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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편의상 박 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박 선배는 목 뒤까지 늘어진 까만 생머리를 찰랑이며 나타났습니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마르고 피부가 하얀 선배의 얼굴에 썩 어울려 보였습니다. 작년 겨울에 만나고 올해 들어 처음 보는 거였습니다. 그새 머리를 길렀나 봅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자주 만나던 사이였습니다.

창작지원금 받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박 선배와 저는 사회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우리의 후배, 동기, 선배들은 전공과 어울리는 길을 걷거나, 이해되는 정도로 빗겨가거나, 전혀 다른 길을 가되 누가 봐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 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취업 이후 바빠진 친구들과는 마음껏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 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우리는 취직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박 선배와 제가 영 놀고먹기만 하는 한심한 종자들은 아닙니다. 박 선배는 연극배우가 되고자 했고 저는 글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뿐입니다만, 우리는 배우가 되고 글쟁이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편의점과 식당, 행사장, 일용직 업무를 위해 써야 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처럼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 몇 해가 지나도 변변치 않은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니 우리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한심한 눈초리로 바뀌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상한 것은, 박 선배가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고 제가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음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자질에 대한 의심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일용직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말하자면 예술을 온전한 직업의 형태로, 그러니까 직업의 사전적 풀이에 따라,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 써먹고 있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 선배와 저는 생계와 작업 두 상황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아슬아슬 타며 지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계 유지도, 연기도, 글쓰기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요. 그리 물으신다면.

고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고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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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혜택은 포함되지 않았고 산재보험은 가입이 가능하지만 예술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예술인 복지법'을 통해 2013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1인당 300만 원씩 3개월간 창작지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원대상으로 뽑히는 게 까다로워 대상이 되더라도 지원금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매우 번거롭게 되어 있습니다.

예술인 본인을 포함해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의 소득 수준까지 증명해야 하는 터라 혹자는 얼마나 가난한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절차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지원금을 주는 정부도 꽤나 떨떠름한가 봅니다. 올해는 복지재단이 신청한 예산을 지난 6월까지 편성하지 않고 있다가 7월 고 판영진, 고 김운하 배우님의 잇따른 사망 이후 부랴부랴 집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받기도 싫고 주기도 싫은 이름만 좋은 창작지원금입니다.

한여름에 장발한 선배, 사정 듣고 나니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등 대표단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비례대표 축소 저지, 3당 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진후 원내대표 등 대표단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비례대표 축소 저지, 3당 회담 수용을 촉구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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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배의 장발은 배역을 위해 부러 기른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쑥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발할 돈이 없다고 말입니다. 작년 겨울부터 일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낮에는 무대와 오디션에 매달리느라 야간 편의점 일을 찾았는데, 그나마도 주인이 인건비를 아낀다고 그만 나오라 했답니다.

먹을 돈과 차비는 쥐고 있어도 이발할 돈은 없었던 겁니다. 박 선배를 만난 그날은 하필이면 늦더위가 맵게 달아오른 날이었습니다. 땀으로 젖은 그의 머리칼 사이로 벌겋게 열이 오른 목덜미가 보였습니다.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요새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것이 뭐냐고 말입니다.

그의 대답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였습니다. 아름다운 연기로 아름다운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뒷목에 붙은 머리칼을 털며 더위를 몰아내는 이 남자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작지원금, 차라리 안 받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한테 무슨 돈까지 주느냐'는 불편한 시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인을 근로자나 노동자로 봐주는 시선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써 노동하고 진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있습니다.

요즘 비례대표와 관련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정치권이 너무 걱정스러운 것은 비례대표제를 줄인다는 소식입니다. 비례를 줄이다니요? 세상에 이렇게 저와 제 선배처럼 힘들고 괴로운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역을 위해서 일하는 의원을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예술인을 이해하고 대신하여 제대로 된 법안을 발의하는 대표자가 선출되려면 비례대표제는 확대되어야 합니다.

비례대표제 확대로 예술인 복지 전문가가 당선될 수 있다면, 예술인들도 사회의 건강과 선을 위해 '일하는 시민'으로 받아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이, 이들을 사회보장 체계에 편입하고 제도적인 지원 체계를 행정이 아닌 현장중심으로 만들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보며 긴 글을 마칩니다.

[관련기사] 7000만표 또 버릴 겁니까... 어느 대구 남자의 호소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이소망 기자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www.change2020.org] 이사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비례대표, #에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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