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 살리에르와 젤라스 지난 4일 진행된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의 커튼콜에서 배우 최수형과 조형균이 관객에게 인사하는 와중에 웃고 있다. 악장의 '파워 지휘'도, 젤라스의 '아이라인'도 모두 그리웠지만, 이 둘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 ⓒ 곽우신


침묵으로 떨리는 무대. 얼어있던 공기를 깨트리며, 숨죽인 사람들 사이를 피아노 한 대의 음률이 휘젓는다. 1년 전 이곳에서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에 의자에 앉은 관객의 가슴이 아우성친다.

"완벽한 음악, 노력의 음표들아. 밤새워 쏟아낸, 나의 손짓 따라 움직여."
"이 순간을 즐겨봐. 이 음표들이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빈의 궁정악장과 한 천재 음악가의 노래가 숨어 있던 '음표'들을 깨운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부름에, 설렌 마음으로 부푼 '음표'들이 무대 앞에 모였다.

'음표'들을 열광시킨 단 이틀간의 짧은 축제가 끝났다. 지난 3일과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아래 <살리콘>)가 진행됐다. <살리콘>은 지난 2014년에 초연한 HJ컬쳐의 창작뮤지컬 <살리에르>의 팬들을 위해 기획된 콘서트이다. 뮤지컬 작품별로, 해당 작품을 애정 하는 팬의 별명이 존재한다. <살리에르>를 앓고 있는 팬들은, 악장의 지휘에 따라 흔들리는 '음표'로 불린다.

2016년 재연을 앞둔 <살리에르>, 내년까지 기다리기 힘겨워하는 음표를 위해 '문화네'가 준비한 이 이벤트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행사가, 오히려 작품을 향한 사랑과 욕망에 더 큰불을 지폈으니 말이다.

1년 만에 재회한 노력과 질투의 이중주

젤라스들 지난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젤라스 역을 맡은 두 배우 김찬호와 조형균이 커튼콜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젤라스는 질투를 뜻하는 영어 'zealous'에서 따온 이름으로, 살리에르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적 캐릭터이다. 살리에르 내면의 질투심이 의인화한 이 둘은 살리에르를 위해 헌신한다. 그를 위해, 그가 파멸의 길을 걷도록.

▲ 젤라스들 지난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젤라스 역을 맡은 두 배우 김찬호와 조형균이 커튼콜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젤라스는 질투를 뜻하는 영어 'zealous'에서 따온 이름으로, 살리에르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적 캐릭터이다. 살리에르 내면의 질투심이 의인화한 이 둘은 살리에르를 위해 헌신한다. 그를 위해, 그가 파멸의 길을 걷도록. ⓒ 곽우신


뮤지컬 <살리에르>는 실존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이다. 살리에리는 2인자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이미지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본래 살리에'리'라고 표기하는 게 맞지만, 살리에'르'로 번역·표기되면서 역사적 인물 살리에리와 재창조된 인물 살리에르 사이의 간극이 생겼다.

니체를 만난 쇼펜하우어가 그랬듯이, 젊은 천재 모차르트를 보는 범재 살리에르의 좌절과 질투심이 영화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살리에르에게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해할 수 있는 '귀'는 있었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쓸 수 있는 '손'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 그 질투심은 결국 모차르트라는 별을 지게 만든다.

이러한 영화 내 서사는 물론, 실제 역사와 다소 차이가 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미워한 것은 맞지만, 당시 모차르트는 방종한 생활과 남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 등으로 인해 워낙 여러 사람에게 미움받던 인물이었다. 제도권 내에서 음악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세를 얻은 살리에리가, 야인으로서 밖에서 살며 낭비와 사치로 빚더미에 올랐던 모차르트를 정말로 질투했을까. 그 둘이 상반된 캐릭터인 것은 맞지만, 살리에리가 실제로 모차르트의 재능을 '증후군'을 만들어낼 정도로 질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암살했다는 소문은 당시에도 떠돌았다. 살리에리는 자신이 모차르트를 증오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암살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정했다.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모차르트의 사인 중에서, 살리에리의 암살설은 여전히 가장 매혹적인 음모론 중 하나이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실존 인물 살리에리가 아니라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살리에르의 이야기이다. 오스트리아의 궁정악장,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노력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을 존경하는 학생이 있고, 황제의 총애도 독차지한다. 자신과 황제,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그는, 성실하고 근면하게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며 음표를 그린다. 그에게는 아무런 그늘이 없는 것만 같다.

