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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틀 전(20일), 친정에 안부 전화를 했더니 "몇 개나 따먹어 봤냐?"며 엄마가 옥수수 안부를 묻는다. "며칠 전 따도 되나 껍질을 살짝 까봤는데 아주 조금 덜 영근 것 같아 두고 왔다"고 했더니 더 두면 벌레가 먹을 수 있으니 전화 끊고 얼른 가보란다. 밭으로 갔다. 껍질을 살짝 까봤던 옥수수부터 찾아 들춰 보니, 엄마 말대로 옥수수에 이미 벌레가 구멍을 뚫어 놨다.

옥수수를 따 세어 보니 23개나 됐다! 무엇보다 옥수수 수확이 감개무량하기만 했다. 지독히도 가물었던 초여름 어느 날 퇴근 후, 내리는 비를 맞으며 어두컴컴한 밭에서 무서움도 참아가며 이웃 아저씨 밭에서 옮겨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밭 옥수수들은 이미 열매를 맺을 때, 겨우 자라고 있어 과연 따먹을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었다. 이러니 옥수수 스무 개 남짓 껍질을 벗기는 그 잠깐에 지난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다.

가뭄 중 반갑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컴컴한 저녁에 옮겨 심어 더욱 의미있는 첫 수확 옥수수 23개.
 가뭄 중 반갑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컴컴한 저녁에 옮겨 심어 더욱 의미있는 첫 수확 옥수수 23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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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본 우리 동네.
 밭에서 본 우리 동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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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심었던 김장 배추. 함께 심었던 상추 절반은 고라니에게 줬다.
 지난해 심었던 김장 배추. 함께 심었던 상추 절반은 고라니에게 줬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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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막 벗어난 경기도 한자락 주택가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지난 2013년 10월. 같은 골목에 살고 있는 집주인 아저씨가 그해 가을걷이를 마친 후 수십 년째 농사지어 왔다는 밭 조금을 나눠줬다. "재미삼아 지어보라"며. 그리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짓고 있다.

시골에서 스무 살까지 자랐으나, 대개의 시골아이들처럼 더러는 밭도 매고, 고추 지지대를 묶거나 고추를 따기도 하며 자랐으나 부모님이 시키는 것만 했기 때문에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은 그다지 없다. 게다가 작년에는 시아버님이 오며가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도 힘든 상황, 그러니 거의 처음 짓는 농사나 다름없었다.

"말도 마라. 바라구(바랑이)가 얼마나 무성한지 하루만 더 두면 호랑이가 새끼도 치겠더라!"

장맛비가 그친 어느 날이나, 열무를 뽑거나 고추라도 따고 온 날이면 엄마는 이처럼 말하곤 했다. 풀이 얼마나 많으면 호랑이가 새끼를 낳아도 되겠다고 했을까?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고 재빠른지, '(풀을) 뽑고 돌아서면 자라고 있다'는 말이 딱 맞는다. 누구든 아무리 가진 것 없어도 풀처럼만 강하게 살면 끼니 굶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이처럼 말하기도 했다. 머리로 이해했던 이 말들을 올 봄 정말 많이 실감했다. 자라면서 여름이면 질리도록 들었던 이런 말들이, 잊고 있었던 이 말들이 날마다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올봄과 장마 후, 정말 많은 풀들과 전쟁을 치렀다.

"그러지 말고 딱 한번만 제초제를 뿌리자. 다 뿌린 것 같던데. 그렇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풀이 하나도 없을 수 있겠어? (…) 안 돼! 그 농약들이 다 어디로 가겠어. 풀만 죽이는 게 아니라 쟤네들도 먹고, 그래서 우리도 먹을 거야. (…) 그래도 일주일 내내 일하고 겨우 쉬는 날 풀 때문에 쉬지도, 놀러가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 나도 짜증 나. 근데 이렇게 어려울 줄 모르고 아저씨한테 밭 좀 달라고 졸랐어? 당신이 얻은 거잖아요. (…) 올해까지만 어떻게 지어보고 내년에는 짓지 말자. 골병들겠다. (…) 그러든가. 근데 풀 이거 너무 짜증 내지 마. 어차피 우리가 이 넓은 곳에 다 심지 못해. 필요한 곳만 시간될 때 뽑고, 그냥 좀 자라게 둬서 잘라 퇴비로 쓰면 되잖아. 아마 농사를 짓는 한 풀은 어쩔 수 없을 걸…."

