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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대책위의 정식명칭은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이다. 세월호 참사의 초점은 희생자와 실종자에 있었다. 1년이 다 되어서야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였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부모님들과의 간담회가 부산대학교 인근 인문학카페 헤세이티에서 열렸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부모님들과의 간담회가 부산대학교 인근 인문학카페 헤세이티에서 열렸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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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게 죄가 되나요?"
"단원고 생존 학생은 길에서 웃으면 왜 욕을 먹어야 되나요?"
"길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게 죄인입니까?"
"엄마, 나 꿈이 있어 테러리스트야! 내 친구들 구조 안 한 해경, 거짓말만 한 방송, 믿을 수 없는 정부 다 폭파하고 싶어."

지난 10일 오후 7시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부모와의 간담회가 부산대학교 인근의 카페 헤세이티에서 있었다.

김OO(6반·남학생)의 어머니 이혜선씨, 위OO(4반·남학생)의 어머니 김야실씨, 박OO(5반·남학생)의 아버지 박재덕씨, 박OO(6반·여학생)의 아버지 박윤수씨가 '시민의 힘 민들레' 운영위원인 이현우(53)씨의 초대로 참석하였다.

생존학생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우리 아이가 살아온 게 죄가 되나요?"라고 물으며 삶과 죽음에서 살아온 75명의 단원 학생이 감당해야 했던 지난 1년을 이야기하였다. 학교 교실보다 조금 작은 공간은 이내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로 변했다. 20여 명의 여고생, 애를 업고 온 어머니, 대학생 등 60여 명은 생존학생들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부모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의 부모들이 간담회에서 지난 1년의 아픔과 분노를 이야기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의 부모들이 간담회에서 지난 1년의 아픔과 분노를 이야기 하고 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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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웃으면 사람들이 욕해요"

이혜선씨는 "우리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웃으면 사람들이 욕해요"라며 지난 1년을 이야기하며 울었다. 그녀는 또 "75명이 살아왔지만, 그중에서 친한 친구는 한 명밖에 없어요"라며 4·16 이후 학교로 돌아온 생존학생들이 예전과 같은 단짝 친구를 사귀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해 주었다.

해경이 꿈이었던 아이는 친구를 단 한 명도 구해주지 않은 해경을 직접 본 이후 꿈도 없어졌다고 한다. 단원고 아이의 학부모는 아이가 혼자 방에 들어가면 혹시나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30분마다 문을 열고 확인해요. 일부러 밝은 척하면서 "피자 먹을래?" 하면 "됐어"라고 대답해요.

"치킨 먹을래? 엄마가 먹고 싶어서 그래 같이 먹자. 그러면 마지못해 같이 먹어요."

김야실씨는 아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엄마, 나 꿈이 있어.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어."

해경이며 생존학생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거짓말했던 언론, 방송국이고, 믿을 수 없는 정부고 다 폭파하고 싶다는 아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넋을 잃고 한참을 있던 아들이 "엄마 우리 이사 가자. 내 친한 친구는 다 하늘나라 갔잖아. 살아있는 애들끼리 친구 하기 너무 힘들어! 내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친구는 다 바닷속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친구를 또 사귀어"라고 말한다.

새벽녘이나 돼서 아들이 잠들면 살아 있나 하고 아들을 만져본다고 한다. 생존한 남학생은 25명이다. 남학생들은 축구를 자주 한다고 한다. 애들이 축구 하는 걸 보면 너무 몸을 혹사하며 격렬하게 하는데 지켜보는 부모들은 마음이 찢어진다고 하였다.

박재덕씨의 아들은 친구와 손을 잡고 배에서 나오다, 친구는 물살에 휩쓸려가고 아들은 잠수해서 탈출했다고 한다. 온순한 아이였고 어느 정도 말도 잘 듣고 했는데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하였다. 학교에 있는 생존학생들만 이야기하고 부모하고는 말을 안 한다고 한다.

"가슴에 응어리를 부모한테 말을 안 해요. 부모와 이야기 안 해요."

이런 아들을 지켜보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이 살아와서 괜찮겠구나! 살아있던 친구들이 눈앞에서 물에 휩쓸리는 걸 보고 배 속에 갇혀 죽었다는 기억의 응어리를 가진 아들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고통을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 아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입니까?"

박윤수씨는 간담회에 온 부산시민에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입니까?"

박윤수의 딸은 탈출 당시 다리골절에 골반이 뒤틀리고, 허리도 다쳐서 9개의 병원에 다닌다고 하였다. 정신과 포함해 9곳의 병원에 다니며 입원과 퇴원을 3번 반복하며 자살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아이가 속에 있는 걸 꺼내야 (정신과) 치료가 되는데 의사도 힘들다고 합니다."

팔목을 3번 긋고, 수면제를 있는 대로 다 먹고 남긴 유서 8장을 남겼다고 한다. 유서를 3장도 다 읽지 못하고 "차라리 내가 먼저 죽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딸에 페이스북이나 SNS에서 욕을 한다고 하였다. 학부모는 "나쁜 말 하지 마세요. 좋은 말만 해주세요. 단원고 생존학생에게 편지 보내주세요, 애들(생존학생) 좋아해요. 힘 많이 얻어요"라며 호소하였다.

간담회를 찾아온 고등학생들을 보며 생존자 부모님들은 많이 좋아하였다. 4.16 참사가 없었으면 우리 애들도 저에들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학생들과만 따로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 하였다.
 간담회를 찾아온 고등학생들을 보며 생존자 부모님들은 많이 좋아하였다. 4.16 참사가 없었으면 우리 애들도 저에들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학생들과만 따로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 하였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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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살아남은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생존학생들이 원하는 건 "아이들은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정말 알고 싶어한다. 친구들을 왜 살리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한다"고. 그래야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선체 인양을 통해 실종자도 부모의 품에 갈 수 있게 하고 진실이 규명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을 보태달라"며 믿을 수 있는 건 국민뿐이라고 하였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간담회는 생존 학생 부모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끝낸다고 하기 전까지는 계속하기로 하였다. 1부는 부모의 증언을 들었고, 2부는 산하밴드의 공연과 참석자와 부모들과의 질문과 답변 및 격려와 위로의 말을 하였다. 3부는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생존 학생 부모들의 지난 1년간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오후 11시가 다 되어 이날의 행사가 끝났다.

울산의 이종현씨의 제안과 권유로 시작된 '생존자 부모님 간담회'는 9일 울산에 이어 10일 부산에서도 열렸다.


태그:#단원고 생존 학생, #세월호 참사, #생존자 부모들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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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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