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 사진

▲ 윤나무의 '빈디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중 '빈디치'의 공연 사진. '영 맨'이 극을 이끄는 빈디치는 복수를 테마로 이야기를 풀어낸 하드보일드 작품이다. 그는 빨간 풍선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루시 대신 그레이스를 선택한다. ⓒ 아이엠컬처


대학로는 2015년 7월 14일과 2015년 9월 29일을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작품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대학로지만, 지난 7월 14일은 유달리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처음으로 관객을 마주한 그 날. 100석의 좌석을 채운 관객은 '충격과 공포'에 시달렸을 테다.

뒤늦게 3부작 중 한 편을 본 나는 '왜 이 작품을 이제야 봤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예매창에 서둘러 다시 접속했지만, 아뿔싸 자리 구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가 않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반해버린 것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3부작을 모두 보게 된다.

<카포네 트릴로지>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결코 없다. 한 편을 보면 무조건 세 편을 모두 찾아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성적인 '드립'에 욕설, 잔인한 장면까지 나오는 '19금' 극이지만 관객은 자연스레 '회전문'을 돌게 된다.

거의 모든 회차의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지난 29일 아쉬운 작별을 맞았다. 본 공연을 마치는 <카포네 트릴로지>는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단 5일간 특별공연에 들어선다. 단언컨대, <카포네 트릴로지>는 가장 완벽한 연극은 아닐지언정, 근래 대학로에 올라온 작품 중 가장 매혹적인 연극이다.

시카고에 짙게 드리운 알 카포네의 그림자


"나쁜 일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100명만 입장할 수 있는 관객석, 좌우로 갈라져 들어온 관객은 비좁은 호텔 방에 나눠 앉아야 한다. 창문, 침대, 작은 탁상, 화장대에 옷장 하나가 전부인 렉싱턴 호텔 661호. 본래 직원들이 쓰던 이 누추한 방에서 시차를 두고 '나쁜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각 작품의 시점은 알 카포네가 활약하던 때, 그가 수용됐을 때 그리고 그가 출소했을 때로 나뉜다. '밤의 대통령'이었던 카포네는 극 중 한 번도 실제 등장하지 않지만, 이 극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알 카포네의 그림자는 시카고를 지배하고 있었고, 극 내 모든 에피소드는 그 그림자 내에서 발버둥친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트릴로지'라는 이름처럼 3부작이다. '로키', '루시퍼', '빈디치'로 이어지는 작품은 각 70분의 러닝타임 동안 숨 가쁘게 관객을 옭아맨다. 단 3명의 배우만이 등장하며, 각 작품별 주인공은 '레이디'와 '올드 맨' 그리고 '영 맨'이다. 극의 테마도 장르도 다르지만, 개별적인 사건들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춘다. 시간 순에 상관없이 봐도 되고, 한 편만 봐도 극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각 작품은 묘하게 서로 연결된다.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 "당신의 품에서 숨 쉴 때가 제일 편해" 등 각 작품에 동일한 대사가 다른 맥락에서 튀어나온다. 모든 에피소드에 춤을 추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고, 독약이나 뷰익(자동차) 등 공통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한 에피소드 내 사건이나 인물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로 억지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모르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고 관객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할 정도로 깊이 감춰진 것도 아니다. 김태형 연출은 여러 장치를 섬세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배치한다. 이 연결고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를 보장한다.

[로키] 1923년, 렉싱턴 호텔 661호, 파멸의 광대, 코미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 사진

▲ 롤라 킨과 광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에서 가장 이른 시점의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는 '로키'이다. 1923년 렉싱턴 호텔 661호, 남자들의 밤을 지배하던 쇼 걸 '롤라 킨'은 갑작스레 등장한 두 광대 때문에 놀란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쇼가 시작된다. ⓒ 아이엠컬처


그녀는 빨간 풍선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빨간 풍선 때문에, 그녀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죽도록 맞았다. 그 풍선을 훔치다 걸려서 두들겨 맞는다. 그녀에게 빨간 풍선은 꼴도 보기 싫은 트라우마의 상징이 됐다. 그런 그녀 앞에 빨간 풍선을 든 두 광대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롤라, 일어나 봐요. 당신, 사람을 죽였어."

