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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디안 스타일 Indian style
 지금은 인디안 스타일 Indian style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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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쁠테니까 푹 자두는 게 좋을 거야."

어제 저녁 쿠루티가 헤어지면서 우리에게 해준 말이다. 인도 결혼식은 며칠에 걸쳐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내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결혼식을 한다는거지?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알 수 없는 호기심만 커져 간다.

산디는 우리와 함께 조식을 먹으며 아버지와 친척 어르신들이 오늘 점심 쯤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서쪽에 위치한 아마다바드(Ahmedabad)와는 정반대인 동쪽에 있는 소나무키(Sonamukhi) 출신인 산디. 2000km가 넘는 거리를 기차나 버스로 이용한다면 이틀이 넘게 걸린다며 가족과 친지들은 비행기를 타고 올 것이라는데, 정말 크고 광대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국토 규모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서쪽과 동쪽 사람은 평생 만날 일이 없다고 하는데(그만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음식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럼 인도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 출신들이 결혼 하는 일이 드문 거야?"

산디는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출신지나 인근 지역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신부는 결혼 후 신랑 집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지역과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을 (문화와 언어 때문에) 선호해. 하지만 현재 인도의 젊은 사람들은 직업을 찾기 위해 지역에 상관없이 이동하고 있어. 그래서 최근에는 다른 지역 출신들이 결혼하는 케이스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들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

산디의 말로는 지역에 따라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자신 조차도 소통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굉장히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발음과 억양이 다른 것이 아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 같다는 표현이었다. 실제로 그는 쿠루티의 가족들과는 힌디어(Hindi: 인도의 공용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민족언어)와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는데 구자라트어(Gujarāti:인도 서부에서 사용되는 구자라트주의 공용어)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쿠루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디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언어인 벵갈어(Bengali: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서벵골 주 공용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힌디어와 영어로 소통 중이란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힌디어로도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인도 안에서 공용어로 인정된 언어는 영어를 포함해 약 20개이고, 여기에 사투리까지 포함한다면 수백 개가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말 한 지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같은 인도인이라해도 소통이 될 리 만무했다.

"그러면 너는 도대체 몇 개 국어가 가능해?" 
"벵갈어, 힌디어, 영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인도의 고대어) 조금."

그럼에도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힌디어를 사용할 줄 안다며 보통 중학교 때 배우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처럼 인도 안에서 2, 3개 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쿠루티도 벵갈어를 제외한(대신 구자라트어를 추가) 나머지 언어는 자신처럼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어떤 말을 사용하고 인도에 얼마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는지 알게 된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본디 언어라는 것이 한 집단의 오랜 관습과 생활 체계에서 나타나는 표현 수단이기에, 언어에 따라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수많은 언어 속에 얼마나 다른 모습이 실재할지, 알면 알수록 인도는 더욱 궁금해진다.

신부만큼 화려한 옷차림, '민폐하객'으로 북새통

구자라트 지역에서 결혼 전 실시하는 Mandap Mahurat. 집안에 경사스러운 행사를 가지기 전 가네쉬(코끼리 머리 형상을 한 힌두교 신) 푸자(제사)를 지내는 종교 의식이다. 신랑, 신부 가족들이 번영과 행운을 빌며 예배를 올리는 모습이다.
 구자라트 지역에서 결혼 전 실시하는 Mandap Mahurat. 집안에 경사스러운 행사를 가지기 전 가네쉬(코끼리 머리 형상을 한 힌두교 신) 푸자(제사)를 지내는 종교 의식이다. 신랑, 신부 가족들이 번영과 행운을 빌며 예배를 올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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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오전부터 우리는 결혼식을 위해 쿠루티의 집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하는 기사들이 반사판과 조명을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녔다.사전 예식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문 앞에 서 있자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일일이 촬영에 응했다. 심지어 내 카메라로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어주세요."

아마도 나는 인도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지 않았나 싶다. 거부감 없이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왠지 오늘은 친절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쿠루티의 여자 사촌 제니는 뭐든지 필요한 게 있다면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생글거리는 그녀의 눈빛과 친근한 목소리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빴던 우리는 테자스의 안내를 받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정말 친절한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우리가 아주 특별한 손님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도 사람들은 멀리서 온 손님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 얼굴만 봐도 너희가 인도 사람이 아니란 걸 알잖아. 아마 인도를 찾아준 것에 감사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바라는 마음에서 도와주고 싶고 배려하고 싶은 거야. 너희는 정말 특별하니까." 

테자스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인도로 온 것 뿐인데 본의 아니게 남달라져 있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어느새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와 함께 한 순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다.

사실 처음에는 인도와 인도 사람들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 이유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느껴지는 생경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낯설고 어색한 눈빛으로 날 바라 볼 때는 그 순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하지 못한 공간에서, 내 존재가 새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르다'는 것에 이렇게 큰 혜택이 숨어 있을 줄이야.

