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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한국 기업의 인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7개 공익법 및 인권·시민단체(어필·공감·희망법·국제민주연대·민변 노동위원회·민주노총·좋은기업센터)가 결성한 기업인권네트워크(KTNC Watch)는 인도 및 우즈베키스탄 정상 외교의 화려함 뒤에 놓인 인권 침해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인도 총리의 방한 이면에 있는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 봤으며(관련기사 : 인도·우즈베크 정상 방한 환영...이면에 숨은 진실), 본 글에서는 우즈베크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우즈베크 면화 산업의 강제노동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 기자말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두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두 대통령
ⓒ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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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방한했다. 언론에서는 정상 회담의 결과로 맺은 다양한 협정 및 MOU를 비롯해 550억 달러 (약 61조 원) 규모의 인프라사업으로 한국 기업의 참여가 확대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카리모프 대통령이 '친한파'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의 방한이 벌써 8번째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 자신도 "어느 나라의 원수가 8번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말해달라"고 정상회담 자리에서 언급했다고 한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나라의 원수도 카리모프 대통령만큼 오랫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0년 구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대통령이 된 이후 1995년 국민 투표를 통해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했고, 2000년 재선 후, 2007년에는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무시하며 연임한 이후, 2015년 3월 90%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4선에 성공하며 26년째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26년 집권을 위한 다양한 노력

2014년 7월 10일 대우인터내셔널 본사 앞에서 이루어진 캠페인 현장
 2014년 7월 10일 대우인터내셔널 본사 앞에서 이루어진 캠페인 현장
ⓒ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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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카리모프 대통령은 각고의 노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해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부정 선거는 기본이고, 반대 세력에게 광범위하고 잔인한 고문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 보고되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이러한 사실은 국제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는 이러한 일에 반대하거나 보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추방당하거나 구금돼 있기 때문일 것으로 파악된다. 한 예로, 정부를 비판한 일 때문에 1999년 구금된 리포터 유스프 루지무라도프(Yusuf Ruzimuradov)는 아직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은 현재 전 세계에서 최장 기간 구금된 언론인 중 한 명이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집권 하 우즈베키스탄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인권 침해에 대해 모두 논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것 같다. 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사건을 소개하자면 안디잔 학살이 될 것이다. 2005년 5월 13일, 우즈베크의 동부 도시 안디잔에서는 역대 최악의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1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운집하자 카리모프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고,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이 수없이 학살당했다.

우즈베크 정부는 공식적인 사망자 수를 187명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관련 주민과 국제 인권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사상자 수는 수백 명에서 2500명까지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식 피해 규모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공식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 데다가, 안디잔 학살에 대해 증언하려는 자들에게 갖은 방식으로 보복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해 면화 밭으로 동원되는 시민

2014년 7월 10일 대우인터내셔널 본사에 전세계 190여 개국에서 22만 8425명의 반대 서명을 전달하는 모습
 2014년 7월 10일 대우인터내셔널 본사에 전세계 190여 개국에서 22만 8425명의 반대 서명을 전달하는 모습
ⓒ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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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잔 학살도 끔찍하지만,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상시적으로, 매해 발생하고 있는 놀라운 일이있는데 바로 면화 수확기에 전 국민이 강제 노동에 동원된다는 것이다.

매해 면화 수확기인 가을이 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흔히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바로 사방에 펼쳐진 면화 밭에서 아이들이 맨손으로 면화를 따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면화 수확기인 9월부터 약 한 달간은 학교 수업 대신 면화 밭에서 종일 면화를 따는 일에 강제 동원된다. 이때 교사들은 면화 수확량을 검사하는 사람으로 변해 하루 할당량인 50kg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성적을 떨어뜨리거나 체벌 또는 퇴학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는 등의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아동 강제 노동에 대해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 문제를 삼고 압박을 가하자, 2012년 이후 우즈베크 정부는 16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 강제 노동 동원 규모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로인해 많은 수의 성인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고 있는데, 특히 공공 영역에 종사한 시민이 동원되고 있다.

한 예로 교사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돼 그 부재로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우즈베크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에 면화 수확에 기여할 것을 강요하며 노동력이나 금품을 갈취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됐는데, 외국계 기업인 GM의 직원들이 면화 수확에 동원되고, TeliaSonera에서 기부 명목으로 금품을 납부한 것이 밝혀져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우즈베크 면화의 돈독한 '바이어'로 자리잡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996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섬유산업에 진출해, 대우 텍스타일 페르가나, 부하라 2개의 현지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인데, 이 공장들은 연간 24만 추 이상의 면사를 생산해, 우즈베크 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우즈베크 내에서 입지를 굳힌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GKD(GlobalKomsco Daewoo)를 설립한다. 조폐공사는 국내의 낙후 설비 대체 및 지폐, 수표, 상품권등 은행권 보안 용지 및 정밀 화학 제품, 신소재 섬유의 주원료인 면펄프의 공급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해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목표로 야심차게 우즈베크에 진출했다.

기업인권네트워크(KTNC Watch)에서는 2012년 이후로 꾸준히 대우인터내셔널과 조폐공사에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2013년 현지를 방문해 수확기에 학생들이 모두 동원돼 텅 빈 학교를 방문해 촬영도 했고, 학생들이 일하고 있는 밭을 방문하려던 길에 경찰에 억류된 후 어렵사리 한국으로 돌아와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국제 캠페인 단체인 Walk Free와 함께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22만 8425명이 서명한 강제 노동 종식까지 면화 구매 중지를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대우 본사에 전달하기도 했고, 2012년과 2013년에는 조폐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데 조력하기도 했다.

또 다국적기업의 인권 침해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국내연락사무소(Nationa Contact Point)라는 곳에 2014년 12월 이의 제기도 했고,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이 우즈베크에 진출해 강제 노동으로 수확된 면화를 사용하며 인권 침해를 방관하고 있는 상황은 자유권 협약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돌아 온 것은 공허한 메아리

2011년도 수확기의 면화밭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된 어린이
 2011년도 수확기의 면화밭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된 어린이
ⓒ 독일우즈벡인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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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의 여러 노력에도, 한국 기업들은 '우즈베크 정부의 공식 입장은 강제 노동이 없다는 것이고, 기업들은 현지의 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우즈베크 당국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답만 되풀이 하고 있다.

오히려 이같은 문제제기에도 관련 기업들의 우즈베크 현지 법인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섬유 부문의 협력 사업을 강화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보도를 들을 때마다 '우이독경'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르며 우리가 바로 그 '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낙심하기도 한다.

'신성한 우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속이 빈 진주와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한-우즈베크 정상회담 자리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위대한 시인 알리세르 나보이의 위와 같은 말을 빌려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나보이의 시인이 어떤 맥락에서 '신성한 우정'에 대해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방을 통해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상대의 악행을 묵인하고 동조한다면 그것이 정말 '신성한 우정'일까 싶다.

진정 신성한 우정을 쌓고 싶다면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은 면화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강제노동에 대해 더 이상 묵인하고 협조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정까지 논의하지 않더라도,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면화를 사용하는 것은 유엔 및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 이미 존재하는 국제 기준만 봐도 명백히 인권 침해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두 국가의 우정이 신성하기는커녕 악자들의 담합이 되지 않도록,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면화의 사용을 중지하고, 우즈베크 정부에 국제 기준을 수용해 강제 노동을 근절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입니다.



태그:#우즈베키스탄, #한국기업, #인권침해, #강제노동,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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