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안산 동산고등학교 3학년 전지영 학생은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 청소년 부문 '꿈틀꿈틀꿈틀상(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상금으로 받은 30만 원 모두를 빙수 파티를 여는데 썼다고 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나누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특별한 파티,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4일 안산 동산 고등학교에서 열린 ‘빙수 파티’ 모습
 지난 4일 안산 동산 고등학교에서 열린 ‘빙수 파티’ 모습
ⓒ 전지영 제공

관련사진보기


지난 8월 4일, 안산 동산고등학교에서는 나의 작은 상상에서 시작된 빙수파티가 열렸다. 3학년 학생들과, 학교 선생님, 행정실과, 급식실에 계신 집사님들까지 약 500명 가량의 사람들과 함께 빙수와, 웃음을 나눌 수 있었던 그 경험과 소감을 함께 나누려 한다.

프로젝트명 '지영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지난 6월 16일, 나는 서프라이즈 파티를 기획했다. 아니 사실 기획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상에 가까웠다. '전교생이 다 같이 시원한 걸 먹으면 진짜 재미있겠다', 이 단순한 상상이 바로 이 빙수파티의 시작이었다.

처음 내가 생각한 것은 수박 화채였다. 마침 그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교무실에서 수박화채를 해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이기도 했고, 특별한 기구나 많은 재료가 들지 않을 것 같아 수박 화채정도면 다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학교를 다니며 정말 많이 배우고, 느끼고, 행복했는데 다른 친구들도 그런 즐거운 추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런 추억을 내가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공책에 이런저런 계획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이름을 지었다 일명 '지영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와, 전지영 미쳤어!", "그러는 너도 미쳤어~"

혼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던 중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이게 정말 실행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내 이야기를 가장 진지하게 들어줄 친구를 찾아갔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수정아 너 방학 때 바빠? 하루만 나한테 빌려 주라", 앞뒤 사정 다 잘라낸 내 물음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친구에게 나는 전교생에게 수박화채를 나눠줄 계획을 세웠다는 것과, 너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 지금까지 세운 대략의 계획들을 이야기했다.

긴장하며 반응을 살피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와, 전지영 미쳤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진짜 좋다, 나도 도와줄게"였다. 이런 식으로 두세 명의 친구에게 더 이야기했는데 그들의 반응도 비슷하게 긍정적이었다. 이런 어설프고 준비 안 된 계획에 "미쳤어~"하며 함께 해준다는 친구들에게 내가 마음속으로 했던 대답은 "고3이 이런 일 한다는데 좋다고 같이하자는 너희도 미쳤어~"였다.

수박이 몇 통 필요한지도, 돈은 얼마나 필요한지도, 무슨 재료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함께 해준다던 친구들, 젊음의 패기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그 날부터 수박을 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구하는 자에게 수박은 넝쿨째 굴러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수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수가 아닐까요?
ⓒ 전지영 제공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함께 할 동료까지 구했지만 사실 이 계획의 핵심 문제는 '돈'이었다. 다른 부분들은 열정과 의지로 가능하다고 해도 현실적인 '돈'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벌인 일이니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오마이북> 출판사에서 진행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독후감 공모전이었다.

일주일 후면 중간고사. 공모전 마감이 중간고사 기간에 겹쳐 있었지만 미룰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을 새가며 책을 읽는데, 읽으면서 참 많이 놀랐다. 어떻게 이 책의 핵심 내용과, 내가 계획한 이벤트의 취지가 이렇게 맞을 수 있는지. 함께 행복하자는 내용의 이 책을 읽으며 '진짜 내가 여기서 상금을 받게 되면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다 누군가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밤을 새며 새벽에 비몽사몽하며 마감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제출한 글이 당선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저 진심이 통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모전 결과발표가 있는 날, 나는 친구와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결과는 최우수 상이었다. 상금은 30만 원.

너무 놀라고, 기뻐서 나도 모르게 도서관 의자에서 폴짝 뛰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장 교실로 뛰어가 함께하기로 한 친구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됐어! 수박이 하늘에서 넝쿨째 굴러왔어!", 사실상 우리의 행복 나눔 프로젝트는 결과발표가 있던 이 날부터 시작되었다.

