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롯데호텔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한 탓으로 불합리하게 해고됐다고 주장하는 김영씨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동종 없계 1위라고 홍보하는 롯데호텔이, 뒤로는 힘없는 20대 청년 노동을 값싸게 이용하는 관행을 고치고 싶다"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대국민 사과하면서 무조건 '2만 4000개 일자리 창출하겠다고'고만 할 게 아니라, 안에서 함께 일하는 식구들 환경부터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롯데호텔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한 탓으로 불합리하게 해고됐다고 주장하는 김영씨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동종 없계 1위라고 홍보하는 롯데호텔이, 뒤로는 힘없는 20대 청년 노동을 값싸게 이용하는 관행을 고치고 싶다"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대국민 사과하면서 무조건 '2만 4000개 일자리 창출하겠다고'고만 할 게 아니라, 안에서 함께 일하는 식구들 환경부터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김영(24)씨는 그 날도 출근하자마자 근로계약서에 사인했다. 롯데호텔(송용덕 대표이사)에 취직한 첫날부터 84일간 매일 쓴 계약서였다.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를 뜻하는 '초단시간 근로계약서'에는 그의 근로조항이 짧게 정리돼있었다. 김씨는 문득 며칠 전 공휴일, 정규직 선임 덕에 알게 된 '휴일 수당'을 본인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퇴근을 앞둔 오후 9시께, 그는 회사에서 "해고"됐다.

3일 전 호텔 영업지원팀을 찾아갔던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담당직원에게 수당 등 구체적 근로조건이 담긴 '취업규칙'을 보고 싶다고 말했고, 직원은 그에게 "누구시냐, 알바냐 인턴이냐"고 물었다. 김씨가 아르바이트라고 말하자 직원은 싸늘하게 답했다고 한다. "우린 알바에게 그런 거 보여줄 의무 없어요. 나가요." 그러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이를 각 사업장에 게시해, 근무자들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취업규칙 열람을 거부할 때 담당자가 짓던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영업지원팀에서) 제가 일하던 장소로 돌아가는데, 모멸감이 들어서 심장이 막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더라고요. 매일 쓰는 근로계약서가 근태관리를 위한 용도라 봤고 실제로 그렇게도 쓰였는데, 이제 와 보니 상황에 따라 편하게 해고하려 한 게 아닌가 싶고…." 

그렇게 김영씨는 3개월 넘게 일한 일터에서 잘렸다. 지난해 3월 29일의 일이다. 롯데호텔 측은 인력업체 관계자를 통해 '김씨 업무(뷔페·주방 보조)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적합하다'고 알려왔지만, 그는 여전히 해고 사유가 취업규칙 열람 요구 탓이었다고 보고 있다(관련 기사: "근로계약서 84장 쓰고 잘린 사람, 바로 접니다").

"같이 일하던 인턴사원이 다음 날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어제 영업지원팀 직원이 찾아와 '얘 뭐냐, 왜 이런 걸 보여달라고 하냐'고 주임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고요. 사측이 제시한 사유는 '성별에 대한 경영상 판단'이었지만 정황상 이건 누가 봐도 보복성 징계잖아요." 

"롯데 직원, '이거 받고 끝내자'며 3천만 원 제안하더라"

김영씨는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인정 판결이 내려진 이후 롯데호텔 측이 3000만 원을 주겠다고 회유한 것에 대해 "20대 청년한테 돈 쥐여주면서 입 막고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걸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영씨는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인정 판결이 내려진 이후 롯데호텔 측이 3000만 원을 주겠다고 회유한 것에 대해 "20대 청년한테 돈 쥐여주면서 입 막고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걸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추석을 앞둔 25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고교 때부터 지금껏 15개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해온 그는, 추석 때도 고향에 가지 않고 일자리를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호텔 근무 당시 김씨 나이는 23세, 법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그였지만 매일 쓰는 근로계약서가 이상했다고 한다. 내용이 실제 근무와 달랐기 때문이다. 계약서엔 '1주에 15시간 미만을 일한다'고 돼 있었으나 김씨는 매일 9시간씩 주당 47시간가량을 근무했다. '일용직 근로자'라고 쓰여 있었으나 임금은 주마다 지급됐고, 근무 일정표도 1주일 단위로 나왔다. 김씨는 '출퇴근 관리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측 통보에 억울해하던 김씨는 구제신청을 했고, 지난해 11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부당 해고임을 인정받는다. "일일 계약을 84회 반복 갱신했으므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김씨에 따르면 롯데호텔 측은 세 차례 김씨를 만나 회유·협박성 발언을 했다. "소 취하를 하지 않으면 너 말고 수많은 다른 일용직 학생들도 잘릴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중노위 결과(부당 해고 인정) 후에 호텔 측이 3000만 원을 제시하더라고요. 그것도 처음엔 2000만 원이었는데 거절하니까 더 높였던 거고요. 처음엔 50대 중반인 인사팀 사람이 시청 근처 고급 일식집에 절 데려가더니 지갑 속 아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러더라고요. '네가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제 이 싸움 서로 웃으면서 마무리하자, 너 이 돈 받고 알바 말고 공부에 집중해라…'.

