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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 3·1절이었다. 거리엔 태극기가 넘쳤고 만세 소리는 우렁찼다. TV는 하루 종일 일제 청산을 논했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일본의 식민지배와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대한민국 1만3000개 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했다.

그러나 하루 전이 3·1절이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교실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남겨놓은 유물들이 여전히 놓여있다. 일제 잔재인 줄도 모르고, 왜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며,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관심이 없다. 대표적인 것이 교실마다 놓여있는 교단(敎壇)이다.

교단은 교권의 상징일까, 권위주의의 낡은 유물일까

교단이 없는 한 교실 풍경
 교단이 없는 한 교실 풍경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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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개학을 하고 교실에서 처음으로 우리반 학생들을 만났다. 나는 교실 공간만 차지해 통행에도 불편하고, 걸려 넘어지면 다칠 염려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생각으로 교실에 있는 교단이 싫다. 사실 이전부터 치울까 했는데 차마 치우지 못했다. 몇 년 전 교단을 없애자는 제안을 해봤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올해는 우리 반에 있는 교단부터 없애보기로 했다. 학생들과 교단의 역사적 연원과 실용적 가치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교단이 일제의 유물이라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놀라는 반응이었다. 학생들 입장에서 굳이 교실에 교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졸업한 학교 교실에 교단이 있었던 학생 손을 들어봐도 기껏 5명 정도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실용적 면에서도 교단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합의를 한 것이 '3월 한 달 동안 교단 없이 살아보고, 한 달 후에 불편하면 다시 갖다 놓는 걸로 하자'였다. 청소 시간에 교단을 치우는데, 얼마나 청소를 안 했는지 교단이 있던 자리에는 먼지와 휴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쌓이고 굳은 것들이라 빗자루로 잘 쓸리지도 않고, 걸레로 잘 닦이지도 않았다.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반복한 뒤 어느 정도 깨끗해진 상태로 청소를 마쳤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터졌다. 우리 반에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께서 이의를 제기하신 것이다. 왜 교단을 치웠느냐는 게다. 교단이 없어지니 칠판에 글을 쓰기가 어렵고 아이들을 보는 눈높이가 낮아져 불편하다는 것이다. 특히, 필기를 많이 하는 수학 선생님은 강한 문제제기를 하셨다. 반 친구들을 통해서도 하고, 부장을 통해서도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단의 역사적 의미와 (임시이지만) 그것을 치운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 "어색하지만 큰 불편은 없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니 굳이 갖다놓으라고 하지 않겠다, 담임이 알아서 해라" 정도의 반응이었다. 지금도 고민 중이다.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올라서는 단상인 교단, 교권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 교단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친일반민족부역자 청산에 실패한 우리 역사는 지금도, 그것도 교육의 최일선인 학교 교실에 여전히 일제의 낡은 유물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까지 느낀다.

아이들을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지만 교단의 존재에 대해 주변 학교 상황을 직접 알아봤다. 우리 학교 인근인 종로구와 서대문구, 중구, 용산구, 은평구 등의 여러 학교 교사들에게 연락 하거나 SNS 등을 통해 조사를 해봤다.

놀랍게도 우리 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인 중학교 교실에도 교단이 없었다. 직접 확인한 결과 교단이 있는 학교는 S여고 등 9개이고, 교단이 없는 학교는 J중, K고 등 20개였다. 교단이 없는 학교가 두 배 이상 많았다. 공립과 초등학교까지 확대하면 훨씬 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우스운 것은 같은 학교 내에도 교단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이 있다는 점이었다. H중, K고, H중, S중 등이 그랬다. 같은 학교 내에서 교단의 존재가 다른 이유를 알아보니 "새로 지은 신관 건물에는 교단이 없고, 기존에 있던 구관 건물에는 교단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교단에 대한 대체적인 경향성은 '예전엔 있었는데 요즈음은 없어지는 추세다' '(반대로) 예전에는 없었는데 새로 교단을 만드는 경우는 없다' '교단의 유무가 혼재하는 학교는 신관에는 없고, 구관에는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교단은 특별히 실용적인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도 모른 채 관행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없애려면 칠판 높이를 낮춰야 하는 등의 문제로 공사비 또는 손품이 들어가서 없애지 못하는 것이다.

