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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실내온도 30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올해 첫 에어컨 가동 준비에 나섰다. 그때 내 눈에 번쩍 띄인 책이 한 권이 있었으니 바로 <달샤베트>.

'아, 이런 책도 있었지.'

<달 샤베트> 겉표지
 <달 샤베트> 겉표지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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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더워서 잠도 오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밤. 달도 녹아내릴 만큼 더운 어느 여름 날,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는 흘러내리는 달방울을 대야에 받아 왔어. 빛나는 노오란 달방울들을 무엇에 쓸까 고민하던 반장 할머니는 샤베트 틀에 나눠 담아 냉동칸에 넣어두었지.

그때 였어. 날씨 만큼이나 뜨겁게 돌아가던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가 피시식 하고 멈춘 건. 전기를 많이 써서 정전이 된 거야. 모두 밖으로 나왔어. 너무 어두워서 잘 걸을 수도 없었지만, 반장 할머니네 집은 달랐어. 달방울 때문인지 밝고 노란빛이 새어 나왔거든. 모두 불빛을 따라 할머니집에 갔지.

할머니는 시원하고 달콤한 달샤베트를 나눠 주었어. 곧 신기한 일이 벌어졌지. 달샤베트를 먹자 더위가 싹 달아나 버린 거야. 모두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청했어.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었지.

그때 다시 똑똑똑. 반장 할머니가 문을 열자, 달토끼 두 마리가 슬픈 얼굴로 서 있었어.

"달이 사라져 버려서 살 곳이 없어요."

할머니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 옳거니. 할머니가 남은 달 물을 꺼내 화분에 붓자 환하고 커다란 달맞이꽃이 피어났어. 꽃들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자 까만 하늘에 작은 빛이 피어났고 곧 커다랗고 둥그런 보름달이 되었지. 토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달 샤베트와 냉동젖

<달 샤베트> 안 표지
 <달 샤베트> 안 표지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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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잊게 해줄 만큼 달콤하고 시원한 달 샤베트라니. 지금 당장 맛 보고 싶다."
"그거 어린이집에서 한 번 만들어 봤는데..."
"응? 어떻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노란 물로 샤베트를 만들어 먹었다구."

녀석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달 샤베트> 책장을 넘기다 안 표지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음란마귀라도 씌인 건지 내 머릿속에 생각난 건 '가슴'이었다.

"근데, 엄마는 저 달이 꼭 쭈쭈 모양 같다."
"응? 하하하."
"뭐가 웃겨, 니들은 여자 아니냐? 곧 엄마처럼 이렇게 생길 거라고. (더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들) 잘 봐. 달 모양이 진짜 엄마 쭈쭈 같지 않아? 저렇게 똑똑 떨어지는 건 엄마 젖이고. 너희들 왜 이러셩? 니들이 다 먹고 큰 거인데..."

아이들 웃음보가 터졌다. 웃음이 잦아들 줄 모른다. 그 사이 내뱉은 혼잣말.

"달 샤베트는 그럼 냉동젖 쯤 되는 건가?"
"(웃음을 겨우 멈추고) 냉동젖? 그게 뭔데?"
"너 몰라? 너 어렸을 때 엄마가 일하거나 외출하면 젖을 직접 먹일 수 없으니까, 젖을 짜놨다가 냉동시킨 뒤에 해동시켜 먹였어."
"정말? 젖을 아이스크림처럼 먹었다고?"
"아니, 해동시켜서 따뜻하게 해서 먹였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아이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뭔가 굉장한 비밀을 하나 공유한 것 같은 기분. 하긴 4살 터울 동생도 초유를 일주일 정도만 먹이고, 분유를 먹였으니 '냉동젖' 같은 건 보지도 못했겠구나.

한여름에 출산해서 밤이면 한두 시간 마다 깨 모유를 먹이느라 더위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가물한데... 그림책 한 권으로 오래된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 무더운 밤 우리 아이도 엄마 젖을 꿀꺽꿀꺽 먹으며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달 샤베트 - 개정판

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2014)


태그:#달샤베트, #백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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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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