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려견인 다울이가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려견인 다울이가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분명히 오줌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잠원동에 있는 강형욱 훈련사의 보듬반려견행동클리닉에 들어서자 그가 키우는 개 다올이가 다가오더니 담요에 쉬를 했다. 버젓이 있던 배변판과 다올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의심하는 내게 보란 듯이, 아무데나 똥도 쌌다. 훈련사의 개라면 응당 직립보행을 하며 절도 있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 후에 변기 사용시범이라도 보여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EBS 4부작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하 <세나개>)에 출연 중인 강형욱 훈련사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개를 살피고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동물 프로그램에서 이를 '개과천선'이라 불렀다면, 그는 제목처럼 "과연 '나쁜' 개가 있을까?" 반문한다. 나쁘지 않으니 혼낼 이유도 없다. 그 신념을 담은 '보듬 훈련'은 "혼내지 않아도 되는 교육, 개들에게 기회를 주는 교육"이란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불편한가요?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세나개>에서 선보이는 훈련방식은 기존 방송에서 가르쳐준 것과는 다르다. 5일 방송된 첫 회 사례는 식탁 위 음식을 탐하는 보리와 다른 개들에게 공격적이고 주인까지 무는 봉구. 강형욱 훈련사는 목줄을 당기며 '안 돼!'라고 소리치지 않고, 개가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간식이라는 보상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벌은 없다.

강 훈련사는 <세나개>가 재미없고 지루한 방송이 될 거라고 예단했다. 말 잘 듣는 강아지로 뚝딱 만들어주는 훈련 레시피를 가진 '개통령'도 없고, 강압적인 훈련법보다 교정 속도가 더디어서다. 방송에는 개의 행동이 교정되기까지 15분 정도 걸렸지만, 실제로는 이틀을 썼다. 이마저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다가 아니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말이 보호자들에게 '불편'할 거라고 했다. 개의 문제는 대개 사람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지금의 성격을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개들의 행동은? 보호자가 만든 환경과 기회 안에서 형성된 거죠. 그러니까 사람이 먼저 달라져야 해요. '짖으면 안 돼!'라고 하지 말고, '왜 짖게 됐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반려견 다올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형욱 훈련사와 그의 반려견 다올 강형욱 훈련사는 "<세나개>에서 유기견 입양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신청자가 없어 유보됐다"고 전했다. 유기견 입양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어 데리고 오면 안 된다"고 강조한 그는 "그 개의 기억까지도 보듬을 때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정민


그래서 그는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고 아프게 꼬집는다. 같은 제목의 책과 EBS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렇게 강조해왔다. "여기에는 '아직'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고 전제한 그는 "오로지 나의 감정 충만을 위해 개를 입양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왜 개를 키우세요?'라고 먼저 묻고 싶었다"며 "개를 키우려면 내 삶을 인정하고 불편한 내면까지 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이에요. 개를 키우는 건 사람이잖아요. 동물을 다루는 법은 그 나라 국민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어요. 서로 존중하고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안정감을 가진 복지국가에서 주로 온화한 훈련법을 씁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개 교육이냐고 치부할 수만은 없죠."

"내 교육이 학대였다니...죄책감에 힘들기도"

강형욱 훈련사는 '보듬'이라는 철학이 눈물과 알코올의 결과물이라고 고백했다. 개를 번식시켜 팔거나 투견을 하기도 했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16살 때 개 훈련을 시작했지만, 기존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에 늘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군 제대 후 호주·일본·노르웨이 등에서 훈련사로 경험을 쌓은 8년은 실력보다는 마음이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노르웨이의 반려견행동 전문가 투리드 루가스(Turid Rugaas)와의 만남은 삶을 뒤흔들었다고.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반려견 다올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형욱 훈련사와 그의 반려견 다올 "저 역시 개 훈련을 하면서 어릴 적 제가 불쌍해졌어요. 16살 때부터 개 훈련을 시작했는데,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걸 부모님과 상의 없이 혼자 결정했어요. 그러면서 나를 그렇게 키웠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에서야 '당신은 열심히 사셨다'고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 이정민



"한국에서는 개를 빨리 앉게 만들고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 교육인 줄 알았다면, 개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함께 잘 사는 법을 배웠죠. 지금까지 내가 했던 교육이 학대라는 걸 알게 되니, 죄책감에 잘 못하는 술도 마시고 울기도 했어요. 나로 인해 안락사를 당한 개도 세 마리나 있었거든요.


보호자에게는 '개가 사람보다 앞으로 나가면 혼내야 해요' '켄넬(개집)에만 있어야 해요'라고 가르쳤는데, 막상 내가 사랑하는 개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더라고요. 나보다 앞서 걷거나 사료를 다 먹지 않아도 괜찮았고, 침대에서 함께 자고 싶었어요. 물론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훈련사들도 많아요. 특히 보호자들은 정말 개를 사랑해서 힘들게 훈련시켰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죠. 이해하고 존중해요. 단지 이렇게 해도, 혼내지 않아도 개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어쩌면 <세나개>는 개가 아닌 사람을 교육시키는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강형욱 훈련사는 "개는 사람과 살기 위해 타협을 선택한 동물인 만큼 언제나 '주인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산다"며 "보호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규편성을 논의 중인 <세나개>는 19일 오후 9시 50분 3부에서 '상습 탈주범' 새우와 '우리는 아무데나 싼다' 루피와 제니 편을 방송한다. 

▲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의 '필통놀이' 시범 EBS스페셜 프로젝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반려견들의 이상 행동을 교육시키는 강형욱 훈련사가 16일 오후 서울 잠원동 보듬행동클리닉에서 '반려견과의 필통놀이'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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