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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을 찾아서
▲ [당신에게, 실크로드 23] 서부 타지키스탄 소그드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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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서 만난 이영애

타지키스탄 어디서든 그녀를 마주칠 수 있었다. 탤런트 이영애. 정확히는 MBC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가 파란색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이영애가 프린트된 파란 비닐 쇼핑백이다. 이 파란 비닐 봉투는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눈에 띄었다. 그 척박한 파미르 산골에서도, 호로그에서도,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파란 장금이 비닐 봉투를 들고 있었다.

호로그에서 만난 탤런트 이영애
▲ "당겐이 쇼핑백이야" 호로그에서 만난 탤런트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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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 쇼핑백은 타지키스탄의 국민쇼핑백이 되었다.
▲ 두샨베에서 만난 이영애 대장금 쇼핑백은 타지키스탄의 국민쇼핑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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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꺼운 쇼핑백은 용도가 다양했다. 식료품은 물론 옷을 운반하기도 하고, 그날 잡은 생선을 나르고 있기도 했다. 파미르에서는 깨진 창문을 막고 있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장금이를 '당겐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타지키스탄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대장금>, 이 드라마는 2007년 타지키스탄 국영방송에서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대장금> 외에도, <주몽>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 사극이 이곳에서 인기다. 실제로 이쉬카심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2013년 방영된 MBC 드라마 <구가의 서>였다. 하필 탤런트 이연희가 상의를 탈의하고 수치목에 묶여 있는 장면이었다.

MBC 드라마 "구가의 서"를 보고 있었다
▲ DVD로 즐기는 한국 드라마 MBC 드라마 "구가의 서"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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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그에서 출발해 20시간이 걸려 수도 두샨베에 도착했다. 길은 험했다. 바위산 바로 아래 굽이굽이 비포장 도로가 있다. 바로 아래는 낭떠러지다. 암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기도 했다. 혹시나 지프를 모는 운전기사가 졸까봐 한숨도 못 자고 전방만 주시했다. 아무리 달려도 주유소가 없다. 의문이 생길 무렵 길거리에 기름을 파는 차를 만났다. 운전기사가 부르니 깔대기를 든 소년이 와서 기름을 넣는다.

여기서는 휘발유를 '벤진'이라고 부른다.
▲ 주유하는 소년들 여기서는 휘발유를 '벤진'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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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 두샨베의 뜻은 타직어로 '월요일'이다. 월요일마다 이 지역에는 장이 열렸다고 한다. 과거 아무것도 없던 작은 마을을 구소련이 수도로 채택해 계획 도시로 만들었다. 가로수가 울창하게 자란 넓고 반듯한 도로를 중심으로 분수나 조형물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계획도시답게 도로가 넓고 국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 화려한 두샨베 시내 계획도시답게 도로가 넓고 국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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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샨베의 물가는 의외로 비쌌다. 특히 교통비가 비싼 편이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넘쳐나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나는 게 없는 나라여서 그런 듯했다. 음식값도 비쌌다.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으면 6천~7천 원 정도다. 서울 물가와 비슷하다. 유일한 한국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먹자 만 원 정도 나왔다. 심지어 맛도 없었다. 김치에 후춧가루를 뿌려 양념을 했다. 알고 보니 한국인이 아니라 현지인이 하는 음식점이었다.

덥고 비싼 이 곳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지만 이란 비자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신청해야했다.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는 5일짜리 경유비자 받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그래도 중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두샨베에서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다.

두샨베시장에서 만난 일자 눈썹의 여인. 까만 일자 눈썹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 미의 기준은 까만 일자 눈썹 두샨베시장에서 만난 일자 눈썹의 여인. 까만 일자 눈썹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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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무서울 필요가 있나 싶다.
▲ 타지키스탄 전통의상과 화장법을 소개하는 마네킹 이렇게까지 무서울 필요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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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두샨베에서 계속 있을 필요는 없다. 두샨베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팬마운틴 지역이 나온다. 트레킹에 목숨 거는 서양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지역이다. 이 일대는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하다. 가장 큰 호수인 이시칸더쿨과 하프트쿨이라 불리는 일곱 호수, 그리고 빙하와 빙퇴석이 녹은 물인 쿠리칼론 호수, 알라우딘 호수 등이 유명하다.

