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손님>에서 피리부는 떠돌이 악사 우룡 역의 배우 류승룡이 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이한위 선배나 신선한 얼굴의 류승룡, 장영남 같은 신인배우들, 그리고 색다른 느낌을 주는 박정아씨와 김지수, 정재영, 황정민(여)의 다양한 출연까지….'

2005년 8월. 장진 감독이 한 매체에 기고한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제작일지에 류승룡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온라인 기사에 류승룡이 최초로 언급되는 순간이다. 물론 더 올라가면 2000년 6월, 알림 글 형식의 공연 <난타> 출연진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긴 하지만 정식 기사로는 처음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년 뒤. 류승룡은 소위 스타 반열에 올라 있다. 그동안 천만 관객 동원 영화 세 편(<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찍었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최근엔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손님>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여기에 스타들만 찍을 수 있다는 통신사 광고부터, 각종 매체에 그의 이름이 연일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알아야 할 것은 류승룡의 '현재' 앞에는 19년의 무명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신선한 얼굴이 익숙한 얼굴이 되기까지의 그 '과거'를 놓고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의와 약속의 실천... 반복해왔던 다짐들  

<손님>에서 류승룡은 아버지가 됐다. 역할로 보면 <7번방의 선물>과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는 정신 지체가 있는 아빠라는 특수한 설정이다. 보다 편하게 '아버지 류승룡'의 모습을 끌어온 건 <손님>이 처음이다. 실제로 두 아들의 아버지인 류승룡은 <손님>을 "약속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한국전쟁 직후. 들끓는 쥐를 쫓아주는 조건으로 이방인이 한 외진 마을에 묵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 약속을 파기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그렸다.

- 약속을 지키지 않은 마을 사람들에게 우룡이 직접 응징합니다. 폐병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위해 쥐를 쫓아냈지만 결국 빨갱이로 몰리며 아들까지 잃는데요. 그 분노를 감안해도 일종의 사적 복수라 할 수 있는데요.
"처음엔 복수를 체념하며 마을을 떠났는데 결국 아들이 죽잖아요. 인륜, 신의를 저버린 광기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해요. 분명 사적 복수일 수 있죠. 하지만 만약 아이가 살았다면 복수를 하지 않고 그냥 마을을 떠났을 겁니다. 그게 아빠의 마음이니."

 <손님>의 한 장면

<손님>의 한 장면 ⓒ CJ E&M


- 신의가 중요한 화두죠. 평소 약속 내지는 신의를 중시하는 편인지요.
"다들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려 하겠죠? 얼마나 잘 지키는지의 문제인데 전 병적으로 지키려 해요. 연기도 결국 약속에서 시작되거든요. 연습시간, 공연시간, 대사나 액션을 주고받는 것도 다 약속이죠.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치거나 작품을 망칩니다. 또 남북 휴전 역시 국가 간 거대한 약속이잖아요. 정상 회담 역시 그렇고."

-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1986년부터 연극을 시작했는데 무명시절이 꽤 길었습니다. 34살 무렵에 결혼해 이듬해 <아는 여자> 단역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했으니까요. 그간 자신에게도 여러 약속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 약속을 얼마나 지켜왔나요.
"약속까진 아니고 다짐 정도입니다. 운동을 하자, 안 좋은 습관을 끊어내자, 이런 거죠. 인생이 내 계획대로 다짐대로 흐르지 않잖아요. 사람 속을 알 수 없듯 인생 역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순간을 잘 살아내는 게 지금은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 먼 미래를 안 보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런?
"그렇죠. 찰나의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게 모여 미래가 되잖아요. '오늘 하루 뭐했니?' 물어보면 '지금은 <손님>을 위해 인터뷰한다!'고 답할 수 있고.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뭐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된 적도 없었고요. 인생에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요."

- 긴 무명 시기에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원망하거나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었을 텐데요.
"순응하면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던 거 같아요. 고민해서 해결될 수 있는 건 빨리 고민해서 실행에 옮기고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건 크게 고민은 안 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요? 힘들지 않았습니다. 연기하는 게 그냥 즐거웠습니다. 만약 내 건강이 나빠지거나, 무슨 사고가 생기거나, 연기에서 어떤 보람을 못 찾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 그래서 생계형 아르바이트도 즐겁게 했던 건가요.(당시 공연 <난타> 멤버(1998년~2002년)로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기도 했지만 류승룡은 이를 돌연 그만두고 비데 조립, 족발 배달, 실내 인테리어, 배추 장사, 방패연 장사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 가며 연극 무대에 섰다-기자 주)
"즐겁게 했죠. 연기를 위해 일 한 거고, 굶으면 안 되니까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연기로는 안 되니까 아르바이트를 한 거죠."