사촌에 팔촌,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모인 이런 게 정말 축제가 아닐까 싶었다. 남자들은 주로 금색, 자주색, 남색 등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전통의상을 입었다. 반면에 여자들은 형형색색의 사리(Sari)에 장신구까지, 누가 신부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정말 의상으로 따지자면, 모두가 '민폐하객'일 정도로 호화롭고 다채로웠다.

의식이 진행되기 전 사진기사가 현장의 이곳저곳 분위기를 담아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쿠루티와 산디는 각자가 들고 있던 화환을 서로에게 걸어주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화환을 교환하며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전통 세리머니라고 한다. 화환을 목에 걸친 산디와 쿠루티의 사진 촬영을 마치자, 직계 가족촬영도 이어졌다.

 'Varmala' 이라는 결혼 의식으로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화환을 교환하고 있다.
 'Varmala' 이라는 결혼 의식으로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화환을 교환하고 있다.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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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사진을 찍는 동안 안방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주섬주섬 봉지에 담긴 음식들을 꺼냈다. 사실 이름을 모르는 것들 뿐이라 신기하기만 했는데 약초, 쌀, 꽃 등이다. 우리나라 명절 제사상처럼 아주 간소하게 상을 차리고 있었다.

사진촬영이 끝난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계신 곳 가서 앉았다. 할아버지는 엄지에 빨간 염료를 묻혀 산디와 쿠루티 그리고 쿠루티 오빠 부부의 이마에 찍어주었다. 어떤 종교의식같아 보였는데,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을 앞두고 행운과 번영을 부르는 의미라고 한다.

빨간 점이 새겨진 이마에 쌀 알을 다시 붙였는데, 이것 또한 순조로운 출발을 뜻했다. 어떤 주문같은 걸 쉴 새 없이 말하며, 그릇에 물을 붓고 서로의 손을 맞대는 의식이 계속 되었다. 항상 쿠루티의 오빠 부부가 먼저 시작하고, 산디와 쿠루티는 두 사람을 따라하거나 지켜보았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의식은 특이하게 아이들이 서로의 막대기를 부딪히고 뱅뱅 돌리는 일로 끝이났다. 모든 게 궁금하여 산디의 여동생에게 몇 가지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며 그저 웃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것 같아, 나도 잘 모르겠어."

가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곡물
 가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곡물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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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또 다른 의식이 진행된다며 우리를 불렀다. 그런데 안토니에게는 갈 수 없다며  "오직 여자만 참석이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아쉬워 하는 안토니를 남겨두고 나와 델핀은 밖으로 나갔다. 항아리를 이고 앞장 선 테자스의 부인 뒤로 많은 여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많은 항아리를 모아서 바닥에 놓더니 손가락에 빨간 염료를 발라 항아리 입구에 찍어 발랐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잊을 수 없는 여성들의 항아리 행렬

"당신은 결혼을 했습니까?"

나에게 결혼 여부를 물었다. 기혼자라고 말하니 항아리 앞으로 다가와보라며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와 테자스 부인이 알려주는 대로 항아리 입구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찍어 빨간 점을 만들어보았다. 그렇게 차례대로 찍어 바른 항아리를 테자스의 부인이 이고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항아리에 찍어바르던 붉은염료는 내면의 감정과 지혜로움을 뜻한다. 오직 결혼한 여성만이 참여 할 수 있다.
 항아리에 찍어바르던 붉은염료는 내면의 감정과 지혜로움을 뜻한다. 오직 결혼한 여성만이 참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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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와 구경했다. 덕분에 바깥이 시끌벅적해졌다. 아침부터 집 앞에서 북을 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 북을 산디가 둘러메고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산디는 신나게 북을 두들겼고, 급기야는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뙤약볕 아래 50도를 육박하는 날씨였다. 사람들은 땀을 비오듯 흘려가면서도 춤을 멈추지 않는다. 함박 웃음을 지어가며 뭐가 그리 좋은지, 표정만 보면 세상의 기쁨을 다 가진 듯 보였다. 너무 더워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가도, 어서 춤을 추자며 내 손을 잡아 끄는 즐거운 무리 속에 섞이게 됐다.

점심 식사는 동네 사람들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도록 케이터링(출장요리)을 제공하였다. 즉석에서 짜파티(Chapati:화덕에 구운 평평하고 얇은 빵)를 굽고 도넛 종류의 빵을 튀겨내며 디저트를 포함해 8가지 메뉴를 맛 볼 수 있었다. 아마다바드(Ahmedabad)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라는데, 100% 채식이었다. 정말 의도치않게 어제부터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살고 있다.

신기했던 점은 내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채소를 거부하거나 먹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채식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걸 먹고 어떻게 살지?"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접시에 담겨진 메뉴를 먹으면서, 나는 새로운 식단에 묘미를 느끼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라 그런지 의심과 신기함으로 가득찼다. 여행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이상한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이처럼 고정관념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는 일도 아마 없을 듯하다.