해발 2700에 위치한 알라우딘 호수. 두샨베에서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
▲ 팬마운틴의 호수 해발 2700에 위치한 알라우딘 호수. 두샨베에서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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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호수(하프트쿨)가 있는 마르그졸에는 쉬기 좋은 방갈로가 있다.
▲ 일곱호수의 소녀들 일곱호수(하프트쿨)가 있는 마르그졸에는 쉬기 좋은 방갈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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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터널을 아시나요?

아까 터널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터널이다. 두샨베 시내를 떠나 알라우딘 호수로 가는 길이었다. 터널이 이렇게 길 수가 있나 싶다. 더욱 기가 막힌 건 터널 내부다. 처음엔 터널의 모양새지만 가면 갈수록 돌이 파여진 그대로였다. 터널이라기보단 동굴의 느낌이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물이 떨어진다. 울퉁불퉁한 맨바닥에는 졸졸졸 물이 흐르고, 꽤 깊게 물웅덩이가 고여 있기도 했다.

심지어 아직도 공사 중인 구역도 많았다. 공사 차량이 뜬금없이 길을 막고 있기도 하고, 스파크가 튀기도 했다. 막장을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신호등 하나 없는 이 좁은 터널에 화물차들은 끊임없이 밀고 들어왔다. 믿을 건 운전기사의 동물적인 감각밖에 없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터널의 공식 명칭은 안좁(anzob) 터널이다. 총 터널 길이는 약 5km로 별명은 '죽음의 터널(The tunnel of death)' 이다. 이 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해발 3372m에 '안좁 패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매년 절반에 가까운 11월부터 5월까지 눈이 쌓여 이동할 수 없는 데다, 눈사태로 인한 대형 사고도 잦았다. 결국 이란 정부와 손을 잡고 이 터널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란 터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5km간 죽음의 터널이 이어진다
▲ 안좁 터널 입구 여기서부터 5km간 죽음의 터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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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을 그대로 차를 타고 지나는 기분이다.
▲ 안좁 터널 내부 막장을 그대로 차를 타고 지나는 기분이다.
ⓒ http://www.travazz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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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파미르 고원도 오르는 자전거 여행자들도 이 터널만큼은 트럭을 얻어 타고 지난다고 할 정도다. 물론 유튜브를 찾아보면 이 구간을 자전거로 달린 여행자도 있긴 하다. 자동차 창문을 닫고 달리지만 매캐한 매연이 스며들어온다. 차안 공기도 이런데 바깥 공기는 상상하기도 싫다. 실제로 환기구가 없어 일하는 노동자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일도 있었다.

두샨베에서 이 터널을 지나야 팬지켄트나 후잔드 쪽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두샨베에 머무는 2주 동안 이 터널만 5번 넘었다. 알라우딘 호수로 트레킹을 가면서, 또 펜지켄트를 가면서 각각 왕복으로 지났고, 마지막은 두샨베를 떠나 후잔드로 향하면서였다. 2006년에 착공한 이 터널은 2015년 완공 예정이었다. 솔직히 불가능해 보였다. 완공은 고사하고 다음에 올 때는 환기구와 신호등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입에는 꿀, 손에는 아교... 소그드인을 찾아서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건 중학교 때 봤던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였다. 여행 준비를 하며 이 영상물을 다시 봤다.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상물이지만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단, 화질이 아쉬울 뿐이다. 그중 소그드인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다큐멘터리 취재팀은 소그드인이 아직 살고 있다는 마을에 가고자 했으나 길이 험해서 가지 못한다. 결국, 그 마을에서 내려와서 다른 곳에 살고 있다는 소그드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된다.