익숙함의 편안함? 국민학교는 왜 초등학교로...

교단을 교실에서 치우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논리는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 존재에 익숙해져서 문제점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없이면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만약,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교단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교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들이 교사가 됐을 때, 또는 그들이 학생이었을 때 교실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원래 있는 것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관행으로 존재해 왔던 것들을 이제는 따져 볼 일이다.

지금의 초등학교를 이전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이전 세대들이 학교 다닐 때에는 그 명칭을 문제 삼지 않았으며, 불편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또 '국민'이라는 단어가 일본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백성이라는 의미의 '황국신민'(皇國臣民)에서 나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학교마다 붙어있던 학교 이름 동판을 바꾸고, 도로 표지판을 바꾸고, 주소록을 바꾸고, 공문서를 바꾸는 등 수많은 예산을 들이면서 일부러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꿨다. 지금 이것을 두고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꿀 때, 대부분의 국민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고 불편하다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익숙해졌기 때문이고,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교단도 비슷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교단, 당장 못 없애면 역사적 연원이라도 가르쳐야

물론 일제 시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니 없애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용적 가치가 있다면 부정적 역사는 후세들에게 바르게 알려주면서도 실용적 가치는 이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철도는 일제시대 조선백성 수탈과 대륙 식민지 건설을 위한 수단으로 건설된 것임이 명백한 것이지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일부러 철도를 다 걷어내고 말(馬)이나 가마 타고 다니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를 그대로 두더라도 그 철도가 가지는 아픈 역사만큼은 반드시 기억하고, 후세에 가르쳐줘야 한다. '교단'도 마찬가지다. 3·1절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대통령이 일제 식민지배의 사죄를 촉구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들은 청산돼야 한다.

교단을 당장 뜯어내면 칠판의 높이가 맞지 않으니 또는 교탁의 높이가 맞지 않으니 불편하다 등의 이유로 즉시 철거가 어렵다면 장기적으로 그것을 없앨 계획을 세워서 준비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학생들에게 교단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의미, 즉 식민지 조선 백성들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조선 학생들 앞에서 칼을 찬 일본인 교사가 서 있던 그 교단의 부정적인 의미는 반드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즉, 교단이 교육계에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을 꼭 말해줘야 한다.

혹시 이를 불편해하는 교사가 있다면 토론하면 된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교단 없이 살아본 결과 학생들은 별로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의에 찬성할 뿐만 아니라 없으니 좋다는 학생도 많다. 다음 주에 조금 더 깊이 토론해 보려고 한다.

있던 것이 없어져서 눈에 어색해고, 몸에 불편한 것은 시간이 해결할 수 있다. 교실이 더 넓어지고, 교단 밑 먼지와 쓰레기가 없어지면서 위생적으로도 더 좋을 수 있으며, 나아가 최소 20만~50만 원 정도(학교 전체로 따지면 1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하는 교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을 볼 때 경제적이다.

왜 교사는 높은 교단에서 학생을 내려다 봐야 하나

아직 교단을 '교사의 권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왜 교사들이 학생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학생들을 내려다 봐야 하는가. 교단의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한 교사가 쓴 말을 옮긴다.

"고등학교 때 정치·경제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교단 높이, 이만큼이 너희들과 나의 차이라고..."

아직도 일부 학교에 친일파들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고, 군국주의의 또다른 상징인 구령대(조회대)와 액자에 들어간 국기가 교실마다 있는, 그리고 연원도 잘 모르는 교단이 있는 우리 나라의,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 안타까웠던 3월 첫 주가 이렇게 갔다.

우리는 과연 교실의 친일 잔재를 그대로 두고 3·1절을 기념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 달 뒤, 과연 우리반 교단은 어떻게 될까.


태그:#교단, #일제 잔재,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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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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