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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우산을 쓰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우산을 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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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커밍아웃'

"나 사실 게이야."

<사랑의 조건을 묻다>의 저자 터울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게이가 아닌 친구들은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선택했다. 게이인 그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외면하거나.

어쩌면 성다수자는 이런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왜 털어놓는가. 털어놓으면 더 상처받을 텐데. 차라리 속으로 삭이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것 아닐까. 이성애자이면서 사랑에 무심한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처럼 그냥 사랑하지 않고 살면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의 이러한 의문은 성소수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너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드러내지 말라.'
'너의 존재를 우리 앞에서 증명하지 말라.'

<사랑의 조건을 묻다> 표지
 <사랑의 조건을 묻다> 표지
ⓒ 숨쉬는책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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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SNS의 '좋아요' 버튼 하나로도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길 바라는 인간에게 이는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터울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보이지 않으므로 겉으로 당장에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 쾌적한 삶은, 무슨 나의 호환 가능한 자아의 확장이 아니라, 결국은 매 순간 나를 향한 패배의 연속이 아니었나 하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진공의 상태를 두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낙담해 온 세월이 아니었나 하는, 그렇게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 온 이력이 쌓이고 쌓여, 이젠 뉘에게 들춰 보이려 해도 어디부터 손대야 될지 모르는  까마득한 상태에 이미 와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 <본문> 중에서

드러내지 않다 보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빠져버리는 것. 나를 찾으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처하는 것.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제야 온몸을 던지듯 자신을 드러내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게이라고. 이게 나라고.

할리우드 스타 엘렌 페이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2014년, 인권 캠페인 'Time to Thrive' 에서 그녀는 커밍아웃 했다. 8분간의 연설은 아름답고 본질적인 문장들의 향연이었으며, 떨고 있는 그녀는 그 어느 할리우드 영화 속 영웅보다 용기 있어 보였다. 그녀는 커밍아웃 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숨기기 지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말하는 것에 지쳤"다고.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엘렌 페이지 연설 2014 인권캔페인 'Time to Thrive'
ⓒ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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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친구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은 날, 친구는 터울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둘은 약속한다. "여태껏 지켜 오던 도를 평생 지키겠다"고. 터울은 생각한다.

나는 비로소 나를 드러내고도 외면받지 않은 것입니다. 스스로 입을 닫았으므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 아무 소용없는 적막한 세상으로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나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앞에 패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맞습니다. - <본문> 중에서

책의 저자 터울은 "동성애자도 사람이고, 그들도 사뭇 다르면서 또 별 것 없이 중요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의 구성은 터울 본인이 동성애자로서 겪은 연애와 성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연애', 동성애자들이 주로 활동하고 모이는 곳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공간', 동성애자이자 가톨릭교도로 살아가는 본인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종교', 최근 1~2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동성애 이슈를 풀어놓은 '한국 사회'로 구성돼 있다.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정책은

우리는 언젠가부터 동성애자들의 "여기 동성애자가 있다"는 외침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이에 누군가는 그들의 존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고, 또 누군가는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동성애자들은 끊임없이 음지에서 양지로 자신의 삶을 끌어 올렸다. 그 결과 세상이 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990년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이 시기부터 논의선상에 서게 된 셈이다. 그 후 동성애자들을 위한 구조적인 시스템이 각 나라에 갖춰지기 시작했다. 2001년, 네덜란드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첫 국가가 되었다.

네덜란드 이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20여 개국이 동성 결혼을 허용했고, 미국도 올해 연방 대법원에 의해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을 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결혼 커플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은 아직까지 법적인 부부가 되지 못했다(관련 기사 : 끝내 울어버린 부부 "인정 받는데 37년 걸리면 어쩌죠").

유교적 관습 때문일까, 보수적인 기독교의 저항 때문일까.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정책은 아직 미진한 단계에 멈춰 있다. 하지만 시민 한 명, 한 명은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광장에선 축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용기 있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 사람들과 그들의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기쁨의 축제를 벌였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청계광장, 삼일로, 명동, 세종로를 잇는 퀴어 퍼레이드가 개최됐고, 경찰 추산 6000명,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이 축제를 함께 즐겼다.

어김 없이 이들의 축제를 방해하는 세력은 있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난데 없이 부채춤을 추고 북을 두드렸으며, 일부는 바닥에 드러 누워 차 진입을 막았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발레를 추는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보수 세력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미명 아래 그들의 혐오를 정당화했다. 과연,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혐오스러운 행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나로선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것 같다(관련 기사 : "엄마, 나 게이야" 성소수자 응원한 구글과 리퍼트).

이보다 몇 개월 전 역시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친구와 서울 광장을 지나다 갑자기 친구가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통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친구는 그를 향해 외쳤다.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습니다!"

