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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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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5일  낮 12시 25분]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등 입법취지를 위배한 정부 시행령에 대한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 문제는 헌법의 문제이자 우리 미래가 달린 정치와 국정의 기본질서에 관한 문제로 당장의 정치적 편의에 따라 정부가 따라갈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거부권 행사였다. 거부권만 행사한 게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여야 모두를 싸잡아 '구태정치'로 규정했다. 특히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신임'을 표했다. 청와대가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이후 흔들리던 당 장악력을 회복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도 해석된다.

반면, 개정안을 '자동폐기'시키고 유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도 무마시켜 당청갈등은 물론, 당내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 갈등도 봉합시키려 했던 친박 온건파들의 구상은 뿌리째 흔들린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직격하는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한 이상, 향후 당청관계와 당내 계파갈등은 계속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 못 시킨 개정안 다시 시도하는 저의 뭐냐"

박 대통령의 목소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음 언급할 때부터 높아졌다. 국회에 대한 불신도 물씬 배여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위헌소지가 큰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됐다"라며 "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은 역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됐지만 항상 위헌성 논란이 계속돼 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그것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서,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됐다"라며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의 (행정)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서 위헌 소지가 크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의 '저의'를 의심했다. 즉, 국회가 정부를 압박하려고 국회법 개정안이라는 '수'를 낸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박 대통령은 "이것은 사법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으로 역대 정부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안"이라며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반발에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개정안의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하며 강제성 논란을 누그러뜨린 것도 그런 '수'의 일환으로 봤다.

박 대통령은 "위헌성 문제가 커지자 법안을 수정하면서 '요구'를 '요청'으로, 한 단어만 바꿨는데 요구와 요청은 사실 국회법 등에서 같은 내용으로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을 국회에서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이것은 다른 의도로 보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국회, 민생법안 대신 정치적 이해관계 묶인 것부터 해결해"

박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왔다"라며 국회야말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그 단적인 예로 지금 정부가 애써 마련해서 시급히 실행하고자 하는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 째 발이 묶여있다"라며 "가짜 민생법안이라고 통과시켜주지 않고,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해볼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고선 일자리 창출을 왜 못하냐고 비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민생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라며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 영유아보육법 ▲ 지방재정법 개정안 ▲ 관광진흥법 ▲ 서비스발전기본법 등을 거론하며 "진정 정부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면 한 번 (이 같은) 경제 법안을 살려라도 본 후에 그런 비판을 받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여야가 지난 3월 처리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서는 "매년 800억 원 이상의 운영비를 지원하는"이라며 당략적 법안으로 평가했다. 지난 5월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당시 "막 나오는 법들"이라며 '의원입법'을 비판했던 것과 같은 취지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을 빅딜로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통과시킨 법안들은 국민들의 민생과 삶에 직결되지 않고 국민세금만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태정치 이제 끝내야, 국민들이 선거에서 심판해주실 것"

박 대통령의 공세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민의에 반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은 "저도 당대표로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무수히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겨서 당을 구해왔던 시절이 있었다"라면서 현 정치 상황을 '구태'로 규정하고 '심판'을 요구하기도 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회를 심판해달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셈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이 되기 위해 정치권에 계신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다시 기회를 준다면 신뢰정치를 하고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에 가까운 선언을 했지만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그 정치적 신의는 지켜지지 않았다"라며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라며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자신의 '탈당'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과 청와대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면서 "새누리당이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선거를 도운 의원들을 겨냥, '공허함'을 거론하면서 '국민의 심판'까지 언급한 것은 여당이 제대로 정부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국무위원들을 향한 당부 역시 사실상 국회와의 충돌을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였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황교안 총리를 중심으로 국무위원들께서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말고 소신과 신의를 오직 국민들을 위한 일에만 지켜나가셔야 한다"라며 "과거 우리 정치사를 보면 개인적인 보신주의와 당리당략과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부정부패의 원인제공을 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거두고 국민을 위해 살고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라며 "앞으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이 저에게 준 권한과 의무를 국가를 바로세우고 국민을 위한 길에만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박근혜, #거부권,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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