<카포네 트릴로지>에서 가장 앞선 시점의 에피소드 '로키'의 주인공은 '레이디'인 롤라 킨이다. 렉싱턴 호텔에서 진행되던 '로키쇼'의 쇼걸이었던 그녀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661호 침대에 누워 숙취에 괴로워하던 그녀, 그녀 앞에 등장한 광대 두 명은 다짜고짜 "사람을 죽였다"며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애걸한다. 무시하고 탈출하려고 하지만, 이미 환영에 사로잡힌 그녀는 쳇바퀴처럼 렉싱턴 호텔 661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쇼가 시작된다. 결혼식 전날, 그녀는 카포네에게 진 빚을 청산해주는 대가로 회계사와 결혼을 하기로 한다. 결혼식 전날부터 그녀와 자고 싶어 안달이 난 회계사에게, 순결한 척 연기하며 자제하는 롤라. 하지만 이 결혼은 '위장'이었다.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끝내주는 잠자리 스킬을 가진 이탈리아 남자와 도망갈 생각이다.

그리고 대개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 계획은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여러 죽음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죽음은 우스꽝스럽게 희화화된다. 비극의 희극화, 그 모순된 상황 속에서 관객은 어느새 레이디에게 감정이입한다. 쉴 새 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여러 역을 해내는 두 남자배우는, 순식간에 바뀌는 각 역할을 부드럽게 소화한다.

"Welcome to Fucking Paradise."

우여곡절을 겪은 그녀. 그녀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그 '아무도'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롤라 킨은 롤라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뜬금없는 고백에 눈물 흘리고 아파하면서, 그녀는 결심한다. 나 자신만큼은 사랑하기로.

그녀는 이 끔찍한 낙원을 탈출한다. 수녀복을 입고, 카포네가 지배하는 이 세계를 탈출한다. 그토록 싫어했던, 사실은 정말로 갖고 싶었던 빨간 풍선을 손에 들고. 주변 사람한테 미안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두 다리로 오롯이 걸어 나가기로 한다. 새로운 삶, 희망과 행복. 롤라 킨은 손에 쥐었다. 전설적인 쇼걸은 마지막 쇼를 끝내고 유유히 렉싱턴 호텔 661호의 문을 연다.

[루시퍼] 1934년, 렉싱턴 호텔 661호, 타락천사, 서스펜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 사진

▲ '루시퍼' 닉 니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3부작 중 '루시퍼'의 공연 사진. 닉 니티는 알 카포네가 수감된 이후 조직의 실질적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항상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직을 운영하며, 펜트하우스 대신 661호에 머무르며 말린을 위해 헌신한다. 그가 지키고 싶었던 빨간 풍선은, 결국 잡을 수 없었다. ⓒ 아이엠컬처


처음 빨간 풍선을 본 건 그가 아니었다. 그의 아내 말린이었다. 말린은 빨간 풍선을 갖고 싶어 한다. 창문 밖에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잡으려고 애쓰는 말린. 닉 니티는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감금'한 채로. 그러면 그는, 그 빨간 풍선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도 풍선 봤어. 잡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너무 멀어."

카포네는 알카트라즈에 수감됐다. 그러나 조직은 건재했다. 조직의 2인자를 자처하는 닉. 그는 조직의 모든 문제를 통제하고 관리하지만,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속삭임'을 전달할 뿐이다.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는다. 모두가 알 카포네를 대신해 저 위 펜트하우스에 가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661호면 충분하다. 배임·횡령으로 들어간 알 카포네는 언젠가 시카고로 돌아올 것이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두 번째 작품 '루시퍼'는 '올드 맨'인 닉 니티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서스펜스'를 표방하는 루시퍼는, 로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닉 니티는 말린을 끔찍하게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집착으로 이어지는 사람이다. 자신이 정해놓은 틀과 규칙 안에 말린을 가둬놓고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틀어막는다. 조직에서의 위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려 해도, 아무리 신사적으로 행동하려고 해도 닉의 존재감은 갈수록 부각된다. 그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행동 방식은 결국 사단이 나고 만다. 말린과 혈연관계인 부패경찰 마이클을 매수하며 일을 벌여 왔지만, 조직의 경쟁자를 제거하려던 그의 계획은 더 끔찍한 비극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카포네가 될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카포네가 되라고 하지만, 그는 펜트하우스에 별 욕심이 없다. 그저 말린이면 충분하다. 이 작고 누추한 661호에서 그의 사랑을 지킬 수만 있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호'는 '감금'이 됐다. 억지로 풍선을 잡으려고 해봤자, 힘을 잘못 주면 터져버릴 뿐이다. 강제로 틀 안에 넣으려고 해도, 말랑말랑한 풍선은 그 우악스러운 프레임을 이기지 못한다.