빙수 : 뜻밖의 여정

이쯤 와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이 일은 사실 내가 했지만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기획부터, 준비, 실행까지 모두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많은 도움들의 첫 시작이 바로 3학년 사회과목을 맡고 계신 이성길 선생님이다.

돈은 구했지만 어디서, 몇 명에게, 얼마나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던 우리는 지원군을 찾아 나섰다. 이런 일에 긍정적이고, 또 가능하면 안면이 있고, 이런 쪽에 경험이 풍부할만한 분. 교목 상담실에 계신 이성길 선생님이 딱 떠올랐다. 매해 담임 반 학생들과 단합으로 빙수를 해먹었다는 말씀과, 홈베이킹이 취미라고 하셨던 수업시간 말씀이 생각나서 친구와 나는 곧장 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밝히고 조심스레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를 여쭤 보았는데 선생님께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계획의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첫째, 수박을 자르고, 손질하는 것은 누가 언제 다 하겠는가. 둘째, 수박을 다 어디다 보관하며 언제 어디서 사오겠는가. 셋째, 전교생이 먹기엔 비용과 시간이 모자라지 않겠는가.

이쯤 다다르자 우리는 '전교생 수박화채'를 깨끗이 포기했다. 대신 선생님의 추천으로 더위에 지친 3학년 친구들을 위한 빙수 파티를 하게 되었다. 빙수기기와 장소도 선생님께서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심으로서 우리의 행복 나눔 프로젝트는 수박화채에서 빙수로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안 돼, 아이야, 나는 허락 못한다"

빙수 나눔 날짜는 어쩌다보니 딱 수능 D-100이 되는 8월 4일로 정해졌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빙수파티 딱 일주일 전이 됐다. 빙수 재료를 사러 나가는 것은 하루 전인 8월 3일로 정했고, 얼음 값을 줄이기 위한 이성길 선생님의 부탁으로 각 교무실의 냉장고는 얼음으로 꽉꽉 채워졌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며 빙수 프로젝트 허락을 받기 위해 3학년 담당 부장 선생님이신 오병훈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께 우리의 계획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구하는데 당연히 허락해주실 거라고 믿었던 선생님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안 돼, 아이야, 나는 허락 못한다."

나와 친구는 너무 놀라 서로 눈을 마주치다 버벅거리며 이유를 여쭈었다. 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은 "내가 이 이야길 들었는데 어떻게 허락하겠니? 공모전에서 받은 그 돈은 다 쓰지 말고 얼마 정도는 너를 위해 쓰렴, 얼음은 선생님이 준비해 줄게. 이 정도는 내게 양보해 줄 수 있니?"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친구들도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얼음이라면 더 기쁘게 먹을 거예요"라고 대답하며 선생님의 눈을 바라봤을 때 왠지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 보였던 건 우리의 착각이었을까? 이 일을 계기로 이성길 선생님께서 도와주시던 일은 오병훈 선생님 담당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세상에서 제일 짠 빙수

지난 8월 4일 안산 동산고등학교에서 열린 '빙수 파티' 모습. 500명 가량의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지난 8월 4일 안산 동산고등학교에서 열린 '빙수 파티' 모습. 500명 가량의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 전지영 제공

관련사진보기


오병훈 선생님과 함께 빙수파티를 진행하게 되고 나서, 빙수파티 하루 전 나와 친구는 정말 바쁜 하루를 보냈다. 우선 만들어둔 전단지를 학교 곳곳에 붙이고, 오병훈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원까지 빙수 기계를 빌리러 다녀왔다. 그리고 약 450명 가량이 먹을 양의 빙수재료를 가득 사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 날 뛰어다니며 흘린 땀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을 텐데, 진짜 노동은 빙수파티 D-day이었다.

그 날 아침부터 3학년 선생님들이 굉장히 분주하셨다. 심지어 한 선생님께서는 수업에 못 들어가셨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우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오병훈 선생님께 여쭈어 봤는데 문제는 얼음을 만들어줄 제빙기의 고장이었다. 제빙기가 갑작스럽게 고장이 나며 선생님들 몇 분이 안산 곳곳에 얼음을 싹 쓸어오셨다고 들었다.

