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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기자 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은 폴라로이드로 찍어 결혼식 마당 빨랫줄에 걸었다. 돌담은 친구들이 꽃으로 장식해주었다.
▲ 하객들1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은 폴라로이드로 찍어 결혼식 마당 빨랫줄에 걸었다. 돌담은 친구들이 꽃으로 장식해주었다.
ⓒ 박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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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박진희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가장 나다운 결혼식'이라는 주제로 곳곳의 특별한 결혼식을 한 부부를 인터뷰 한 기사를 연재해 올렸지요. 총 열 쌍의 부부를 취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다섯 쌍을 인터뷰하고 나서 제가 그만 덜컥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원빈과 이나영이 '같은 날'에 '비슷하게'만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저의 이야기는 조금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는데, 제가 제 이야기를 하는 민망한 일이 벌어졌네요.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올해 제 나이가 서른여섯, 10년 동안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 대형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며 쌓아온 인맥 덕에 저는 별처럼 무수한 결혼식에 참석해 하객 역할을 했습니다. 수십 번 같은 형태의 예식에 참석하며, 어느 순간 신랑, 신부와는 눈도장만 찍고 식당에 와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요. 10분 지각했는데 예식이 끝나버린 경우도 있었고, 결혼식 때만 연락해오는 친구들에게 마음 상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한 남자와 2년 정도 연애를 했고, 결혼을 약속하고, 그 재미없기만 했던 '결혼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요.

생애 가장 소중한 순간, 저와 신랑은(아래 '우리는') '하객도 즐거운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고, 다른 건 몰라도 그 목표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쉽고 미안하고 정 없다 싶어도 적은 인원을 모아 함께 만드는 작은 결혼식이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친구들이 직접 꽃장식을 도와주었다.
 친구들이 직접 꽃장식을 도와주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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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 예단, 주례, 스드메, 신혼여행을 생략하다

'작은 결혼식'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와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 하에 우리는 각각 서른 명의 사람들을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보니, '일반 예식은 고마움을 기억하고 다시금 보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어른들의 견고한 룰이고, 예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결혼식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개인적으로 작은 결혼식을 꿈꾸더라도 양가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반대하면 일반 예식을 하길 권합니다. 부모님의 기쁨도 예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그림은 신랑, 글은 신부가, 디자인은 신부의 친한 언니가 해주었다.
▲ 우리가 만든 청첩장 그림은 신랑, 글은 신부가, 디자인은 신부의 친한 언니가 해주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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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할 공간은 우리가 새 삶을 꾸릴, 그리고 신랑이 먼저 내려가 터를 잡고 있던 제주에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은 마당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가 '가장 나다운 결혼식'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장대상-이성아 부부가 자신들이 신혼 첫날밤을 보낸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줬고, 게스트하우스 주인 부부는 흔쾌히 자신들의 마당을 빌려줬습니다.

예물은 종로3가에서 26만 원짜리 14K 금반지를 맞췄습니다. 예단 대신 친척들에게 작은 책 한 권씩을 선물해드렸습니다. 남편과 저는 종교가 서로 달랐기에 주례도 생략했습니다. 대신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양가 부모님이 편지를 읽어주기로 했습니다.

스튜디오 촬영 역시 생략했습니다. 지난해 겨울, 함께 등반했던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약 5분 동안 셀프 웨딩 촬영을 했습니다. 10만 원을 주고 산 드레스(본식 때도 이 드레스를 입었지요)와 신랑이 평소에 입던 정장을 이고 지고 올라가 닷새 동안 씻지 못한 얼굴로, 함께 등반했던 가이드가 찍어준 사진은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됐습니다.

신랑이 그림을 그리고, 제가 글을 써 청첩장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뒷면은 비워놓아 초대하지 못해도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결혼식에 오실 60명의 하객에겐,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를 고려해 우산 겸 양산을 답례품으로 준비했습니다.

작년 겨울, 네팔 안나푸르나로 여행 간 김에 웨딩촬영도 하자 싶어, 본식 때도 입으려고 산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를 배낭에 넣어 등반했다. 닷새 동안 씻지 않은 몸으로 꼭대기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 입었다. 사진은 가이드 아쉬스가 찍어주었다.
▲ 셀프웨딩 작년 겨울, 네팔 안나푸르나로 여행 간 김에 웨딩촬영도 하자 싶어, 본식 때도 입으려고 산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를 배낭에 넣어 등반했다. 닷새 동안 씻지 않은 몸으로 꼭대기에서 급하게 옷을 갈아 입었다. 사진은 가이드 아쉬스가 찍어주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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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을 바꾼다'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 신랑 신부가 직접 하객을 맞았다. 답례품으로 준비했던 우산 겸 양산을 손에 들고.
▲ 하객맞이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서, 신랑 신부가 직접 하객을 맞았다. 답례품으로 준비했던 우산 겸 양산을 손에 들고.
ⓒ 정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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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를 포기하고 얻은, 사람들