그랬던 그의 앞에 모차르트가 등장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단숨에 알아본 그는 질투심에 휩싸인다.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자신의 음악은 지루하고 진부하다는 평을 받으며 밀리기 시작한다. 곡 하나를 쓰기 위해 수없이 음표를 지우고 다시 써야 하는 자신에 비해, 일필휘지로 단 한 개의 음표 수정도 없이 곡을 쓰는 모차르트는 '신이 내린' 인물이다. 애제자 카트리나마저 모차르트에게 넘어가면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느끼는 질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질투에 잡아먹힌 살리에르는 파멸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결국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자신의 삶마저 갉아먹으며 파괴하는 한 인물의 비극적 이야기이다. 살리에르의 질투심이 인격화된 '젤라스'의 등장은, 극 전체에 신비감과 비장미를 증폭한다. 대극장 뮤지컬은 아니지만, 관객의 귀를 매혹할 정도로 빛나는 넘버가 많아 무게감은 충실하다. '신이시여',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백조의 노래', '노력한다면' 등 명곡이 많다 보니 딱히 킬링 넘버 한 곡을 선택하기 어렵다.

<살리콘>은 뮤지컬 <살리에르>의 초연 배우 대부분이 다시 무대 위에 올라와 지난해의 기억을 관객에게 일깨워줬다. 모든 신이 무대 위에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오케스트라와 앙상블까지 갖춘 채 대사와 연기가 어우러진 넘버들이 극장의 공기를 울렸다. 노래의 힘이 강한 덕분에, <살리에르>를 지난해에 보지 않은 팬도 충분히 즐기며 내년 재연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콘서트 중간에 진행된 토크쇼 등의 이벤트는 폭소를 끌어냈고, 다시 노래로 좌중을 집중시키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 커튼콜 때는 2016 시즌에 추가될 넘버를 깜짝 공개했다. 토크쇼 사회자로 나선 루이스초이의 '울게 하소서' 때문에 갑작스레 <파리넬리>마저 그리워진 건 덤이다.

노력과 '노오력'의 차이, 살리에르는 몰랐나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 테레지아와 카트리나 지난 4일,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에서 테레지아 역의 이민아 배우와 카트리나 역의 김히어라 배우가 함께 노래하고 있다. 살리에르 옆의 테레지아와 모차르트 곁의 카트리나 모두 두 남자의 파멸을 지켜봐야 하는 인물이다. ⓒ 곽우신


"노력 한다면, 노력 한다면 이 세상에 안 되는 건 없어. 멈추지 않으며 노력하며, 연습 한다면 그 무엇도 두려울 건 없어. 너의 꿈은 이뤄질 거야. 노력 한다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어. 포기하지마."

살리에르는 대표적인 노력파 캐릭터이다. 뮤지컬 <살리에르>의 킬링 넘버 중 하나인 '노력한다면'은, 노력을 통해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살리에르는 그렇게 살아왔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아왔고,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랬던 그가 힘들어하는 카트리나에게 노력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노력한다고 뭐든지 이룰 수 있을까. 정말로 노력만 하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까. 살리에르는 그렇게 믿어 왔다. 노력은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고, 그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였다. 모차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모차르트가 단순히 훌륭한 음악을 작곡해서, 사랑하는 카르티나를 빼앗아가서 살리에르가 질투심을 느낀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르가 신봉했던 세계 자체를 붕괴시켰다.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 밤낮을 노력해도, 자신은 모차르트가 될 수 없었다. 살리에르에게는 첫 실패이자 좌절이었다. 살리에르는 오만하고 품위 없고 전통을 무시하는, 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에게 졌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은 신의 영광을 알고, 아름다움을 이해하는데, 왜 신은 그런 놀라운 재능을 자신이 아니라 모차르트에게 선물(gifted)했는가.

