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메인 포스터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메인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기세가 상당하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 각기 독자적인 시리즈를 보유한 히어로들을 한 영화에 모아놓은 <어벤져스>가 세계적인 흥행돌풍을 기록한지 3년 만에 속편 역시 한국 극장가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무려 1283개의 스크린에서 하루 6500여 회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는 개봉 3주차인 지난 9일까지 906만 362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압도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루 6500여 회 상영은 다른 모든 영화의 일일 상영 횟수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치다.

마블 최대의 블록버스터에 대한 관심과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관 몰아주기에 더해 한국에서의 흥행을 염두에 두고 영화가 제작된 점도 이러한 열풍을 거들고 있다. 한국출신의 배우 수현이 출연하고 지난해 봄 진행한 로케이션의 결과로 마포대교, 세빛둥둥섬, 상암동 DMC 월드컵 북로, 문래동 철강단지 등 익숙한 풍경이 등장한다. 캡틴 아메리카에 의해 '서울'의 지명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그간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본과 중국의 모습을 질리도록 보아온 한국 관객들에겐 속 풀이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깊어진 드라마, 늘어난 캐릭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의 주축인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의 주축인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감독 조스 웨던은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연출과 각본을 직접 챙겼다. 전편에서 외계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낸 어벤져스 영웅들이 이번에는 스스로가 창조한 괴물 울트론을 상대한다. 감독이 울트론의 캐릭터부터 어벤져스 영웅들 각각의 드라마까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전편 못지않은 규모와 한 층 넓어진 이야기를 함께 소화하기 위한 블록버스터 연출자로서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전편보다 드라마가 더 깊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의 경우 블록버스터 속편은 전편보다 진일보한 규모로 차별화하게 마련인데 이미 전작에서 기술력 대비 최대의 규모를 보여준 탓에 드라마를 통해 승부를 건 모양새다.

영화에선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 분)의 사생활, 헐크와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의 러브라인,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남매의 이야기, 울트론과 자비스, 더 비전(폴 베타니 분)의 내면이 차례로 부각된다. 감독은 이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의 여지를 확장함으로써 영화에 깊이를 더하려 한 듯하다. 하지만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구성, 급박한 전개 가운데서 본 뜻이 제대로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헐크와 블랙 위도우의 발전된 감정은 전편은 물론 그간의 스핀오프 시리즈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 적이 없어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빠지지 않는 가족애 역시 강조된다. 호크 아이의 숨겨진 가족이 드러나고 이를 보며 여러 히어로들이 저마다 다양한 감상에 빠지는 장면이 그것이다. 남편이자 아버지이지만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위험한 상황에 투입되는 호크 아이의 모습은 영화가 강조하는 지점 가운데 하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닥터 조 역할을 맡아 출연한 한국 출신의 배우 수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닥터 조 역할을 맡아 출연한 한국 출신의 배우 수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가 이러한 드라마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울트론이 만들어지고 진화하며 어벤져스를 위협하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까지의 구성이 상당히 복잡한데 그 과정에서 드라마까지 처리하려는 시도는 다소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싶다.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처리해야 했을 드라마를 이 영화에서 진행한 건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 심지어 울트론과 더 비전,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같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설명되는 와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는 액션과 드라마 사이사이 상당한 양의 유머를 배치해 긴장을 완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식 유머는 상당수 관객들에게 얼마간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유치함이 주는 부담감 역시 적지 않다. 성공적인 유머라서라기보다는 호감 가는 캐릭터의 유머이기에 웃어주는 상황이 적지 않다. 분명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화였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함께 상반기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손꼽힌 작품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여러모로 기대에 차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마블을 기반으로 한 성공적인 두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두 영화에서 보여진 루소 형제와 브라이언 싱어의 선택은 대개 옳았던 반면 조스 웨던의 판단은 그렇지 못했던 탓이다. 보다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리고 웃고 넘어가는 이야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2편에서 첫 등장한 퀵 실버(애런 존슨 분)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2편에서 첫 등장한 퀵 실버(애런 존슨 분)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과도한 생각일 수 있지만 재미삼아 풀어보자면 나는 이 영화에서 오늘날 우리의 왜곡된 고용실태를 엿볼 수 있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기존의 어벤져스 멤버(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블랙 위도우, 호크 아이)에 더해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된다.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남매가 그들이다.

이들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적개심으로 울트론의 편에서 싸우지만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그의 속내를 깨닫고 어벤져스에 협력한다. 특별한 대가 없이 사명감과 열정 만으로 일어나 싸우고 임무를 수행하다가 한 명이 생명을 잃는다. 살아남은 이는 어벤져스의 새로운 멤버로 발탁되어 교육받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많은 위기의 순간에서 이들보다 약하고 때로 위험한 선택을 일삼았던 주요 멤버들은 끝끝내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호크 아이를 제외하면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 등장한 캐릭터는 죽고 다치며 사라져 간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만이 팀에 합류할 뿐이다.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갖 스펙을 쌓고 역량을 키운 끝에 간신히 기회를 얻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우리들. 히어로의 자리는 가득 차 있고 새로운 캐릭터는 제 자리를 얻기 어려운 게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를 보며 입맛이 씁쓸해진 건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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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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