 12월 2일 막을 열었던 뮤지컬 <킹키부츠>가 지난 2월 22일 국내 초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며 '킹키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던 이 작품의 재연도 무척 기대된다. 그러나 혓바닥 어딘가에 씁쓸함이 남아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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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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