"내 이미지 식상할 때 됐지만 두렵진 않다"

 영화 <손님>에서 피리부는 떠돌이 악사 우룡 역의 배우 류승룡이 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손님>에서 피리부는 떠돌이 악사 우룡 역의 배우 류승룡이 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서울종합예술학교 재학 시절 은사인 김효경 교수가 '류승룡은 늦게 피는 꽃'이라 비유하면서 '포기 말고 연기하라'고 말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마흔 살까지만 더 해보라고 했다고.
"언제까지 하라 한계는 정하진 않았어요. 그때 제가 20대였는데 얼굴은 40대 같다는 말은 하셨지.(웃음) 이젠 고인이 되셨지만 제게 딱 한 번 하신 그 말씀이 큰 힘이 됐고, 도움이 됐습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인지도를 못 쌓았다면? 어유! 그래도 계속 연기했을 겁니다. 인지도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물론 생활이나 여러 면에서는 힘들고 불편했겠죠. 근데 유명인이 아니라고 힘들어하진 않았을 듯해요.

<황진이>(2007)를 할 때도, 또 그전에도 무명이었지만 힘들진 않았습니다. 영화란 게 이런 거구나, TV에서만 보던 배우들이 여기에 있구나 신기해하긴 했죠. 아마 나름대로 자족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뜬다는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몸부림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에 빠지면) 자신만 다칩니다. 역으로 말해도 똑같아요. 전 압니다. 지금의 유명세 혹은 인지도가 언제든 소멸될, 아주 잠시 잠깐의 그런 거란 거. 아주 잘 알고 있어요."

-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때가 류승룡에겐 하나의 분기점이었을 겁니다. 코믹한 이미지로 이후 여러 광고에도 출연했죠. 특정 이미지의 소모를 걱정하진 않았나요?
"그런 모습이 그땐 신선했겠죠. 이젠 식상하단 거 압니다. 식상할 때가 됐고요. 광고라는 건 보편적 대중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소모하는 거잖아요.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나 <최종 병기 활> <표적>을 했고, 그 이후엔 <명량>을 했죠."

- 상업적으로는 남들에겐 목표일 수도 있는 걸 일정 부분 이뤘어요. 광고를 비롯해 흔히 말하는 다작을 하면서 배우로서 한계 같은 걸 느끼진 않을지.
"이미지 고착화에 대한 우려들에 감사해요. 그런데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광고야 곧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웃음) 이쪽 생리가 그렇잖아요. 다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역으로 질문 드리면 과연 1년에 몇 편을 해야 다작이 아닐까요? 1편? 2편? 최민식, 송강호 선배 정도가 1년에 1편 정도 하시는 거 같은데 그분들 제외하고는 다들 왕성하게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엔 4년째 매년 두 작품씩 개봉하고 있는데 글쎄요... 다작의 기준이 궁금하긴 합니다."

- 그 지점입니다. 다시 질문하면 작품을 쌓을수록 표현의 한계, 표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저 아니라도 누구나 갖고 있을 두려움 같아요. 그릇이 넉넉한 바다 같은 사람은 어마어마한 물을 퍼내도 마르지 않을 거고, 어떤 사람은 금방 고갈될 수도 있죠. 그럴 때마다 이준익 감독님의 말이 힘이 됩니다. 배역, 소재 고갈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을 때 '그럴수록 샘을 더 깊이 파라. 손가락에서 피가 나더라도, 손톱이 갈라지더라도. 그러면 더 맑은 물이 나올 거다'라고 말씀해주셨죠.

다작에 대한 피로감 내진 고충은 한 5년 전쯤 겪었던 거 같아요. 그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이준익 감독님의 말에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게 있어요. 내 한계를 인정하고 후벼 파다 보니까 조금씩 맑은 물이 나오더라고요."

 영화 <손님>에서 피리부는 떠돌이 악사 우룡 역의 배우 류승룡이 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상업영화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이 지나면서 공통적으로 연기 인생을 종주나 횡단에 비유해왔습니다. 오르내리는 등반의 이미지가 아니라 끝내 완주해야 할 긴 여정으로 설명하면서 종착점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선배든 후배든 종착점이 있다는 건 당연한 진리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내다볼 수 있을까요.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오늘 집에 가다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요. 감히 미래를 장담하진 못할 거 같습니다. 누구는 길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게 짧은 여정일 수도 있습니다."

물리학에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있다. 질량을 지닌 모든 물체는 에너지가 있으며 어떤 운동을 하든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전제 조건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 에너지는 느닷없이 생기지 않기에 끊임없이 일(work)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류승룡이 무명 시절 19년 동안 자신에게 작용시킨 '일'이 지금 그의 '연기 에너지'가 됐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의 에너지는 이 땅의 '지각 인생'들을 위한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분명 류승룡은 한국 영화계에서 훼손될 수 없는 에너지 총량의 일부다.

류승룡 손님 천우희 이성민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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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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