NHK <실크로드> 취재팀이 가지 못했던 마을. 바로 타지키스탄 제라프샨 계곡에 있는 양놉 마을이다. 그곳에 지금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소그드인들이 아직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제랴프샨 강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가로지르며, 과거 이 일대에 소그드족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 제랴프샨 계곡 제랴프샨 강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가로지르며, 과거 이 일대에 소그드족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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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은 실크로드의 중개무역을 담당한 민족이다. 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 꿀을 먹이고 손에는 아교를 바르게 했다'고 한다.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번 손안에 들어온 재물은 절대 놓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아이가 자라 다섯 살이 되면 수학과 외국어를 가르치고 과년하면 대상을 따라 가도록 했다. 이렇게 이들의 탁월한 장사꾼 기질은 5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실크로드에 풍부한 색채를 가진 국제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소그드인의 나라는 소그디아나로 불렸고, 지금의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는 제라프샨 강 유역이다. 타지키스탄의 서부, 우즈베키스탄 국경지대인 펜지켄트(Panjikent)에는 소그드인들의 유적이 남아 있다. 펜지켄트 유적이다. 한때 국제도시로 번성했던 도시다.

도시의 심장에는 조로아스터교 신전이 있고, 2층 규모의 귀족의 집에는 그들의 삶과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화려한 벽화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 발견된 벽화나 목조기둥 등은 펜지켄트가 아니라 두샨베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뙤약볕을 걸어야하는 펜지켄트 유적. 조로아스터교 신전이 남아있다
▲ 펜지켄트 유적 뙤약볕을 걸어야하는 펜지켄트 유적. 조로아스터교 신전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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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 귀족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 펜지켄트 유적에서 발견된 벽화 소그드인 귀족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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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8세기에 아랍의 침략으로 도시는 버려지고, 소그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학자들은 제라프샨 계곡 깊숙이 살고 있는 양놉(yagnob) 마을에 '양노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소그드인들의 후예임을 밝혀냈다. 그들이 쓰는 특별한 언어가 고대 소그드인들의 언어였던 것이다.

과거엔 차가 오르지 못했던 험난한 마을. 그들을 만나기 위해선 우선 두샨베에서 차를 세 번 갈아타고 마르게브(margeb)라는 지역으로 가야 했다. 마르게브로 가는 이유는 이곳이 홈스테이가 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3시간 차를 타고 가야 양놉 마을이 나온다고 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주인장과 어렵게 흥정을 해서 차를 빌렸다.

외국인이 자주 오는 지역이 아닌지라 큰 환영을 받았다
▲ 마르게브 마을 소녀들 외국인이 자주 오는 지역이 아닌지라 큰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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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기간이어서 푸짐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 라마단의 저녁식사 라마단 기간이어서 푸짐한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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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양놉 마을로 향했다. 차를 달리는 두 시간 내내,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체 당시 아랍군에게 얼마나 쫓겼으면 이렇게 깊은 산까지 들어갔나 싶다. 겨우 양을 몰고 가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갔다. 여기서부터는 또 산을 타고 마을을 찾아 가야 한단다. 그렇게 주변 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일하러 나가고 여자들과 아이들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봐도 소그드어를 할 수 있다는 사람은 없단다. 다른 마을로 갔다. 그리고 또 다른 마을. 그 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53세 아야무다 할머니. 그녀가 소그드어를 할 수 있었다.

아랍군을 피해 이런 산골짜기까지 도망와야 했었나 싶다.
▲ 소그드인을 찾아가는 길 아랍군을 피해 이런 산골짜기까지 도망와야 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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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그녀를 찾아 이 먼 길을 왔다고 하자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다. 이제 소그드어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녀만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소그드어를 몇 마디 해주었지만 알아 들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6세기경에는 이 언어가 실크로드의 공용어였다. 상인들은 이 언어로 흥정을 하고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동으로는 중국, 서로는 비잔틴을 연결시키며 비단 및 종교, 과학, 사상을 실어날랐다. 사라진 역사의 흔적을 만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라진 민족의 언어인 소그드어는 이곳 양놉에서 이어 내려왔지만, 이제 그조차 사라질 전망이다.
▲ 소그드어를 할 줄 아는 할머니 사라진 민족의 언어인 소그드어는 이곳 양놉에서 이어 내려왔지만, 이제 그조차 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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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놉 마을에서 내려와 트럭을 얻어 타고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도시, 후잔드로 향했다. 차가 북쪽으로 갈수록 회색 산이 아니라 너른 평원이 보인다. 해바라기 밭이 곳곳에 있다. 이제 후잔드에서 국경만 넘으면 우즈베키스탄이다.

대중교통이 없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 후잔드로 가는 트럭 대중교통이 없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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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타지키스탄, #두샨베, #소그드, #팬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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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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