남편과 제초제 문제로 작은 다툼까지 몇 번 했다. 그러나 남편의 짜증은 주로 풀을 한참 뽑을 때만 있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나보다 더 서둘러 아들이 심었으면 좋겠다고 1순위로 꼽은 고구마 단을 사다 퇴근 후 어두컴컴한 시간에 심는가 하면, 어떤 날은 퇴근 후 쉬지도 못하고 물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출근 준비로 바쁜 새벽 6시에 둘러보고 오기도 했다.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은 뽑히는 순간 잔뿌리를 최대한 땅속에 많이 떨어뜨려 버린단다. 그렇게 떨어뜨린 잔뿌리로 싹을 틔워 생명을 이어간다던가. 사정이 이러니 우리 인간들이 풀을 절대 이길 수 없다. 같은 꼬투리의 씨앗이 먼저 싹을 틔우다가 뽑히면 잠자고 있던 꼬투리의 나머지 씨앗이 싹을 틔우는 등, 풀들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이 이야기를 올해 몇 번이고 실감할 정도로 많은 풀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좀 서먹했던 이웃밭 아저씨가 나눠줘 심은 옥수수를 계기로 그간의 서먹함이 풀렸다.
 좀 서먹했던 이웃밭 아저씨가 나눠줘 심은 옥수수를 계기로 그간의 서먹함이 풀렸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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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부분. 이후 고구마순을 고라니가 많이 뜯어먹었다.
 텃밭 일부분. 이후 고구마순을 고라니가 많이 뜯어먹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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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어느날 여름에 따 말린 고추를 갈아 밭에서 뽑은 총각무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지난해 가을 어느날 여름에 따 말린 고추를 갈아 밭에서 뽑은 총각무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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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느낀 것 하나는 이웃의 정이었다. 주변의 다른 밭들은 모두 청소기를 돌린 후 걸레질까지 마치고 걸레를 빨아 햇빛에 내널은 것처럼 뭔가 정리되고 여유로워 보이고 그리고 개운해 보였다. 그러나 우리 밭은 풀이 무릎까지 자라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여하간 뭔가 어설펐다. 거기에 한 번씩 제초제를 뿌리네 마네, 말씨름 하곤 하는 것이 신기했나. 한참 풀을 뽑고 있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해 보면 저만치 누가 빙긋 서서 우릴 구경하거나 했다. 어떤 날 밭에 올라가 보면 누군가 서서 밭을 둘러보고 있다가 우릴 보는 순간 빙긋 웃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눈빛과 말투에서 종종 이제 갓 살림을 차린 신혼 부부의 소꿉장난 같은 살림을 볼 때 느끼곤 했던 그런 호기심을 자주 느끼곤 했다.

"고추 지지대는 짧은 것이 좋고, 토마토 지지대는 좀 큰 것이 좋다.(…)토마토와 가지 잎을 좀 따내줘라.(…)쪽파 씨 그거 캐서 그늘에 말린 다음 양파 망에 넣어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보관했다 가을에 쪽 내어 심어야 한다.(…)고구마 순은 똑바로 심지 말고 기울여서 심어야 알이 잘 든다.(…)옥수숫대는 흙이 마르기전에 뿌리에 흙을 덮어 지긋하게 누르면서 세워 일으켜야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 (…) 동완아(아들 이름), 아직 고구마 심어도 되는데 순 좀 잘라 줄게 죽은 데 메꿀래? 늦게 심어 적으면 적은대로 거둬 먹음 되지 않겠나?(…)고구마순은 한번씩 들어줘야 쓸데없는 뿌리들을 내리지 않아 고구마가 많다. 꽃도 따내야 고구마 알이 굵다…."