그렇게 빙수는 아침부터 선생님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게 했다. 정오가 다가오며 흐렸던 하늘에 해가 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강한 햇빛 속에서 나까지 20여 명의 친구들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빙수 재료 옮기고, 책상도 준비하고, 얼음도 가지고 오고 땀을 뻘뻘 흘렸다.

4교시가 끝나갈 즈음 빙수를 나눠주기로 한 점심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나와 기다리기 시작했다. 20명의 도우미 친구들은 두 팀으로 나눠 컨베이어 벨트 식으로 분업하여 각자 맡은 재료들을 얼음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몰려오고 우리는 더운 줄도 모르고 정신 없이 빙수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고생과 땀방울이 만들어낸 빙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빙수는 세상에서 제일 짜겠구나',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짠 빙수는 예상했던 300명을 훌쩍 넘겨, 5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에게 나눠지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결국 행복은...

이렇게 어쩌면 정말 짧은 하루, 하루 중에서도 정말 짧은 점심시간을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날은 정말 더웠고, 정신 없이 나와서 도와준 친구들은 모두 새까맣게 탔다. 나는 하루만에 20만 원이 넘는 돈을 훌쩍 써버렸고, 빙수 파티를 하느라고 점심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행복했다. 밥을 먹지 못했어도 배고픈지 몰랐고, 해가 쨍쨍 내리 쬐어 얼굴이 새까맣게 탔어도 더운지 몰랐다.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을 수 있었고, 친구들이 빙수가 정말 맛있다고 말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만약 이 30만 원을 나 혼자 사고 싶었던 것을 사고, 먹고 싶었던 것을 먹는데 사용했다면 '이렇게까지 행복 할 수 있었을까?'하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빙수파티에 있었던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내가 사용한 시간과 돈의 배가 되는 기쁨이 내게 돌아왔다.

그건 특히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였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인 것은 당연하고, 나와 함께 힘을 보태주었던 분들의 마음과 의미가 이 작은 나의 상상에 보태어지며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내게 있어 가치 있는 기억이 되었다.

결국 행복은 그런 것 같다. 혼자만의 행복과 가치에 누군가가 함께 함으로써 그 사람의 행복과 가치가 더해지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함으로써 그 누군가의 행복과 가치가 더해지며 작은 행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결국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내게 있어...

전지영 학생이 기획한 '빙수 파티'를 열심히 도와준 친구들과 함께
 전지영 학생이 기획한 '빙수 파티'를 열심히 도와준 친구들과 함께
ⓒ 전지영 제공

관련사진보기


사실은 정말 작은 상상으로 시작된 이 빙수파티가, 다 마무리 된 후 내게 있어서는 삶에 있어서 하나의 등불로 켜졌다. '나눠야지, 함께 해야지, 오래도록 순수해야지', 빙수파티 이후 내 마음속엔 이 세 가지 다짐이 생겼다. 나눔으로서 행복했고, 그 과정에서 함께 했기에 이룰 수 있었고, 함께 해준 그 사람들이 순수했기에 그 마무리가 아름다웠구나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이 일을 함께 해주고, 가장 많이 도와준 친구 (정예슬·19·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귀찮고 힘든 일을 같이 해줬어?", 그 대답은 거창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냥, 좋으니까", 그 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순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 내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계산하지 않고 도와준 20여 명의 친구들도, 고3이 공부 안 하고 뭐 하는 짓이냐고 꾸짖기보다 눈시울을 붉히시며 발 벗고 나서주신 선생님들도, 해맑게 '고마워!'하고 외치며 밝은 얼굴로 맛있게 빙수를 먹어주던 친구들도, 어떠한 계산 없이, 내 이익을 따지는 것 없이, 그저 즐거워야 할 때 함께 즐거워 할 줄 아는 모습.

그냥 함께 행복한 게 좋으니까 머리보단 마음을 따라 움직여준 사람들, 그 모습이 순수함 일거라고,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함께 했기에 더 행복했던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빙수 파티에 관한 글을 마무리지으며 다짐한다면 나도 그런 모습으로 행복하고싶다, 바로 여러분과 함께!

○ 편집ㅣ이정환 기자



태그:#행복, #안산동산고등학교, #빙수, #함께, #동산 고등학교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