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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11~12일(1박 2일) '행복도시' 순천을 찾았습니다. ▲ 기적의 도서관 ▲ 인안초등학교 ▲ 중앙동 천태만상센터 ▲ 순천만 국가정원 ▲ 사회적기업 해피락 ▲ 9988 쉼터 ▲ 철도문화마을 등 순천 곳곳에서 마주한 '행복을 위한 꿈틀거림'을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11~12일 순천을 찾았다. 11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인안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며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야구, 재밌다!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11~12일 순천을 찾았다. 11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인안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며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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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진짜 살기 좋은 동네예요."

전남 순천 '기적의 도서관' 정봉남(48, 여) 관장의 말이 귀에 익다. "여긴 참 살기 좋은 나라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행복의 비결을 찾으러 처음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 코펜하겐 공항 앞 택시기사가 한 말과 묘하게 비슷하다. 정 관장도, 택시기사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했다.  

지난 11일,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꿈틀버스가 순천을 찾았다. 지난 5월 광주 광산구로 갔던 꿈틀버스 1호, 7월 충남 홍성을 찾았던 꿈틀버스 2호에 이은 세 번째 꿈틀버스다. 이번 꿈틀버스는 꿈틀리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순천시가 공동 운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20여 명의 꿈틀버스 3호 탑승객은 누구나 편하게 책을 읽는 공간인 순천 기적의 도서관,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 학교로 탈바꿈한 인안초등학교, 주민자치 사업의 기반인 천태만상센터 등 1박 2일간 순천의 꿈틀거림을 부지런히 좇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 이유를 가늠하는 여정이었다.

'기저귀' 찬 아이도 찾는, '기적의' 도서관

꿈틀버스 3호가 11일 찾은 기적의 도서관 전경.
▲ 순천 기적의 도서관 꿈틀버스 3호가 11일 찾은 기적의 도서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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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다가 책도 읽다가, 그래요."

"책은 안 읽니?"라고 물어본 것이 민망할 정도로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말하면서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 삼삼오오 모여 동영상을 보던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이었다. 도서관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떠드는 모습이 생경해 말을 붙였는데, '뭘 그런 걸 물어보나' 하는 표정이다. "떠들면 누가 혼내진 않느냐"고 뒤이어 물은 말엔 대답도 안 한다.  

11일, 꿈틀버스 3호 첫 일정으로 방문한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이상했다. 도서관인데, 도서관 같지 않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는 아이도 있다. 글은 읽는 것은 물론, 아직 말하는 법조차 익히지 못한 갓난아이도 엄마 등에 업혀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 투어에 앞서 간략한 설명에 나선 정 관장은 이런 도서관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기적의 도서관을) 발음할 때 '기저귀' 도서관이라고 들려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기저귀 찬 애들도 오는 게 이 도서관이거든요."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2003년 문을 열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이 도서관엔 문턱이 없다. 누구든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도서관을 누빈다. 공간 곳곳에 "어린이들이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도서관의 목표가 스며들어있다. 실제 이곳에서 아이들은 친구처럼 책을 만난다.

꿈틀버스 3호가 11일 방문한 기적의 도서관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있다. 도서관 곳곳엔 최병수 작가의 솟대 작품이 놓여 있었다.
▲ '희망' 품고 도서관 찾은 아이들 꿈틀버스 3호가 11일 방문한 기적의 도서관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있다. 도서관 곳곳엔 최병수 작가의 솟대 작품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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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장애가 있어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한 아이는 도서관에 오면 어깨를 펴고 다닌단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린이 사서'로 활동하며 도서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이 아이는, 중학생이 된 지금 정 관장에게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정 관장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상상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 정 관장의 모습도 아이처럼 밝았다.

"여기는 나이, 학력, 종교, 장애 이런 거 안 따지고 누구나 오는 곳이잖아요."

지금 도서관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행정도우미 중엔 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도 있다. 컴퓨터 마우스 커서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도서관 행사가 있을 때면 늘 포스터 디자인을 도맡는다. 과거 동사무소에 파견 나가 단순 민원처리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이 "투명인간 같았다"는 그는, 이 도서관에서 "내 존재감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한단다. 