난무하는 욕설, 서로를 향해 겨누는 총부리, 울부짖는 레이디. 창문 밖에 날아가는 빨간 풍선을 보며 닉은 눈물 흘린다. 터져 버린 풍선, 터져 버린 총성. 서로를 향한 악의는 비명만을 남긴 채 렉싱턴 호텔 661호를 떠난다. 아니, 그 방에서 추락한다.

[빈디치] 1943년, 렉싱턴 호텔 661호, 복수의 화신, 하드보일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 사진

▲ 빈디치와 루시 빈디치에게 다가온 루시. 빈디치는 루시를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총부리를 그녀에게 겨눈다. 그가 선택한 건 그레이스. 그가 날려 보내는 빨간 풍선이 애잔하다. ⓒ 아이엠컬처


그는 빨간 풍선을 고이 간직했다. 침대에는 한 명의 여인이 누워 있고, 그녀의 옆에는 빨간 풍선 하나가 놓여 있다. 그녀는 빨간 풍선을 참 좋아했다. 그녀의 이름은 그레이스. 신의 자비를 뜻하는 그녀는 붕대에 감긴 채 조금씩 썩어 가고 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지 오래된 그녀의 옆에서, 복수를 꿈꾸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빈디치. 한때 경찰이었던 그는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복수의 기회를 엿본다.

<카포네 트릴로지>에서 가장 늦은 시점을 그린 '빈디치'는 '영 맨'인 빈디치의 복수극이다. 순수하고 의기로웠던 청년이, 배신당하고 뒤틀린 채 처절한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다. 빈디치가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나레이션 비중이 상당하다. 때로는 의식이나 감정이 '과잉'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덕분에 그 넘치는 감성이 밖으로 새어나와 흐르지 않는다. 극이라는 전체 그릇이 잘 조율되어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그레이스의 자살. 그 자살의 원인을 제공한 프랭크는 자신의 상사이자, 시카고에 정의를 실현했다고 일컬어지는 고위 경찰이다. 하지만 빈디치는 깨달았다. 자신이 한때 존경했던 그가 얼마나 위선적인 인간인지. 적당히 양떼들의 생존만 보장하고, 늑대를 쫓을 생각은 하지 않는 개. 그 자신이 카포네가 되고 싶어 하는, 늑대가 되고 싶은 타락한 개. 프랭크는 그런 인간이었다.

빈디치 앞에 프랭크의 딸인 루시가 등장한다. 그리고 제안한다. 함께 복수하자고. 루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빈디치의 복수극에 가담하며 조력자로 기능한다. 순수한 의도는 아니다. 루시 역시 이해득실을 따지고, 빈디치를 이용한다. 빈디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이용당한 뒤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묘한 감정이 있음에도 애써 부정한다. 이 이해와 감성의 소용돌이는 극 후반부에 응축되어 한꺼번에 폭발한다.

빈디치는 사실, 선택할 수 있었다. 루시는 인류 최초 여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의 자비를 구하며, 에덴동산에서 살던 신화의 시대가 있었다. 모든 것이 선하고 정의로웠던 그때.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고, 동시에 더 '인간'다워 졌다. 빈디치는 루시를 고를 수 있었다. 루시와 함께, 두스에 대한 복수만 마치고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빨간 풍선을 들고 루시와 같이 나가는 빈디치를 잠시나마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공룡이니까.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던 순수한 청년 경찰이었으니까.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을 택했다. 혹시나 무의식 중에라도 그레이스의 사정을 애써 무시했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 모든 비극을 뒤에서 조종했던 루시는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을 테니. 빈디치가 연기하는 인물 '피터'의 이름은, 원래 사도 베드로에서 따온 영어식 이름이다.

