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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영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실장이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남양유업 물량 밀어내기 증거 자료인 최초 주문 기록이 담긴 로그 파일들이 삭제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남양유업 인터넷 발주 프로그램인 '팜스21(PAMS21)'을 실행하면 프로그램이 자동 업그레이드되면서 대리점주 PC에 저장돼 있던 과거 로그 파일이 모두 삭제됐다.
 이송영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실장이 14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남양유업 물량 밀어내기 증거 자료인 최초 주문 기록이 담긴 로그 파일들이 삭제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남양유업 인터넷 발주 프로그램인 '팜스21(PAMS21)'을 실행하면 프로그램이 자동 업그레이드되면서 대리점주 PC에 저장돼 있던 과거 로그 파일이 모두 삭제됐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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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갑질'의 전형을 보여줬던 남양유업이 또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지난 2013년 전국 1800여 개 대리점 발주 내용을 조작해 5년간 수천 억 원대 제품 '밀어내기(판매할 수 없는 과도한 물량을 유통점에 떠넘기는 행위)'를 해온 데 이어, 이번엔 대리점주 PC에 남아있던 증거 자료인 주문 기록까지 삭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남양유업 피해 대리점주들은 회사가 주문 조작 근거 자료를 없애 손해보상 소송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관련 기사 : "죽기 싫으면 물건 받아, XX놈아"... '욕우유' 논란).

대리점주들 "대리점 PC에서 물량 밀어내기 증거 자료 삭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남양유업대리점피해대책위원회(가칭)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리점 최초 주문 기록이 남아있는 로그 파일이 삭제되는 과정을 직접 시연했다. 대리점에서 실제 주문한 물량과 남양유업이 조작해 발주한 물량을 비교해 정확한 밀어내기 물량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자료다.

전직 남양유업 대리점주인 이송영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실장은 이날 서울지역 현직 대리점주인 장성환씨 PC에 남아있던 로그 파일들을 직접 공개했다. 이 로그 파일에는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장씨가 남양유업에 최초 주문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회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실제 회사에서 장씨에게 공급한 물량과 비교했더니 주문 내용을 바꿔 강제 할당한 물량 비중이 27%에 달했다고 한다. 방문판매 대리점을 제외한 남양유업 1000여 개 일반 대리점의 월 평균 매출이 3천만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연간 피해 규모만 1000억 원대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실장이 PC를 인터넷에 연결해 남양유업 '인터넷 발주 전산 주문 프로그램'인 '팜스21(PAMS21)'을 실행했더니,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기존 로그 폴더에 남아있던 로그 파일들이 모두 삭제됐다. 프로그램을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는 현직 대리점주 PC에선 이제 과거 주문 기록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남양유업은 이 '팜스21' 프로그램으로 대리점에서 주문을 받아 제품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7년부터 주문 내용을 조작해 실제 주문하지 않은 제품이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대리점에 강제 할당했다. 특히 남양유업은 지난 2010년 9월쯤 프로그램을 바꿔 대리점에서 최초 주문량을 확인할 수 없도록 관련 기록을 삭제했다. 이 때문에 대리점주들은 정확한 피해 물량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결정이 뒤집히는 빌미가 됐다.

남양유업의 '갑' 횡포를 최초 공개했던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2013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앞에서 사측과의 협상 결렬에 따라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남양유업대리점협 결사투쟁 돌입 남양유업의 '갑' 횡포를 최초 공개했던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2013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앞에서 사측과의 협상 결렬에 따라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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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지난 2013년 7월 대리점주 구입 강제와 이익 제공을 요구한 혐의로 남양유업에 과징금 124억 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30일 남양유업이 제기한 과징금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구입 강제 행위에 해당하는 과징금 119억 원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공정위가 정확한 피해 물량을 확인하지 않고 대리점에 공급한 전체 물량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정한 것은 위법이라고 본 것이다(관련 기사 : 남양유업에 123억 과징금..."위법 알고도 강제할당").

이송영 실장은 남양유업이 지난 2010년 '팜스21' 프로그램에서 최초 주문 기록을 없앤 뒤에도 대리점 PC '로그 파일'에는 주문 기록들이 계속 남아 있는 걸 확인했다. 실제 앞서 장씨를 비롯해 현직 대리점주 2, 3명은 과거 '로그 파일'을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 지난 6~7월쯤 대리점주 PC에 남아있던 이 로그 파일들마저 사라졌다. '팜스21 프로그램'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과거 로그파일이 모두 삭제된 것이다.

이 실장은 "지난해까지는 로그 파일을 삭제해도 복구 프로그램으로 되살릴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로그 파일 복구 자체도 불가능해졌다"면서 "지난 2009년과 2013년 사이 수차례 업그레이드했어도 남아있던 로그 파일들이 최근 갑자기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남양유업 "로그 파일 삭제 지시한 적 없어"... 최근 개발업체 바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된 지난 2013년 5월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당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를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2013오마이포토] '갑의 횡포' 남양유업 대국민사과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하는 녹취음성이 공개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이 불매운동으로 확산된 지난 2013년 5월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당시 김웅 대표이사와 본부장 이상 간부들이 '대국민사과'를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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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남양유업 관계자는 15일 "회사에서 대리점주 PC에 저장된 로그 파일을 삭제할 이유도 없고 개발업체에 지우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면서 "개발업체에도 확인해보니 로그 파일을 지운 적 없고 과거 로그 파일도 남아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다만 남양유업이 지난해 8월 개인정보보호법 강화 방침에 맞추려고 개발업체를 바꿔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동안 팜스21 개발과 유지는 퍼펙트정보기술에서 맡아왔는데 지난해부터 올해 6월 사이 퍼펙트솔루션이란 업체로 잠시 바뀐 것이다. 결국 프로그램 개발 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기존 로그 파일을 삭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13년 5월 영업직원 막말 녹취록 공개로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급기야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지자 남양유업은 그해 7월 피해 대리점주들이 모인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와 '상생 협약'을 맺고 대리점 피해 보상 등을 약속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은 지난해 5월 피해 대리점주 108명에게 모두 76억 8961만 원을 보상했지만 나머지 1000여 개 현직 대리점주들은 보상을 받지 못했다(관련 기사 : 남양유업 사태 두 달 만에 타결... 피해보상 등 합의).

민병두 의원실은 당시 1인당 평균 보상금이 7120만 원인 점을 들어 전체 1800여 개 대리점 피해 보상 규모를 1281억 원으로 추산했다. 실제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이달 초 남양유업 밀어내기 피해 대리점주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8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피해 대리점주 12명을 모아 남양유업을 상대로 단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차태강 법무법인 정우 변호사는 "초기 주문 기록이 담긴 로그 파일을 갖고 있는 대리점 주는 1명뿐"이라면서 "나머지는 전체 제품 매입액과 실제 매출액의 차액을 피해액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남양유업 관계자는 "현직 대리점들도 전직 대리점들처럼 피해 보상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면서 "당시 전국대리점협의회에 소속된 현직 대리점들과는 손해배상 소송 등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긴급 생계자금 120억 원을 지원하고 연간 250억 원이던 프로모션(마케팅) 지원비를 5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협약을 맺었고 지금까지 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병두 의원과 피해 대리점주들은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증거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오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리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이원구 현 남양유업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이 문제를 따질 예정이다.

[남양유업 사태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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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남양유업, #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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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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