도서관을 돌며 각 공간을 상세히 설명하던 정 관장은 기적의 도서관이 "사람 사는 곳이랑 똑같다"고 했다. 고요히 죽어있는 공간이 아닌,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삶의 공간.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기적의' 도서관은 제 이름 값을 하고 있었다.

꿈틀버스 3호가 11일 방문한 기적의 도서관에 아이들을 위한 '코 하는 방'이 마련돼 있다.
▲ 쉿! '코 하는 방'이에요 꿈틀버스 3호가 11일 방문한 기적의 도서관에 아이들을 위한 '코 하는 방'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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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학생 수 4배, 무슨 일이?

11일 오후 3시,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갔을 시간인데 학교 안이 시끌벅적했다. 작은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며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기 넘쳤다. 낯선 사람이 학교에 들어서자 "꿈틀버스가 무엇이냐"며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스스럼없이 밝은 모습이다. 학교 본관에 걸려있는, '365일 행복한 학교'라는 문구와 잘 어울렸다. 4년 전, 이 학교가 폐교될 뻔했다는 사실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순천 인안초등학교는 2011년까지만 해도 전교생이 23명에 불과했다. 한 학급 학생 정도 되는 전교생이 107명으로 늘고, 학교가 다시 일어서게 된 건 그해 겨울부터다. 인안초등학교는 2011년 12월 무지개학교(혁신학교)로 지정됐고, 다음해 1월엔 자율학교가 됐다. 자율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교육 과정 설계가 자유롭다.

인안초등학교에는 '특색 교육 활동'이 있다. 아이들의 생태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흑두루미 논 가꾸기 프로젝트', 야외 활동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어보는 '학년별 도전 활동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 학교 화단엔 꽃 대신 시험 삼아 기르는 벼가 자라고, 신발장엔 실내화 대신 노란 헬멧과 에스(S)보드가 채워져 있다. 실제 꿈틀버스 탑승단이 학교를 방문한 11일 오전, 5학년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나섰다.

11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인안초등학교 복도에 에스(S)보드와 헬멧이 놓여 있다.
▲ 복도에 놓인 에스(S)보드, 왜? 11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인안초등학교 복도에 에스(S)보드와 헬멧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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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딴 짓'을 권하는 건 학부모와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안초등학교엔 독특한 모임이 있다. 승혁, 승우 아빠 백재욱(45)씨가 활동하고 있는 '아빠 모임'이 그것이다. 아빠들과 모이면 공부 이야기보다 "어떻게 잘 놀아주고, 어떻게 같이 갈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백씨는 운동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도 불편한 기색 없이 그와 대화했다. 백씨는 "(학생들을) 90% 이상 아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 오는 아빠, 낯설지만 보기 좋았다.

인안초등학교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익숙한 이웃 아저씨를 만난다. 지역 영농단의 도움을 받아 순천만생태공원 인근 논에서 벼를 경작하고, 동천에서 수영한다. 학교가 마을이고, 마을이 학교다. 아이들은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을 배운다. 인안초등학교 국기게양대엔 태극기 양 옆으로 러시아기와 베트남기가 걸려있다. 지난해에 입학한 두 명의 신입생을 위해 걸어놓은 깃발이다. "러시아와 베트남 사람인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교직원들이 고민한 결과"라는 김영미 행정실장의 설명에 임종윤 교장이 말을 덧붙인다.

"다른 다문화 가정 아이가 들어오면, 그 옆쪽으로 계속 (국기를) 늘릴 계획입니다."

11일 오전, 인안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학년별 도전 활동 프로젝트'를 위해 자전거 앞에 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자전거 출발합니다 "화이팅!" 11일 오전, 인안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학년별 도전 활동 프로젝트'를 위해 자전거 앞에 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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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 보는 동네', 꽃밭 만들기가 도시 재생으로

"오메, 오메, 사무국장."
"아니, 걸음걸이가 왜 이리 불편해졌을까?"
"사무국장 안 보는 동안, 내가 아파부렀지."

12일, 순천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 주민 송순방(85, 여) 할머니가 꿈틀버스단과 함께 찾아온 순천시 생활공동체지원센터 김석(42, 남) 사무국장을 대뜸 껴안으며 말을 건넸다. 김 사무국장이 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자 송 할머니는 장난스레 "안 된다"고 했지만,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사무국장은 지난해까지 순천시의원으로 활동했다. 송씨를 만나기 전, 김 사무국장은 "송 할머니가 정치적으론 보수적인 분이지만, 입담이 끝내준다"고 미리 귀띔했다. 지지하는 당이 달라도, 마을은 사람과 사람을 살갑게 이어준다.

