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막을 올리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느 부부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다른 행복한 연인들과 닮은꼴 같지만, 문득 어딘가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결혼식장 주례 앞에 서서 백년해로를 언약할 때도, '함 들어오는 날'의 신혼집 앞에서도 두 사람은 말이 없고 곁에선 침묵만 흐른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고, 당사자와 주변인물까지 모두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평범한 소녀와 소년의 만남, 그리움에 상사병을 앓을 정도로 애절한 연애부터 마침내 결혼까지. 딸과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는 그들의 이야기는 소소한 한국 가정사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다만 저녁상을 차리는 첫장면부터, 줄거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동안 스크린에 자막이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구성은 상영관에 막 앉은 관객에게 '이거, 한국 영화 맞나?' 싶은 의문마저 갖게 만든다.

청각장애인 부모를 카메라에 담은 감독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한 장면. 청각장애 부모를 둔 감독(왼쪽)은 어린시절 처음 배운 말이 음성언어가 아닌 수화였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한 장면. 청각장애 부모를 둔 감독(왼쪽)은 어린시절 처음 배운 말이 음성언어가 아닌 수화였다. ⓒ KT&G 상상마당


이 부부가 조용한 결혼식을 치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말을 하거나 들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례와 신랑 신부 사이에는 통역사가 서서 부지런히 수화로 통역을 하고, 함을 받는 밤에도 지인들이 묵묵히 길 위에 돈을 올려놓고 웃을 뿐, "함 사세요" 하는 고함소리 한 번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이처럼 흐뭇한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이길보라 감독은 1급 청각장애를 겪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침묵의 세계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감독은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다. 스크린 위로 매끄럽게 옮겨진 부부의 모습은, 비록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눈빛과 손짓으로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그려낸다. 영화는 하루하루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시간이 추억의 이름으로 퇴적되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감독은 엄마인 경희와 아빠인 상국의 결혼식 비디오를 돌려보고, 그 날을 떠올리는 두 사람을 인터뷰한다. 물론 문답은 수화를 촬영한 영상과 자막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된다. 첫만남의 애틋한 감정부터 여느 부부라면 으레 겪을 사소한 의견 충돌까지, 허공에 수화를 그려내느라 오가는 바쁜 손짓으로 재구성된다. 둘을 지켜본 할머니의 육성과 사진, 당사자인 부부의 기억으로 가족의 탄생과 역사를 되짚는 것이다.

여기에 집안의 장녀로 자라면서 수화로 옹알이를 시작했다는 감독의 목소리도 곁들여진다. 차분한 내레이션이 관객을 감독의 집으로 자연스럽게 초대하고, 또 안내하면서 천천히 '무음의 세상'으로 인도한다. 목수로 살아온 아버지와 미싱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어제를, 두 사람 아래서 자란 아들과 딸의 소회가 오늘의 기억을 차례로 들려준다.

수화로 시작한 옹알이, '어른아이'로 자란 이유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한 장면. 감독과 동생(오른쪽)은 청각장애인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왼쪽)와 살면서 수화를 배우고 통역을 한다.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한 장면. 감독과 동생(오른쪽)은 청각장애인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왼쪽)와 살면서 수화를 배우고 통역을 한다. ⓒ KT&G 상상마당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줘야 하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를 제때 들을 수가 없어서 결국 밤을 샜던 기억. 밤늦게 퇴근한 아버지가 테이프로 보청기를 귀에 붙이고서 간신히 분유를 먹였던 나날까지. 네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각각의 삶은 번갈아 나눈 고백으로 다시 만나면서 마치 퍼즐처럼 맞춰진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차츰 옛기억을 떠올리면서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엄마는 고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하려던 딸을 끝내 말리지 못했지만 못내 섭섭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말을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자 화가 나서 선생님을 찾아갔던 기억도 꺼낸다.

이에 감독은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딸로 살면서 부담이 컸다고 토로한다. 학창 시절 뛰어난 성적의 배경은 사실 주변의 측은한 시선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른아이'로 지냈던 유년기는 막내아들로 살아온 동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인 광희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대신 전화를 걸고 받으면서 어른들 사이에서 '통역사' 노릇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영화에 따르면, 남매는 꼬맹이 시절부터 통화 내용으로 '이사할 집의 전세금'이나 '은행 대출잔금'을 묻고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또한 '장애인의 자녀'라는 손가락질에 일찍 철이 들었고,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빠른 독립을 시도했다고 고백한다. 결국 짧은 단어로 쉽게 자신을 규정짓는 사람들의 편견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던 셈이다.

손으로 피우는 꽃, 소리없이 반짝이는 삶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포스터.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포스터. ⓒ KT&G 상상마당

축구선수로 활약하던 청년과 선생님이 되려던 소녀는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고 현실의 무게를 느껴야 했다. 당시 사람들이 만류하면서 '청각장애인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으니까 행복할 수 없다'는 우려에도, <반짝이는 박수소리>가 보여주는 상국과 경희의 환한 웃음은 괜한 걱정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청각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부부의 '소리없는 세계'와 우리가 겪는 '음성언어의 세계'는 경계선을 사이로 멀리 동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감독의 독백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자면 마치 머릿속에서 어떤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온종일 침묵의 삶을 살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하루가 사랑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육성의 사용 여부로 나뉘는 한 쪽이 '정상'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삶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장애'라는 말로 섣불리 넘겨짚는 태도가 어쩌면 편견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손으로 꽃을 피우듯이 수화로 말을 전하는 <반짝이는 박수소리> 속 사람들의 삶은 '장애의 극복' 차원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영화의 제목처럼, 단어를 만드는 짧은 박수는 소리없이도 밝게 반짝이며 잔잔히 마음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이길보라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돌아본 가족은, '엄마'나 '동생' 등 흔한 호칭의 테투리 바깥에서 생생하게 존재하는 개인들이었다. 이런 점을 깨닫는 순간,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더욱 서로를 보듬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이는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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