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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후 비자 발급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는 엘레나
 출국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후 비자 발급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는 엘레나
ⓒ Elena Urla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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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엘레나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요? 한국은 6월이 되니 날씨가 부쩍 더워졌고, 메르스라는 전염병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어요. 우즈베키스탄도 이맘때 쯤이면 날씨가 좋을 것 같은데, 아름다운 날씨에 어울리는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면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소식이 들려와 걱정이 되어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엘레나, 당신의 일년은 면화 농사와 함께 진행이 된다는것을 잘 알고 있어요. 늦봄, 면화 농장에서 제초작업을 위해 시작되는 전 국민에 대한 강제노동을 모니터링하고, 가을에 면화 수확과 함께 또 다시 시작되는 강제노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한 해가 정신 없이 지나간다고 했었죠.

얼마 전, 5월 31일에도 당신이 치네즈(Chinaz) 부근의 면화 밭의 제초작업에 동원된 교사들과 의사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촬영하다가 치네즈 경찰에 체포를 당하고 가혹한 일들을 당한 것을 들었어요.

경찰은 당신에게 성분이 불분명한 진정제를 투약하였고, 당신은 18시간 동안 심문을 당하였다죠. 심문 과정 동안 경찰은 당신의 머리를 가격하기도 했고, 화장실에 갈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하도록 강요당하기도 했고, 나체인 채로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가장 끔찍한 부분은, 경찰이 당신이 데이터 칩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해 의사들을 동원하여 당신이 하혈할 때까지 질과 항문을 검사하고, 엑스레이를 촬영했다는 것이었어요. 경찰은 당신에게 더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당신이 그동안 강제노동에 대해 기록한 카메라와 공책, 그리고 국제노동기구 조약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는 종이를 압수하였다죠.

끔찍한 일 당하고도 다시 현장 방문... 그리고 구금

▲ 엘레나의 18대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소감
ⓒ 우즈벡인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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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는 당신의 소식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고, 당신이 너무 걱정됐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당신은 6월 5일, 다시 치네즈시를 방문하여 일인 시위를 하였고, 또 다시 경찰에 구금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의 용기와굴하지 않는 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런데 당신의 지난 20여년 간의 세월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게 가장 당신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인권옹호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공권력의 폭력과 체포는 당신에게 일상이 되었죠. 매해 면화 밭에서 발생하는 강제노동을 고발하고 알리기 위해 취재를 하다가, 2005년 안디잔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침묵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은 쉬지 않고 희생자들을 공개적으로 추모하다가, 언론의 자유에 맞서다, 구금 당한 이들의 석방을 위해 시위를 하다가, 종교의 자유의 보장을 요구하다가, 공권력의 고문 및 강간에 대해고발을 하다가,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하다가 체포 당한 일은 셀 수도 없다고 했죠. 심지어 정부는 때때로 당신을 정신병자라며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고는 강제로 약물을 투여하였고 몇 달씩 구금을 하는 일을 몇 번 씩이나 하였죠.

이런 당신과 동료들의 지치지 않는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 지난 3월 한국에서는 지학순정의평화상이 수여되었지만 당신은 상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올 수 없었죠. 우즈벡 정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당신에게 출국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고, 우리는 당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었죠. 동영상을 통해 만난 수밖에 없었지만 당신은 꿋꿋했고, 또 무척이나 아름다웠어요.

우즈베키스탄에 만연한 강제노동

우즈베키스탄 현지 조사에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와 엘레나
 우즈베키스탄 현지 조사에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와 엘레나
ⓒ 공익법센터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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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즈벡 정부의 온갖 억압과 방해는 오히려 당신을 더욱 더 굳세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즈벡 정부는 꽤 성실하게 인권 단체들을 하나 둘 씩 문을 닫도록 만들어서, 우즈벡엔 '인권단체'라고 불릴 만한 단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당신은 꿋꿋하게 우즈벡의 인권 상황을 국내외에 알려왔죠.

그 결과 유엔의 인권이사회와 고문방지위원회에서는 우즈벡에 만연한 강제노동과 고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였고, 미국 정부는 우즈벡 정부를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최하위인 3등급으로 강등시켰고, 또 아동노동 및 강제노동으로 생산되어 수입을 금지하는 물건의 목록에 우즈벡 면화를 올려놓기도 하였죠.

이렇게 우즈벡 면화 산업에서 만연한 강제노동에 대해 세계적으로 경각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면화로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큰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심지어 공기업인 조폐공사는 그 면화로 돈을 찍어 내고 있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섬유 산업에서 두 나라간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네요.

그러고 보니 2013년 10월 우즈베키스탄 내의 한국 기업들의 인권 침해 연루 여부에 대한 실태 조사를 위해 우리 동료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엘레나 당신이 도와줘 조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들었어요.

동료들은 당신의 안내로 면화 수확에 전교생이 동원되어 텅 빈 학교를 방문한 후, 면화 밭에 방문 했다가, 경찰들에게 억류를 당하기도 했었죠. 이렇듯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알아보려고하는 사람 중에 당신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6월 9일 우즈벡 대사관에서 기자회견 열려고 해요

그래서 당신에게 빚진 우리들은 다가오는 6월 9일, 한국의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고 해요. 당신에 대한 가혹행위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그리고 당신과 같이 용감한 인권 활동가들이 이러한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우즈벡 정부에 촉구하고, 한국 정부 또한 더 이상 강제노동과 인권활동가에 대한 탄압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려고 해요.

엘레나, 해가 가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도 낙담하기는커녕 더욱 큰 열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당신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어요. 그 어떤 위협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며 당당하게 맞서는 당신의 모습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있고요. 당신의 굴하지 않는 이런모습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말 이상한 모습이겠지만 실은 우즈베키스탄이 이상한 나라이고, 당신은 이상한나라의 용감한 엘레나인 거죠.

당신의 용기가 우리에게 전해진 것처럼 우즈벡 당국과 국제사회에도 하루 속히 전해져서당신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언제 어디서든 억울한 누군가를 돕는 일이야 말로 당신이 가장 편한 일이라고 할 것 같지만. 어찌됐든 몸은 정말 잘 돌보셔야해요! 또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용기를 얻은 신영 드림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엘레나 울라예바 (Elena Urlayeva). 1957년 생. 1996년, 가족의 억울한 일을 풀기 위해 권리 옹호 활동을 시작하여 1998년 우즈베키스탄 인권사회 (Human Rights Society of Uzbekistan)의 멤버로 활동을 시작. 2006년 이후로 우즈베키스탄 인권 연합 (Human Rights Alliance of Uzbekistan) 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음.

글쓴이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상근변호사 정신영입니다.



태그:#우즈베키스탄, #엘레나, #인권활동가 탄압, #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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