꿈틀버스 3호가 12일 찾은 순천 철도문화마을.
▲ 순천 철도문화마을 꿈틀버스 3호가 12일 찾은 순천 철도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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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순천 '천태만상 센터'에서 만난 김 사무국장은 순천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동네"라고 설명했다. 10여 년 전, 순천에서 시작한 주민자치 사업은 마을 꽃밭을 가꾸는 것이 전부였다. "꽃밭 만드는 게 주민자치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왔지만, '끝장을 보는 동네'답게 포기하지 않았다.

꽃밭에서 담장으로, 담장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마을로, 시간이 흐르자 사업에 참여하던 주민들의 시야도 넓어졌다. 꿈틀버스단이 방문한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순천 철도문화마을만들기 사업'도 주민자치 사업의 연장이다.

정권과 행정가가 바뀌어도 10여 년간 지속된 주민자치. 자랑만 쏟아낼 법도 하지만, 김 사무국장은 "10년째 해봐도 여전히 숙제"라며 "주민참여가 무엇인지, 주민주도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민자치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12일 찾은 황금 백화점 건물은 과거 순천의 유일한 백화점이었던 영광이 무색하게 텅텅 빈 채 녹슬어 있었다.
▲ 순천 황금 백화점, 옛 영광 어디에... 12일 찾은 황금 백화점 건물은 과거 순천의 유일한 백화점이었던 영광이 무색하게 텅텅 빈 채 녹슬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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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순천 원도심(중앙동)의 공동화 현상이다. 연향동, 왕조동 등 신도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중앙동의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실제 꿈틀버스단이 중앙동 답사를 나갔을 때, 상가 건물 2층이 비어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백화점이나 대기업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순천의 유일한 백화점이었던 '황금 백화점'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텅텅 비어있었고, 삼성생명 빌딩도 일부 공간만 사용되고 있었다.

"도시는 사람 생명하고 비슷해요. 생성될 수도 있고, 소멸할 수도 있죠. 그런데 중앙동 같은 경우는 개발업자, 건축업자의 욕망에 의해 몇 백 년 더 살아도 되는 도시의 숨을 확 끊어버린 상황이거든요. 여기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이렇게 사라지는 건 좀 아니잖아요."

현재 순천시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순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상권과 역사문화, 예술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도시 재생 방안을 고민 중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11일 만난 양효정(46) 순천시 도시재생과 도시재생담당자는 "(도시재생 방안에 대한) 상인들, 지역 주민들, 이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며 "이것들을 잘 수렴해서 만들어 가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 전남 순천 죽청마을 9988 쉼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꿈틀버스 3호 탑승객들을 만나 미소를 짓고 있다.
▲ '9988 쉼터' 할머니의 미소 12일 전남 순천 죽청마을 9988 쉼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꿈틀버스 3호 탑승객들을 만나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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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끝장을 보는 동네' 순천답게, 김 사무국장은 낙관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문화의 거리를 돌며 누군가 그에게 도시재생 사업 추진을 위한 부지 매입의 어려움에 대해 묻자, 김 사무국장은 이렇게 답했다. 

"저 양반(양효정 도시재생담당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겁니다. 기다려야 되고요."

1박 2일 동안 살펴본 순천의 '꿈틀거림'은 하나의 큰 맥이 있었다. '조금은 더디고 낯설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다. 12일 방문한, 마을에 홀로 사는 노인들이 모여 공동으로 생활하는 공간인 '9988쉼터'나 결식아동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전하는 사회적 기업 '해피락'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을에서 발 딛고 있는 사람 중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이들은 늘 공동체의 가치를 고민했다.

정 관장이 순천을 "살기 좋은 동네"라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던 건,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꿈틀버스 3호 탑승객들이 12일 순천시 도시재생센터에 들어가고 있다.
▲ 순천시 도시재생센터 꿈틀버스 3호 탑승객들이 12일 순천시 도시재생센터에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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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꿈틀버스, #순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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