청첩장을 만드는 일부터 예식장을 꾸미는 일에, 신랑과 신부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로 이뤄진 하객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예식을 하기 이틀 전부터 우리 친구들이 결혼식을 도와주겠다고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첫 번째 우리의 임무는 꽃을 꽂을 공병의 스티커를 떼는 일, 예식 공간이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 부부가 결혼식을 위해 그간 모아두었던 빈 병을 손톱으로 까면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사람들은 작업을 하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습니다. 신랑, 신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신랑은 결혼식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결혼식 당일엔 얼굴에 BB 크림 하나 바르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다이어트와 피부관리는커녕 예식장에 차려질 다과를 준비하느라 마트를 돌아다닌 기억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공병 스티커를 떼는 일이, 장보러 다니는 일이, 예식 전날 밤 신랑과 큐시트를 맞춰보는 일이, 우리의 결혼식을 도와주러 온 이들과 눈 마주치며 대화하는 일이, 얼굴에 주름 하나 억지로 펴는 일보다 천배 만 배는 더 행복했습니다. 좀 못생겨도, 좀 늙어 보여도, '예식의 핵심'을 정성껏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다른 어떤 것과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된 건 없어도 모두가 즐거웠던 예식 

양가 부모님이 미리 준비해오신 편지를 하객들과 신랑 신부에게 읽어주셨다.
▲ 주례는 부모님 양가 부모님이 미리 준비해오신 편지를 하객들과 신랑 신부에게 읽어주셨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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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5년 5월 30일 오후 12시, 제주도 평대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예식을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제주의 하늘은 그렇게도 파랬는데, 당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 오는 날 야외 결혼식을 하는 진상 부부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비옷을 껴입고 예식의 마무리를 도왔지요.

비가 왔지만, 예정대로 우리는 함께 마당 바깥에서 하객을 맞이했습니다. 답례로 준비했던 우산은 정말 요긴하게 쓰였고요. 신부의 절친이 비 오는 마당에 맨발로 나타나 축시를 낭송했고, 우리는 음악에 맞춰 옥상에서 함께 입장했고, 함께 사회를 보았습니다.

음향을 맡은 친구는 비옷으로 만든 간이 천막에서 수고를 해주었다.
 음향을 맡은 친구는 비옷으로 만든 간이 천막에서 수고를 해주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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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세부터 82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하객들이 비를 맞으며 신랑, 신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줬습니다. 준비돼 있던 순서 중 시아버님이 한 달 동안 만드신 동영상은 틀지도 못했습니다. 축가 대신 마술 공연을 해주기로 한 이모부님 역시 우천으로 준비했던 공연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쉬워는 했어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화를 내거나 수군거리지 않았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을 기억하며 그저 즐거워 해주고, 진심으로 축복해줬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억지로 오지 않은, 정말 신랑, 신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분위기였습니다.

5만원 권 한 장이 든 부케를 옥상에서 던졌다. 시어머니 친구분이 받으셔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후에 결혼을 하지 않은 신부의 친구에게 전달해주셨다.
▲ 부케는 옥상에서 5만원 권 한 장이 든 부케를 옥상에서 던졌다. 시어머니 친구분이 받으셔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후에 결혼을 하지 않은 신부의 친구에게 전달해주셨다.
ⓒ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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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 구분 없이 모두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 단체사진 가족, 친구, 구분 없이 모두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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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이후에나 '같은 날, 원빈과 이나영이  강원도 산골에서 작은 결혼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결혼하지 않았어도,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인 우리의 결혼식은 당연히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우리가 벌인 작은 결혼식(물론 성가시고 귀찮은 부분이 없진 않지만,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꼭 한 번 용기내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가장 나다운 결혼식' 연재 기사를 계속 써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틀 전부터 물에 불려 스티커를 떼낸 공병은 예쁜 꽃병이 되었다.
 이틀 전부터 물에 불려 스티커를 떼낸 공병은 예쁜 꽃병이 되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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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담 사이에 꽃을 끼워넣었다. 친구(웰컴투마이룸)가 서울에서부터 싸들고 온 꽃들이다.
 제주 돌담 사이에 꽃을 끼워넣었다. 친구(웰컴투마이룸)가 서울에서부터 싸들고 온 꽃들이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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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신혼 여행 대신 신혼 산책을 선택한 우리는 휴가받은 일주일동안 '신혼집'을 숙소로 삼고 근처 올레길과 숲길을 매일 걸었습니다. 휴가의 마지막 날인 아침엔, 저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남편은 책상이 될 상판에 니스칠을 했습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결혼, #작은결혼식, #니콜키드박, #박진희박, #공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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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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