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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선서>
하나.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전체사회와 함께 한다.
하나.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 이익보다 공공 이익을 앞세운다.
하나. 나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준수함으로써,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사로 헌신한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를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간호사에게 '나이팅게일 선서'가 있다면, 사회복지사에게는 '사회복지사 선서'가 있다. 국가에서 발급받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한쪽 면에 인쇄되어 있는 '사회복지사 선서'를 처음 봤을 때 적지않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사회복지사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키는 사회복지사의 책무는 감히 성직자의 그것에 비견할 만큼 숭고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통 전문대학이나 4년제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졸업장을 받으면 사회복지 2급 자격증이 주어진다. 졸업장이 곧 자격증이 되는 셈이다. 평생교육원이나 학점은행제를 통해서도 과정만 이수하면 손쉽게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당연히 전문성과 자질 논란, 무분별한 발급 아니냐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국가에서 직접 실시하는 1급 사회복지사 자격증 시험이 별도로 존재한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나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2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곧장 1급 시험에 응시했다. 사이버대학이다 보니 강의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이루어지고 중간, 기말 시험도 100% 오픈북이다. 사이버대학의 수업이나 평가받식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만 패스하면 통과의례처럼 자격증이 주어지는 사회복지교육 시스템에 과연 '사회복지사 선서'에 담긴 철학과 사명을 논할 공간이 있는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허술하고 무분별한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 제도는 국가시험제도로 개편될 전망이다. 충분히 필요한 일이다. 개편이 되면 자격증의 남발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진지한 평가가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격증 제도 개편이 복지 현장의 변화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에게만 초점, 사회구조적 맥락 소홀...사회복지 교육의 현주소

<옆으로 간 사회복지 비판> 표지
 <옆으로 간 사회복지 비판> 표지
ⓒ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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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사회복지사가 자주 만나게 되는 적지 않은 가족들은 빈곤, 차별, 장애, 폭력, 중독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이 개인과 가족에게만 있는 것일까?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많은 사회복지사는 문제의 진단과 1차적인 해결책을 개인과 가족이 책임에 초점을 두고, 주로 개인 및 가족에 대한 상담과 치료, 교육과 훈련, 전문기관 의뢰 및 자원 연계 등 기능적이고 미시적인 서비스에 머무르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복지사들이 클라이언트이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소명을 개인의 변화에 두는 사회복지 현장의 이 같은 경향성 때문에 사회 변화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인상까지 받고 있다.

원래 사회복지전문직 미션의 근본적인 속성은 사회정의와 사회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복지는 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실천하는데 있어 많은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사회복지 교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부나 석사과정에서 소개하고 가르치는 사회복지실천의 주요 모델과 접근법은 주로 개인과 가족등의 개인 변화에 초점을 두는 미시적 수준의 심리치료에 기반을 두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델이 일색이다. (4쪽)

<옆으로 간 사회복지 비판 : 급진사회복지실천가들의 현장 이야기>는 사회복지실천 기법 중의 하나인 '급진사회복지실천' 이론을 소개하면서 한국 사회복지학계의 보수성과 사회복지실천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한다. 또한 저자들(김성천, 김은재)은 여성, 아동,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실천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복지 현장의 변화와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실천 방법은 미시적인 방법과 거시적인 방법으로 구분된다. 클라이언트 문제의 원인을 주로 개인과 가족에게 초점을 두고 접근하는 '미시적 접근'은 개인의 부적응과 병리를 강조하는 심리사회적 모델에 주로 쓰인다.

반면 '거시적 접근'은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환경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거시적 접근 중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고 문제 해결을 빠른 시일 내에 도모하는 것이 바로 '급진사회복지실천'이다. 급진사회복지실천은 사회정의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사후치료보다 사전예방 차원에서 구조적인 변화에 주안점을 둔다.

사회복지역사에서 급진사회복지실천은 비교적 비주류에 속하는 이론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1884년 런던의 '토인비홀'을 효시로 하는 '인보관 운동'은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도의 모순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국가 개입에 의한 사회개혁과 지역 주민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사회적 실천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급진사회복지실천은 사회환경 개선을 통해 사회 정의와 평등, 분배를 달성하고자 했던 '인보관 운동'의 명맥을 잇고 있다.

나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관련 전공서적들을 접했지만 '급진사회복지실천' 이론과 기법은 생소했다. 그만큼 교육현장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하고 것이 현실이다. 저자들은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급진적 접근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한국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많은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인데,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구체적으로 배웠던 사회행동 등의 거시적 방법을 왜 한국에 소개하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6쪽)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회복지사 양성 교재나 전문서적 출간에서 급진적 실천 관련 서적은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천영역에서도 사회구조적인 개혁을 도모하는 사회행동, 정치적 임파워먼트, 계층 옹호 등과 같은 거시적인 방법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현실적합성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보수적이고 체제순응적인 방법을 우선하는 경향이 팽배하다. 오늘날 장기 불황과 사회양극화, 빈곤의 확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빈곤 취약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시적 접근 일변도는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변동에 따라 거시와 미시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으로 사회복지실천의 이론과 기법도 재구성해야 나가야 한다.

오랜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감행했던 관주도적 사회통제 성향이 아직도 적지 않게 잔존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회복지 시설과 기관은 정부보조금이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살펴보면, 주로 정부 정책이나 자원을 지자체에 전달하고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거나 매개하는 역할에 활동의 영역이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실천환경에서 사회복지사가 급진사회복지실천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가지고 클라이언트에게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정부정책을 클라이언트와 함께 도전하여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이러한 한국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복지실천모델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환경에 대한 개입을 중시하는 거시적 실천과 급진적 실천을 확장하고 강조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급진사회복지실천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사회복지 부문에 종사하는 종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23~24쪽)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복지사 선서'를 지킬수만 있다면

"복지라는 것이 확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면에서 와 닿을 수 있어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바꿔서 '부양의무기준을 바꾸면 당장 좋아지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그 기준 때문에 고통받는 분이 있다면 그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소통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해요. 나중에 복지제도가 바뀌고 사각지대가 없도록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과에 불과하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을 함께 소통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과정에서 말이죠. 주변에 억울하거나 딱한 사람이 있을 때 같이 연대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캠페인이고, 대부분의 넓은 복지에 포함되는 것이에요. 한편으로 결국은 사람을 둘러싼 '사회'라는 실존적 환경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지금 있는 제도라도 제대로 관심을 갖고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복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인터뷰, 125쪽)

100년을 훌쩍 넘는 유럽의 복지 역사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한국의 복지는 수많은 약자들이 기득권 집단과의 첨예한 갈등과 투쟁 벌이는 과정에서 발전해나갈 것이다. 삶의 영역 전반에서 사회복지 실현의 요구가 높다는 것은 사회복지운동의 폭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여타의 사회운동과도 연대할 수 있는 교집합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복지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회복지사들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가들에게도 필요한 작업이다.

나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의 근본적인 속성상, 사회복지사들의 각성과 연대, 단결이야말로 복지현장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들의 노력도 필요하겠거니와, 사회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도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사회복지를 '시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극복해야 하고, 단순히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복지사 선서'대로 일할 수 있을 때, 한국의 사회복지도 비로소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옆으로 간 사회복지 비판>(김성천, 김은재 지음 /학지사 펴냄 / 2015. 04.)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옆으로 간 사회복지 비판 - 급진사회복지실천자들의 현장 이야기

김성천.김은재 지음, 학지사(2015)


태그:#급진사회복지실천, #사회복지,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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