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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노는 아이들. 숲에서 아이들은 탐험가, 생태연구가, 놀이연구가가 된다.
 숲에서 노는 아이들. 숲에서 아이들은 탐험가, 생태연구가, 놀이연구가가 된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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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이었다. 늦어도 오전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왔어야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할 준비문을 뒤늦게 챙기다 보니 어린이집에 늦게 도착했다. 지난 14일, 나는 보건 휴가를 사용하는 선생님 대신에 덩더쿵방(5세방) 일일 담임 교사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물론 나 혼자 방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니고 원장 역할을 맡고 있는 대표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진행하게 된다. 우리 공동 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부모들의 일일 교사 역할을 의무화하고 있고 그것을 규정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교사 휴가 시 대체 인력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터전에서 하루를 지내봄으로써 알게 되고 얻게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헐레벌떡 터전에 도착해보니 아이들은 방에 모여 아침 간식을 거의 다 먹은 뒤 나들이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늦게 들어온 나를 쳐다보는 교사들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으나 아이들이 "망고 왜 늦게 왔어?" 물어보는 바람에 나의 지각을 공개적으로 공식화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늦게 온 나에게 환영한다며 인사해주었고, 나를 안아주기 위해 달려들었다.

원래 아침에는 모두 모여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죽을 먹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결석한 친구들은 왜 못 왔는지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일일 교사로 참여한 사람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나들이를 갈 준비를 한다. 나들이를 가기 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가 있는지 확인 한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터전에 남아 있는 교사와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논의해서 나들이 갈 장소를 정한다. 터전 인근 몇 개의 나들이 장소 중 오늘 아이들이 고른 장소는 법화사 공터였다. 공터라지만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정도의 숲속 평지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아이들은 출발 전 화장실을 다녀오고 운동화 끈이 잘 매져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 짝을 찾아 두 줄로 서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몇몇 아이들이 서로 나랑 짝을 하겠다고 내 손을 잡기 시작했다. 양쪽 손 엄지와 약지 네 명의 아이가 나와 연결돼 있었다. 그렇게는 길을 걸을 수가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했다.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리해주셨다.

아이들 손을 잡고 법화사 공터로 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길에서 마주친 동네 어르신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법화사 공터로 가기 위해선 2차선 도로를 건너야 한다. 아이들은 익숙하게 횡단보도에 나란히 섰고 신호가 바뀌자 아이들은 서로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일제히 손을 머리 위로 들고 건너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건너서는 다시 자기 짝을 찾아 손을 잡았다. 잘 훈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이 한적해지자 아이들은 마치 처음 온 것처럼 탐구하듯 주위를 살피며 걷기 시작했다. 그 흔하디 흔한 개미를 발견해도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조금 낯선 벌레를 볼 때면 "벌레 발생"이라 외치며 아이들의 시선을 불러 모았다. 어색하고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아이들이 신날수록 긴장도 두 배로

나뭇잎과 꽃잎을 모아 천가방에 물들이기 놀이를 하고 있다.
 나뭇잎과 꽃잎을 모아 천가방에 물들이기 놀이를 하고 있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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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또래끼리 삼삼오오 흩어져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시내물가에 앉아 개구리 알을 찾기도 하고 나무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며 풀 속에 숨은 벌레들을 쪼그려 찾기도 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수록 나의 긴장감 역시 증가하고 있었다.

덩더쿵방 아이들 7명이 눈 밖에서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아이들의 숫자를 끊임없이 세었다. 숫자 세기는 10분도 되기 전에 중단됐다. 눈 밖에 없어진 아이를 찾아서 안전을 확인하고 돌아오면 또 다른 아이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렇다고 7명의 아이들을 불러모아 놓고 내 눈 앞에서만 놀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제일 불안해 보이는 아이들 옆에 있기로 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아이들이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괜히 갔다. 아이들은 내가 오자 나에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안아 올려주고 내려주는 일을 수십여 분 동안 했다. 아이들은 지지치 않았다. 떨어지는 아이도 없었다. 아이들은 공터를 누비며 놀이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놀이가 되기도했다.

그렇게 한참 뛰어 놀고 나서 아이들은 교사가 준비한 천가방에 물감 들이기 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숲에 있는 나뭇잎 꽃잎을 따서 천가방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그 위에 신문지를 덮었다. 그리고 나무망치로 내려 찧기 시작했다.

