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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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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미국 방문을 무기 연기했다.

미국 방문이 적절치 않다는 국민 여론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최근 이루어진 한 여론조사기관의 박 대통령 방미 찬반 여부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3%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출국 나흘을 앞두고 전격 취해진 결정이다. 메르스  확산도 확산이지만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 불안과 정부 불신이 방미 취소에 더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한마디로 밉스(MIPS)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길을 막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마 '밉스가 밉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밉스란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다름 아닌 메르스가 한국 사회에 퍼트리고 있는 공포증후군, 즉 MERS Induced Panic Syndrome을 말한다. 괴질이나 역병, 치명적인 감염병은 늘 공포라는, 때론 병원균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들고 우리에게 달려온다.

일찍이 페스트가 그랬고 두창(천연두)이 그랬다. 한때는 콜레라, 장티푸스, 매독, 결핵, 발진티푸스, 독감도 공포를 자아내는 전염병이었다. 새로운 감염병은 대부분 인간에게 치명적 바이러스, 세균 등 병원균과 함께 극도의 공포를 감염시킨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해 지금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가졌던 대표적 감염병은 에이즈일 것이다. 1981년 미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에이즈에 대해 당시 원인, 즉 바이러스가 옮기는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시커먼 카포지 육종이 온몸에 생기고 몸이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들의 모습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극도의 공포를 자아냈다.

미국에서 에이즈를 앓는 아들을 병문안 간 어머니가 병실 입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병상에 있는 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잠깐 대화를 나누고 나오는 슬픈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응급환자가 생겨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후송해야 할 사람이 에이즈 환자란 걸 알고 그냥 내버려둔 채 도망가다시피 가버리는 반인륜적 행태가 도마에 오른 일도 있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경남 창원의 한 병의원 건물 출입문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경남 창원의 한 병의원 건물 출입문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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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검사시약이 채 준비되지 않은 후진국에서는 외도를 즐긴 일부 부유층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해 검사를 받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1985년 한국인 가운데에서도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업을 하던 한 50대 남성이 에이즈에 감염돼 한국에 치료받기 위해 온 것이다. 그를 받아줄 민간병원은 없었다. 결국 서울시립서대문병원의 격리 병실에 입원했다.

에이즈환자 병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 간호사의 AIPS 일화

의사는 간호사에게 그 환자를 돌보라고 지시했다. 그가 에이즈 환자임을 안 간호사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고리를 붙잡은 채 울며불며 못 들어간다고 버텼다. 막연한 공포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임이 1983년 밝혀졌다. 또 에이즈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수혈받거나 환자 또는 감염자와의 성 접촉을 하지 않는 이상 감염될 위험성이 없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졌다. 그런데도 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공포는 전혀 예상키 어려운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5년 경남 ㅅ시에서는 온몸에 반점이 생긴 자신의 딸이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착각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네 살배기 딸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다. 1994년에는 서울에서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최근 두 번의 실수로 에이즈에 감염된 것 같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에이즈가 아니라 에이즈가 유발한 공포 때문에 빚어진 비극들이다. 일반인들은 그 용어를 잘 몰랐지만 에이즈가 유발한 공포증후군은 에입스(AIPS, AIDS Induced Panic Syndrome)로 불렸다. 이처럼 공포의 감염병이나 감염병에 대한 오해가 공포 증후군을 일으켜온 것이 전염병의 문화사였다.

필립 지글러가 쓴 <흑사병>에는 중세 흑사병 대유행 때 나쁜 것이 나쁜 것을 몰아낸다는 소문을 믿은 사람들이 변소에 쪼그리고 앉아 몇 시간이고 그 악취를 들이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에는 온갖 헛된 치료법들이 난무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편타고행단(鞭打苦行團)은 너무나 유명하다.

메르스가 생각보다 전염력이 약하고 치명률도 떨어지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21세기 첨단의학 시대인데도 왜 허무맹랑한 바셀린 요법이 등장해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퍼지는 걸까? 환자 한 명이 고향으로 가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 순창은 왜 순식간에 유령마을로 변했을까? 거리에서 메르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데 왜 너도나도 앞다퉈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활보하는 걸까?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순창터미널의 택시기사들이 손님이 없어 택시만 줄지어 세워둔 채 대기하고 있다.
▲ 줄줄이 선 택시... "손님이 없다" 메르스 환자가 나온 전북 순창 A마을이 5일부터 현재까지 격리돼 있는 가운데, 순창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9일 순창터미널의 택시기사들이 손님이 없어 택시만 줄지어 세워둔 채 대기하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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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밉스 사회로 만든 데는 애초 메르스가 40%나 되는 치명률을 지닌 무서운 감염병으로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리에 한 번 각인된 공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메르스가 생각보다 빨리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것도 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1~2m 안에서 2시간 이상 밀접접촉 해야만 걸릴 위험이 있다고 전문가와 방역당국이 강조해왔는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자꾸 나오면서 일반 시민들로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하는 자구책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밉스는 정부의 초동대처와 후속대응 실패, 그리고 거짓말이 만든 괴물

결국 밉스는 정부가 초동대처와 후속대응마저 실패한 것과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정부가 한 말들이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어버린 것 등이 얽히고설켜 생긴, 비뚤어진 감염병 문화 행태라 할 수 있다. 각종 유치원, 초중고교 등의 집단 휴업 등도 밉스를 부채질 했다.

밉스는 한마디로 정부가 만든 작품이다. 밉스를 미워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다. 밉스 때문에 당장 장사가 안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의 메르스는 타이완, 중국, 홍콩, 일본 등으로 아직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밉스는 일찌감치 정부의 헛발질로 이들 나라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여행 취소를 하고 있는 것은 밉스 때문이다.

정부는 10일부터 메르스 전용 포털을 개설하는 등 메르스와 밉스 확산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벌이겠다고 한참 뒤늦게 밝혔다. 밉스는 감염병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메르스 사망자가 결핵 사망자 수보다 적다거나 독감 수준의 감염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 등으로 밉스를 잡을 수 없다. 새로운 감염병, 통제되지 않는 감염병, 비자발적 감염, 치료제가 없는 질병, 전파 속도가 빠른 감염병 등에 대한 공포는 실제보다 더 크게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부 메르스대책반 안에 밉스를 잘 이해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해야 한다. 밉스를 하루라도 일찍 종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메르스보다 밉스가 국가 안전과 경제를 더 위협한다.


태그:#메르스, #밉스, #에이즈, #박근혜,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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