살리에르는 노력과 노오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꼰대들이 요구하는 '노오력'은 사실 노력이 아니다. 꼰대들은 결과만을 보고 과정을 예단한다. 정답을 보고 그 뒤의 수식과 항을 멋대로 결정짓는다.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할 때의 노오력은, 성공의 전제 조건,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 거쳐 가는 통과의례 정도에 불과하다. '노오력'은 노력의 숭고한 가치를 헐뜯고, 결과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수물로 격하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노력한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노력이 성공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해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인간은 방정식이 아니다. 적당한 숫자를 산입한다고 반드시 답이 산출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원료를 투입한다고 적절한 공산품을 꺼내놓지 못한다. 몇몇 신화가 포장하는 세계,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구조의 모순을 가릴 뿐만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소외시킨다.

살리에르도 그랬다. 자신이 성공한 원인이 노력이었기에, 노력만 하면 똑같이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항과 수식을 대입했는데 정답이 산출되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노력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결과만을 위한 과정, 내일만을 위한 오늘은 필요 없다.

노력이 결과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 박유덕의 모차르트 지난 4일,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가 진행된 세종문화호관 M씨어터에서 배우 박유덕이 노래하고 있다. 모차르트 역할을 맡은 박유덕 배우는 피아노에 '트라우마'가 있다면서도, 멋진 연주와 연기를 동시에 선보였다. 그가 표현하는 천재 캐릭터 모차르트, 그러나 그의 눈에도 살리에르의 젤라스가 보였다는 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 곽우신


노력은 그냥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노력으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손에 쥘지는 개인의 자유의지이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노력이 '노오력'으로 추락할 때, 실패가 도출되는 순간 이전의 모든 노력은 무가치로 취급받는다. 하루하루 투쟁 같은 일상을 영위하며 버둥거리는 게, 누구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흘린 땀의 가치와 경험의 기억을, 누가 감히 헛되이 무시하고 재단할 수 있단 말인가.

삶은 종착점을 가지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가 걸어온 발자국의 궤적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노력은 그 삶의 흔적이다. 노력이 무엇을 만들어냈느냐가 아니라,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숭고한 이유는 그 모습 자체가 반짝이기 때문이다. 그 후의 성공과 실패는 논외의 영역이다. 살리에르만큼 노력한 사람은 없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처럼 곡을 쓰지 못한다고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비하할 수 있는가.

살리에르의 질투심과 좌절감은 그가 노력을 포기하게 하였다. 그는 승부와 성공, 명성이라는 결과에 집착했다. 노력이 결과를 만들지 못하니, 그는 쉬운 길을 선택한다. 그가 악보를 훔치는 순간은 곧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때이다. 카트리나에게 그토록 자신을 믿으라고 강조했던 선생이, 스스로 그 믿음을 버렸다. 살리에르의 타락은 여기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예고된 파멸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와 나 자신을 비교할 것도 없고, 이 노력이 성공을 가져다주지 말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살아 숨 쉬며 밤새워 음표를 쏟아내면 그뿐일 일이다. 그 음표들의 집합체가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살리에르가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순간은 황제 앞에서 자신의 곡을 뽐낼 때가 아니라, 그 곡을 쓰기 위해 밤새 음표를 써내려갈 때이다. 우리도 모차르트 같은 위업은 남길 수 없어도, 살리에르처럼 찬란히 빛나는 순간은, 그 희열은 맞이할 수는 있다.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포스터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의 메인포스터. 단 이틀 동안 음표들을 열광시켰던 축제가 끝났다. 음표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마련한 콘서트가, 오히려 그 '고픔'을 증폭하고 말았다. 2016 <살리에르>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특히 새 생명을 잉태하느라 이번 콘서트에 함께하지 못한 곽선영의 카트리나도 건강히 복귀하기를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 포스터 뮤지컬 <살리에르> 리멤버 콘서트의 메인포스터. 단 이틀 동안 음표들을 열광시켰던 축제가 끝났다. 음표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마련한 콘서트가, 오히려 그 '고픔'을 증폭하고 말았다. 2016 <살리에르>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특히 새 생명을 잉태하느라 이번 콘서트에 함께하지 못한 곽선영의 카트리나도 건강히 복귀하기를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 HJ컬쳐



○ 편집ㅣ손지은 기자


뮤지컬 살리에르 음표 HJ컬쳐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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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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