수 분동안 내려 찧으면서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포기하는 아이는 없었다. 신문지를 걷어내자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예쁘다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리스러운 작품도 있었으나 아이들은 한결 같이 만족스러워했다. 생각해보면 꼭 예쁘지 않아도 된다. 예쁘게 만들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숲속 공터에서 뛰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끊임 없이 놀이를 만들고 스스로 놀이가 된다.
 숲속 공터에서 뛰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끊임 없이 놀이를 만들고 스스로 놀이가 된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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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이 다 되어 아이들을 인솔해 터전으로 향했다. 휴식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역시 오산이었다. 아이들과 터전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개울가에 아이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졸라서 교사들이 들어가게 한 것인지 아니면 이 역시 원래 계획돼있는 나들이 일정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매우 익숙하게 길에서 내려와 개울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몇몇은 바위들을 뛰어 다니며 개울가를 탐험하고 있었고 몇몇은 개구리 알을 찾고 있었으며 몇몇은 "벌레 발생"을 외치고 있었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혹여나 다치는 아이가 발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쉴 새없이 고개를 돌리고 눈동자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이 누비는 경로가 보였다. 그들 사이에 서로 알고 있는 안전한 길을 골라 다니는 것 같았다. 개울을 뛰어 넘다가 힘에 부쳐 신발이 물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서 빨리 터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 앞에서는 지친 내색을 할 수 없었다.

터전에 돌아와서 아이들은 화장실을 가서 손과 얼굴을 씻었다. 옷을 갈아 입어야 할 아이들은 자기 옷장에서 능숙하게 옷을 꺼내 입었다. 급식 당번 아이들은 조리실에서 수저통과 급식판을 가져다가 좌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기자기한 급식판 위에 밥, 반찬, 국을 아기자기하게 올려 놓았다. 아이들은 식사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지,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점심 시간이 1시간 정도지만, 아이들이 한 시간 내 밥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하느라 밥을 먹는 아이들한테 밥 먼저 맛있게 먹고 이야기 하자며 얼러야 했다. 오전에 재밌게 뛰놀아서 그런지 대분분의 아이들이 급식판을 깨끗이 해치웠고 더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낮잠 시간이다. 아이들을 내복으로 갈아 입힌 뒤에 한 명씩 양치를 시켜주었다. 광고 모델처럼 치아가 새 하얀 아이도 있었고 충치가 이곳저곳 자리잡은 아이도 있었고 치아에 은 모자를 씌운 아이도 있었다. 예전보다 단 것에 더 쉽게 노출되는 아이들이기에 가정에서도 아이들 치아 관리에 더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이불에 눕히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줬다. 동화책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린 아이도 있지만, 여전히 눈이 똘망똘망한 아이도 있었다. 토닥토닥하면서 잠을 재웠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들

손수건에 도장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 30분짜리 프로그램으로 준비했으나 1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손수건에 도장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 30분짜리 프로그램으로 준비했으나 1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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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눈떠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아이 옆에 누워서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린 것이다. 원래는 아이들 잠을 재운 뒤에 학부모들과 그 날의 이야기를 나누는 '날적이'를 아이들별로 써야 했는데 그만 자버린 것이다.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한 아이가 있었지만 어서 자것을 재촉하면서 날적이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긴장해야 한다. 아직 일어날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 명이 일어나 부스럭 거리니 다른 아이들도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에게 조용히 책을 읽도록 했다. 그림 보는 것에 지친 아이들은 책을 가지고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부산스러워지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버렸다. 나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오후 간식을 먹었다. 생협에서 만든 요구르트와 케이크를 아이들은 깨끗이 해치웠다.

이제 내가 준비한 활동을 아이들과 나누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아이들과 손수건에 도장찍기 놀이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각종 도장과 색깔 스탬프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이들은 열심히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손수건에 도장을 찍다보면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해야할 30분이 충분히 소화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10분이 지나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망고, 그만 해도 돼?" "마당에 나가서 놀아도 돼?

난처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활동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도장을 찍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일부를 마당에 내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교사가 마당에 있었기에 원하는 아이들을 마당을 내보냈다. 방에서 도장찍는 아이들을 보니 여자 아이들만 남았다.

여자 아이들이 훨씬 좋아하는 활동이었음이 드러났다. 여자 아이들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만든 반면 남자 아이들이 놓고 간 손수건을 보니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 아이들의 손수건이 더 이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남자 아이들의 작품이 훨씬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돼질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마저 도장찍는 것을 마무리 하고 마당에 나갔다. 마당에 나가니 이미 소꿉 잔치가 열렸다. 아이들은 각종 도구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 명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몇 명 아이들은 "벌레 발생"을 외치며 생물탐구에 열중이었다.

나는 모래놀이터 근처 한 켠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이들과 상대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학부모들이 하나 둘 아이들을 찾으러 왔다. 그렇게 나의 일일교사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일일교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 역시 그들만의 사회가 있었고,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함께 자라면서 가정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어린이집이 가지고 있는 보육 철학과 방향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우려가 무색하리 만큼 주변 환경에 익숙해져있었다.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안전 수칙들을 잘 지키고 있었다.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보육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알게됐다. 실내에서나 야외에서나 교사들이 신경쓰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야외 활동 시 교사들이 갖게 되는  긴장감이란 상상 이상이다.

내 자식과 똑같은 아이들 7명을 데리고 집밖을 나선다고 상상해보면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체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각종 행정, 서류 업무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녹록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와 근무환경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봐주는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신뢰의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는 학부모님들에게 일일교사를 해보실 것을 적극 권장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볼멘소리 이전에 현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는데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태그:#공동육아, #꿈꾸는 어린이집, #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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