한때 신을 배신했지만, 결국 신의 곁으로 돌아가 순교하는 베드로. 빈디치는 끝내 그레이스를 선택한다. 마치 햄릿처럼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 마지막, 그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된다. 묶여 있던 빨간 풍선을 하늘 위로 날려 보낸다.

가장 완벽한 오브제 '빨간 풍선'의 의미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의 공연 사진

▲ '로키'의 두 광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중 '로키'에 등장하는 두 광대는 레이디인 롤라 킨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적 존재이다. '로키'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시간을 거슬러 과거 사건을 재연한다. 이들이 들고 있는 빨간 풍선은 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빨간 풍선을 들고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가는 건 '로키'의 롤라 킨 뿐이다. ⓒ 아이엠컬처


빈디치는 외친다. 저 빨간 풍선은 이 연극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오브제"라고.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 <다음 백과사전>

빨간 풍선은 <카포네 트릴로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오브제'이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빨간 풍선'을 통해, <카포네 트릴로지>는 라이선스 작품임에도 원작 그 이상의 매력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김태형 연출은 <카포네 트릴로지>의 프로그램북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풍선. 오직 우리가 만든, 원작에는 없는 빨간 풍선, 들고 나갈 수 있는 풍선.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 결국 터져버린 풍선. 펑. 죽음과 함께 창밖으로 날아가버린 풍선. 광대. 결국 연극은 배우. 배우. 카포네의 시대. 갇힌 방. 어쩜 대한민국과 닮은 꼴. 어느 쪽? 슬픈 쪽. 나도 잡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너무 멀어."

3부작의 캐릭터들은 모두 '빨간 풍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닉은 빨간 풍선을 잡지 못하고 결국 제 손으로 터트려 버리고야 만다. 빈디치는 자살하기 직전, 빨간 풍선을 자유롭게 창문 밖으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두스는 제일 마지막에 그 풍선을 총으로 쏘는 시늉을 하며 나름의 '복수'를 해낸다) 풍선을 들고 렉싱턴 호텔 661호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건 롤라 킨뿐이다.

빨간 풍선은 무엇일까. 자유, 해방, 사랑, 복수, 행복 등 빨간 풍선이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느냐는 각 작품별로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그 빨간 풍선에 집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그 빨간 풍선과 나름의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는 주인공을 구원하기도 하고, 옥죄기도 한다.

시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카포네 트릴로지>의 시카고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교집합이 존재한다. 경찰은 부패했고, 행정력은 마비됐다. 사람들은 공적 권력을 신뢰하느니 사적 권력에 의지한다. 만연한 배금주의 속에서 인간성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폭력과 섹스가 채운다. 이 와중에 혼자 고고한 척 해봤자 "빙하기의 공룡"처럼 멸종할 뿐이다. 비극은 너무도 쉽게 희화화된다. "이 도시를 믿어? 이 나라를 믿어?"라는 경쾌한 노래 가사는 날카롭게 2015년 대한민국을 관통한다.

알 카포네의 그림자가 뒤덮인 시카고처럼, 대한민국도 그림자에 뒤덮여 있다. 자본과 폭력을 무기 삼은 이들이 지배하는 이곳.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이 각박한 현실에서, 우리 가슴 속에는 저마다의 빨간 풍선이 하나쯤 있다. 그 빨간 풍선을 쥐고 싶은 우리의 욕망이, 우리를 숨 쉬고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 빨간 풍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롤라, 닉, 빈디치가 보여 준 세 가지 갈림길에서. 북구유럽 신화에서 거짓말쟁이 신 로키는 결국 낙원에서 쫓겨난다. 루시퍼, 최초로 추락한 천사는 그토록 얻고 싶었던 신의 사랑을 결국 얻지 못한다. 빙하기의 마지막 공룡처럼, 혼자 정의롭고 싶었던 빈디치는 예정된 멸종을 택한다. 자, 그럼 이제 우리는 빨간 풍선에 어떻게 손을 뻗을 것인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포스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메인포스터.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포스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메인포스터. 지난 7월 14일부터 시작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본 공연이 29일 막을 내렸다.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특별공연에 들어섰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스태프와 배우의 합이 훌륭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배우 김종태, 박은석, 정연, 이석준, 윤나무, 김지현. ⓒ 아이엠컬쳐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 루시퍼 빈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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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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