그런데 구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가 우리 부부가 모르는 것들을 때마다 일러주곤 했다. 그리고 영 아니다 싶으면 손을 보거나 필요한 종자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이웃들 덕분에 올여름 가지와 고추를 실컷 따먹고 있다. 게다가 남는 것들을 지난날 무엇이든 줬던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농약 한번 치지 않고 비료 한 번 주지 않아 아주 건강한 것"이라는 말을 꼭 덧붙이면서 말이다.

옥수수를 따 먹게 된 것도 이 동네로 이사 온 이후 겨우 고개만 숙여 인사나 할 정도로 서먹함이 더 많던 이웃 밭 아저씨가 모종을 나눠줬기 때문이었다(이후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처음 딴 것은 이웃들과 맛만 보더라도 나눠 먹고 싶어 좀 더 영글게 며칠 뒀다 한꺼번에 따자 싶어 뒀던 것인데, 그새 벌레가 파고 들어 버렸던 것이다.

"23개나 땄나? 우리 딸 농사 잘 지었네. 고구마 순을 고라니가 뜯어 먹어? 옥수수는 안 따먹고 너 따먹게 뒀나 보네? 고맙기도 하지. 고구마 순 좀 따먹어도 고구마 맺히니 옥수수 안 따먹은 것으로 고마워 해라. 옥수수도 사람이 따먹는 것처럼 뚝뚝 꺾어먹고, 동부 열리면 동부 꼬투리, 팥 열리면 팥 꼬투리 귀신같이 따먹지 않드나. 엄마는 반절은 줄 요량한다. 어쩌겠노. 아무리 막아도 어느새 와서 따먹는데. 그것들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오랫만에 먹어본 정말 맛있는 옥수수.
 오랫만에 먹어본 정말 맛있는 옥수수.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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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이 많이 사라졌다. 토종종자가 위기에 처해 있다. 토종일까? 슈퍼종자일까? 종자를 받아 심어도 이 올해의 맛을 맛볼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토종이 많이 사라졌다. 토종종자가 위기에 처해 있다. 토종일까? 슈퍼종자일까? 종자를 받아 심어도 이 올해의 맛을 맛볼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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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번째로 딴 옥수수 18개.
 오늘 두번째로 딴 옥수수 1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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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쪘다. 어떤 것이 열릴까? 맛있어야 하는데…. 옥수수가 자라 열매 맺은 걸 보며 정말 많이 궁금했는데, 정말 맛있는 옥수수였다. 어렸을 때 먹어보고 처음으로 먹어보는 그런 맛? 이렇게 맛난 것 엄마와 함께 먹으면 좋은데. 자랑도 하고 싶고, 먹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 생각도 몽글몽글 떠올라 엄마한테 전화하니 옥수수 먹게 해준 고라니에게 고마워하란다. 에고 우리 엄마도 참. 

무엇이든 때가 있다는 것도, 농사에는 그 '때'라는 것이 더 솔직하게 적용된다는 것도, 생명의 순리와 질서, 강인함을 새삼 확인한 것도 올해 얻은 것들 중 하나. 가뭄에 노랗게 말라 버린 고구마 순을 하나 뽑았는데, 뿌리가 내려 있었던 것을 보던 그 가슴 철렁한 감동은 결코 잊으지 못하리라. 그런데 무엇보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부모님 생각을 자주 그리고 많이 하고, 많이 느낀 올해였다.

'잠깐에도 이렇게 많이 물리는데, 허구한 날 해가 지도록 논밭에 있었던 엄마 아버지는 모기에 얼마나 많이 뜯겼을까? 재미로 조금 짓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허리 아픈데, 평생 농사만 지은 엄마 아버지 허리 정말 아팠겠네. 그런데도 속 시원히 한번 주물러 드리지 못하고. 누구 준다고 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우리에게 먹을 것 챙겨 보내준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을 것 아냐. 그런 걸 쉽게만 먹고 썩혀 버릴 때도 있었으니….'

좀 전에, 이 글을 쓰다가 밭에 갔다. 또 18개나 땄다. 고맙게도. 이 글을 어서 마무리하고 얼른 쪄서 냉동시켰다가 나만큼이나 옥수수 좋아하는 형제들이나, 친구들과 나눠 먹어야겠다.


태그:#텃밭 농사, #옥수수, #고라니, #이웃, #제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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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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