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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역 앞의 모습
 충칭역 앞의 모습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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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重慶)으로 가는 비행기는 오전 10시 20분에 있다. 원활한 출국 수속을 위해서 적어도 두세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고 남편은 말했다. 강화에서 인천공항까지는 승용차로 한 시간이면 너끈히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라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7월 20일 오전 5시 30분, 배낭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이제 이 배낭을 친구 삼아 열흘 동안 중국의 서남부 지역을 돌아다닐 것이다. 대강의 큰 그림은 그리고 떠나지만 그래도 예측 불허 여행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맞춰 나갈 생각으로 우리는 길을 나섰다.

두 달 배운 중국어로 충칭을 가다

두 달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다니, 용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만용이라 불러야 할까. 어쨌든 우리는 계획을 세웠고 실천으로 옮겼다. 여행 도중에 생기는 문제들도 여행의 일부이고 그 또한 재미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래서 나선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못 미더워 상황별 간단한 중국어 회화를 담은 책자는 하나 챙겼다. 눈치코치로 알아듣고 손짓몸짓으로 말을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비상약과 함께 중국어회화 책도 꼭 끼워 넣었던 것이다.

강화읍 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침 인천행 버스가 막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황급히 차에 올랐다. 승객은 별로 없었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업은 남편과 작은 배낭만 달랑 맨 나, 그리고 여행 가방을 끌며 차에 오른 청년 이렇게 셋 밖에 없었다. 그 청년도 우리처럼 공항으로 가는 길인 것 같았다.

중국의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는 고속철도를 이용했다.
 중국의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는 고속철도를 이용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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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그 청년은 누가 봐도 여행자임을 알 수 있을 차림이다. 여행가방과 큰 배낭을 둘러매고 있으니 '나, 여행 가요'라는 말을 이마에 붙이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마치 이웃 마을에라도 놀러가는 양 차림이 단출하다.

집을 떠나 열흘 이상 여행을 할 건데, 짐이 너무 간소하다. 달랑 작은 배낭 하나 밖에 없다니... 내가 이렇게 가볍게 나설 수 있는 것은 남편 덕분이다. 그는 등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큰 배낭을 둘러맸다. 내가 단출한 대신 그는 큰 짐을 등에 업었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에야 우리는 짐을 꾸렸다. 갈아입을 옷가지들과 속옷을 챙기고 비상 약도 넣었다.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르니 작고 가벼운 우산도 두 개 챙겼고 한 번 입고 버려도 그만인 싸구려 비옷도 편의점에서 서너 벌 샀다. 필요할 것 같은 것은 많았다. 그러나 추리고 또 추렸다.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것은 다 뺐다. 그래도 우리 짐은 배낭 하나 가득이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도 준수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짐으로 배낭 하나이니 나름대로 간소하게 꾸린 셈이다.

남편에게 얹혀 살았다

나는 정말 간편하게 여행을 하고 싶었다. 소용에 닿을 것 같은 거야 왜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들 중에는 없어도 그만인 것들도 있을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은 다 빼고 정말 꼭 필요한 것들로만 간단하게 짐을 꾸려 가볍게 훨훨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작년 여름의 여행에서 얻은 교훈 덕분이었다.

제 짐은 스스로 지고 다니는 젊은이들
 제 짐은 스스로 지고 다니는 젊은이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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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도 우리 부부는 여행을 했다. 소위 '만주'로 통칭되는 중국의 동북3성을 훑으면서 우리의 고대사를 배우고 익히는 역사기행이었다. 일행 중의 두어 분은 우리와 대조적으로 차림이 매우 간소했다. 7박8일간의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짐이라고는 달랑 작은 배낭에 담은 게 전부였다.

물론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가정을 가진 기혼자들이다. 나 이외에도 돌보고 챙겨야 할 사람과 일이 많아 늘 준비하는 게 몸에 배어서 그런 걸까, 우리들의 짐은 모두 컸다. 그와 반대로 미혼 청년들은 몸과 마음이 다 가벼웠다. 달랑 배낭 하나뿐이니 어디를 가도 가뿐하게 나설 수 있었고 두 손이 비어 있으니 남을 도와줄 여력도 있었다.

가벼운 몸으로 여행을 하는 그 청년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끌고 다니는 이 짐은 내 욕심이구나. 나는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진단해서 짐을 꾸리고 사는구나.' 그 짐들은 일테면 나의 욕심이기도 하고 또 내 인생의 짐일 수도 있었다. 가볍게 살 수도 있는데 이렇게 욕심스레 챙기고 꾸려가며 사느라 나는 늘 매여 있었던 셈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을 떠날 일이 있으면 간단하게 꾸려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볍게 사는 길이기라도 한 양 주변에 내 생각을 전하고는 했다.

남편과 내가 열흘 동안 짊어지고 다닌 배낭.
 남편과 내가 열흘 동안 짊어지고 다닌 배낭.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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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넘게 여행할 거면서 달랑 작은 가방 하나만 맨 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다 남편 덕분이다. 남편은 내 대신 큰 짐을 지고 다녀야만 했다. 우리 둘이 공동으로 사용할 용품들도 모두 남편의 가방에 담았고 내 옷이며 여분의 신발도 남편에게 맡겼다. 그가 내 짐까지 다 맡아서 지고 다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나는 고맙다는 생각도 미처 하지 않았다.

짐을 덜어주고 싶지만...

남편이 등에 진 배낭을 보니 우리의 결혼생활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남편에게 기대며 살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남편의 등 뒤로 숨었다. 내가 져야 할 짐도 남편에게 떠넘겼고 그것을 당연한 듯 생각했다. 내가 간편하게 산 대신 남편은 내 짐까지 걸머쥐고 허우적대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남편 탓만 했다. 정작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야 할 때는 뒤로 빠져서 구경만 해놓고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면 그게 곧 남편의 탓인 양 비난하고 못 미더워 했다. 내가 가볍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덕분인데도 나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남편의 큰 짐과 내 작은 가방을 나란히 놓고 본다. 남편에게 기대어 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조합 되어졌고,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내 가방은 원래 작으니 덜어줄 수도 없다. 그러니 남편이 가벼워질려면 짐을 덜어낼 수밖에.

남편이 덜어내는 짐 속에 내가 들어있지 않기를 나는 가만히 빌어본다.


태그:#중국여행, #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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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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