친구의 외침이 닿은 곳엔 한 기독교인이 동성애를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구구절절한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친구의 외침을 들은 그는 무표정한 표정을 돌연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바꾸었다. 눈을 부릅뜨고 분노에 젖은 음성으로 그는 친구에게 소리쳤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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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붉혔다. 친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더러 누군가를 혐오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나는 친구가 말하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인을 혐오하라고 하는 신이라면, 그 신이 우리에게 무슨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분노에 가득 찬 기독교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불현듯 단테의 <신곡>을 떠올렸다. 지옥을 순례하던 단테 앞엔 수많은 죄인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죄명은 '분노'였다. 부질 없는 분노에 빠져 삶을 낭비했던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이빨로 서로를 물어 뜯으며 절규하고 있었다. 남을 혐오하느라 분노하며 사는 삶,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산 사람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줄까? 2013년 7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동성애자인 누군가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과연 무슨 자격으로 그를 판단하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을 경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터울은 본인을 동성애자이자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다. 그는 '평범한' 이성애자 신앙인이 동성애자 신앙인에게 갖는 의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나는, 신앙인이라는 자들이 "참람한 짓에 몸을 담"가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고, 둘은 뭐하러 자신을 배격하는 교회 속에서 인정 투쟁을 벌이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에 터울은 먼저 답한다. 자신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이성애자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와 같다고. "자신의 내밀하고 영적인 부분들을 위로받는 그 느낌 때문에" 종교를 찾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또한 평등권의 싸움이기도 하다고. 이성애자가 누리는 것들을 동성애자에게도 허용해 달라는.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좀 길었다.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기 전에, 그들이 왜 "참람한 짓에 몸을 담"가야 했느냐를 먼저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참람한 짓이란 동성애자들의 '방종'하고 '무질서'한 하위 문화를 말한다. 이른바 '찜방'등에서 그들이 하는 성행위다.

터울은 이성애자들의 하위 문화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겠다고 우선 운을 띄웠다. 이어 그는 "동성애 문화의 '음지적 형태'가 동성애 '자체'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배태되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동성애자들은 음지에서 숨어 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일차적으로 바라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 삶이 무엇인지 그들조차 서로 논쟁하지 못했다. 이는 그들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던 사회 때문이라고 터울은 말한다. 그러니 동성애자 사이에 하위 문화가 존재한다면 동성애를 교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게이 인권 운동 단체들이 벌여온 일이 게이 스스로 분별의 감수성을 키우도록 돕는 것이었다. 게이로서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도 지금 배우고 수정하며 양지로 올라오는 중인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의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연 동성애자의 삶에 올바른 윤리가 설 수 있는 것일까. 동성애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갖고 태어난 기질에 대고 다른 누군가가 윤리 운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터울은 이해 답한다.

"여기 동성애자가 있다"는 존재 증명을 넘어, 동성애자의 삶에 어떤 올바른 윤리가 축적될 수 있느냐 하는, 실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이제야 비로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고작 20년이 좀 넘는 세월 동안, 병리가 아닌 동성애자의 삶의 윤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쟁되고 이해될 '절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동성애자들의 삶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그 안에서 윤리의 층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동성애자들 스스로도 아직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고, 이는 앞으로 이 시대가 축적하고 성취해 나가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그의 말대로 동성애자 삶의 윤리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의식과 사회적 의식은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논쟁의 장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무턱대고 미룰 수는 없다. 인권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성애자가 취할 수 있는 권리는, 동성애자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조건을 묻다> 책 표지를 한동안 바라봤다. '사랑의 신' 큐피드의 날개인 듯한 무지개 색 날개를 어깨에 달고 기쁘게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앞에 풍선 하나가 바닥에서부터 하늘로 치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풍선이 내겐 마치 큐피드의 화살 같다. 화살은 남자의 심장을 정통했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우리 모두가 사랑에 빠지듯이. 이 사실에 어떤 오류가 있는가.

이 책의 모든 문장은 동성애자의 삶에 바쳐져 있다. 동성애자의 사랑, 절망과 고통, 그리고 가능성과 희망에. 그런데 나는 이 책의 많은 문장에서 내 삶을 위로받고 나의 사랑, 절망과 고통, 그리고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터울이 그간 어떤 글을 써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터울이 다음엔 그냥 보통의 우리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은, 매일마다 글을 연마하고 있는 내겐, 부러울 만큼 섬세하고 깊고 아름다웠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사랑의 조건을 묻다>(터울 지음 / 숨쉬는책공장 펴냄 /2015.09 /1만6500원)



사랑의 조건을 묻다 - 어느 게이의 세상과 나를 향한 기록

터울 지음, 숨쉬는책공장(2015)


태그:#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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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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