얘길 듣자마자 실망감부터 확 들었죠. 중노위 과정 때 그 사람은 분명 잘못을 인정하면서 '우리가 잘못했다, 바로잡겠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래서 최종 판결도 잘 받아들일 거라 기대했는데, 정작 뒤에서는 저 같은 20대 청년한테 돈 쥐여주면서 입 막고 '없었던 일로 하자' 하는 걸 보면서 참 뭐랄까, 회의감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김씨는 "호텔 측이 처음엔 온건하게 회유하다가, 잘 안 되니까 협박 조로 돌아서더라"며 "롯데 같은 대기업이 대형로펌을 써서 '너 하나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하니 무서웠다, (합의금 앞에) 솔직히 갈등도 됐다"고 털어놨다. 한 달 수입이 약 100만 원이던 그에게 3000만 원은 큰 액수였다. 마침 당시 집에 비슷한 액수의 대출 빚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실제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김씨는 지금껏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영화관·식당·카페 등 근무해본 아르바이트만도 15개가 넘는다. 지방에서 올라와 신촌 인근 고시원에서 지내던 그가 롯데호텔에 지원했던 것도 '장기근무 우대'와 '식사 제공'에 끌려서였다. 호텔과 싸우는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씨는 최근에야 잠시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고 있다.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 행정관청에 찾아가서 서류를 접수하고 조사관들을 대하는 것, 기억하기 싫은 당시 상황을 계속 떠올리고 대기업을 마주하는 것은 엄청난 심리적 중압감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재벌 대기업과 법적 싸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소진되는 일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솔직히 후회도 조금 했습니다. '그냥 부당 해고니 뭐니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일자리 구할 걸 그랬나, 사회경험 했다 치고 침 한 번 뱉고 끝낼 걸 그랬나. 아니, 그냥 그때 롯데호텔이 제시한 거액의 합의금 받고 소송을 취하할 걸, 괜히 영웅인 척 하지 말 걸….'"
(지난 7월 8일, '부당해고 용인한 행정법원 규탄 기자회견' 당시 김씨 발언 중)

노동에 등급 있나... "아르바이트도 제게는 생계 위한 절실한 노동"

김영씨는 자신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 판단을 뒤집으며 호텔 측 손을 들어줬다. 그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롯데호텔과의 싸움을 계속할 계획이다.
 김영씨는 자신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 판단을 뒤집으며 호텔 측 손을 들어줬다. 그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롯데호텔과의 싸움을 계속할 계획이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김씨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호텔과의 싸움을 계속할 계획이다. 김씨는 "그간 기간제 근로자들이 갱신기대권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된 사례는 있어도 저 같은 일용직 근로자가 잘된 선례는 없었다"며 "이번에 좋은 결과를 남겨서 대기업들이 '하루살이' 일용직을 악용하는 잘못된 관행들을 없애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용직 계약을 매일 갱신해 일하도록 하는 것은 호텔 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한편 사측은 중노위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 판단을 뒤집으며 호텔 측 손을 들어준다. "참가인(김영)의 업무는 특별한 기능을 요하지 않는 단순한 보조업무에 불과해 상시·지속적 업무라고 보기 어렵고 (…)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상당수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으로 언제든 일을 그만둘 수 있어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이 판결을 듣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저도 그렇지만 호텔 동료들도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다들 주거비와 학비·생계비를 벌기 위한 절실한 노동이었다, 행정 법원의 설명처럼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소속감 없는, 무책임한 노동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판결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동안 김씨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눈가 아래는 자주 파르르 떨렸다.

"제 생각은 그래요. 업무가 상대적으로 전문·비전문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비전문적 업무를 마음대로 해고해도 되는 건 아니죠. 누군가는 설거지와 잔반 처리 등을 해야 하는 건데, 그런 노동을 1등·2등으로 나눌 수는 없는 거잖아요. 급여가 다를 수는 있어도 노동에 대한 가치는 평등하다고 봐요. 그런데 이번 판결은 그렇지 않았어요."

롯데호텔 홍보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부당 해고가 아니라는 게 (앞선) 행정법원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당한 계약 만료'라는 것이 호텔 측의 앞선 주장이었다. 이 관계자는 또 롯데호텔 인사팀 측의 회유·협박성 발언에 대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며 "문제가 되면 법원에서 판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도움을 받아 재차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지난 24일에는 항소 제기 첫 공판일을 맞아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시민단체가 롯데호텔 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 공판은 10월 22일에 열린다. 김씨는 약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계 5위, 계열사 80개, 동종 업계 1위라고 홍보하는 롯데호텔이 뒤로는 힘없는 20대 청년 노동을 값싸게 이용하는 관행을 고치고 싶어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대국민 사과하면서 무조건 '2만 4000개 일자리 창출하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안에서 함께 일하는 식구들 근무 환경부터 개선했으면 좋겠어요. 이 사건이 롯데호텔을 비롯한 호텔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길 바랍니다."

청년유니온은 페이스북을 통해 롯데호텔에서 일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된 김영씨 사연을 <카드뉴스>로 정리해 "단순 업무라고 해서 하루 쓰고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열악한 청년노동자들의 지위를 악용해 기업이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나쁜 관행을 바로 잡아한다"고 알리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페이스북을 통해 롯데호텔에서 일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된 김영씨 사연을 <카드뉴스>로 정리해 "단순 업무라고 해서 하루 쓰고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열악한 청년노동자들의 지위를 악용해 기업이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나쁜 관행을 바로 잡아한다"고 알리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태그:#롯데호텔 부당해고, #부당해고 롯데, #신동빈 일자리, #롯데호텔 해고 김영, #김영 롯데호텔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