 입맛에 맞는 음식만 다시 골라담았던 두번째 접시. 빵에 찍어먹었던 채소커리와 망고쥬스가 정말 맛있었다.
 입맛에 맞는 음식만 다시 골라담았던 두번째 접시. 빵에 찍어먹었던 채소커리와 망고쥬스가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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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산디의 저녁 결혼식 예복을 사기 위해 쇼핑에 나섰다. 식 당일에 옷을 맞추러 가다니, 지나치게 느긋하면서도 파격적인 스케줄이었다. 신부 측에서 정해 놓은 디자인이 있어서 산디는 색상만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제 인도 전통 의상을 선물 받았던 나와 델핀처럼 안토니도 산디가 옷을 맞추는 사이 오렌지색 전통복을 입어 보았다. 옷에 어울리는 신발까지 신어 본 안토니에게 쿠루티의 삼촌은 자신이 선물하겠다고 말을 건넸다. 멀리 와줘서 고맙다며 옷과 신발을 받아 달라는 그를 안토니는 한사코 말렸다. 하지만 쿠루티의 삼촌은 기어이 옷과 신발 값을 지불했다.

쇼핑을 마치고 바로 식장에 가야 했지만, 나는 어떻게서든 샤워를 하고 싶었다. 시간이 없다는 산디에게 부탁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른 샤워를 마쳤다. 어제 선물받은 레헹가 촐리를 입고서 다시 쿠르티 집에 갔을 때 사람들은 오전과 전혀 다른 의상을 입고 있었다.

오전보다 더 화려한 의상에, 양 팔에는 장신구만 수십 개였다. 반지는 손가락마다 끼워져 있었다. 정말 그 어떤 나라의 사람도 따라갈 수 없는 치장의 극치였다. 인도의 전통 의상을 입은 나와 델핀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유명인사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내일은 사리를 입어보자며 자신의 사리를 들고오겠다는 쿠루티의 사촌들. 아마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가장 비슷할 듯하다. 오전보다 더 많은 사진을, 더 많은 사람들과 찍은 뒤에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열리는 결혼식장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추고도 또 '댄스타임'? 12시간 만에 끝난 결혼식

축하공연 중인 신부의 사촌들
 축하공연 중인 신부의 사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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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ai라는 의식으로 작별을 의미한다. 쿠루티는 저 면사포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천천히 무대 끝까지 걸어나갔다. 자신의 모든 기억들을 반추해보며 이제 곧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될 이별의 시간을 알린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던 순간이기도 했다.
 Vidai라는 의식으로 작별을 의미한다. 쿠루티는 저 면사포 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천천히 무대 끝까지 걸어나갔다. 자신의 모든 기억들을 반추해보며 이제 곧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될 이별의 시간을 알린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던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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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피로연장 같은 분위기. 결혼식은 가족, 친척들과 기념 촬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케이크 절단을 끝낸 신랑·신부가 가족에게 손수 케이크를 먹어주었다. 사회는 쿠루티의 여자 사촌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연신 우리를 '멀리서 온 손님'이라 소개하는 바람에 하객들을 향해 여러 번 인사를 해야 했다.

결혼식은 대부분 하객들의 축하공연으로 이루어졌다. 한 달 전부터 전문 댄서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쿠루티의 여자 사촌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한 곡이 아니라 무려 다섯 곡에 맞추어 각기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살짝 안무가 어긋났지만 각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즐거운 무대였다.

조카부터 시누이, 사촌, 오빠 등 전부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축하 공연을 계속 이어갔다. 쿠루티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대형 면사포 아래서 걷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아마 한국의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남편 측 무대는 산디가 그의 남동생과 함께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쳤다는 춤 선생님까지 멋진 댄스를 선보였다. 그렇게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버렸다.

"모두 댄스 타임! 다들 일어나세요! 춤추세요!" 

계속 나를 춤추게 만드는 친구의 결혼식
 계속 나를 춤추게 만드는 친구의 결혼식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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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틀어놓고 이제부터 약 2시간 동안 춤을 춘다며 쿠루티의 사촌이 다가와 말해준다. 2시간이라고? 놀라서 되물었다. 대답 대신 내 손을 붙잡고 사람들 속으로 끌고 가 버린다. 설마 했는데 정말 끝도 없이 춤을 추는 사람들. 내가 잠시 춤을 추다가 자리에 앉게 되면 귀신같이 쫓아와 다시 춤추게 만든다. 덕분에 쉬지 않고 열심히 몸을 흔들었던 밤이었다.

이렇게 춤을 추다가 하나둘씩 인사를 해 가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워 나갔다.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었던 결혼식은 저녁 10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이 하루는 기억에 남는 일들이 유독 많았다. 산디 이마에 붙어 있는 쌀 알, 항아리 입구에 찍힌 빨간 점, 코끼리 머리 신을 모시던 할아버지, 채식 연회, 항아리 든 여인의 행렬, 화려한 하객 의상, 끝나지 않는 춤사위 등 오전이 종교의식의 체험같았다면 저녁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의 결혼식이 숨막힐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 건 하루를 꽉 채웠던 인도 결혼식을 직접 겪고 난 후유증일테지. 온종일 이어진 기쁨의 향연과 많은 볼거리들 덕분에 정말 특별했던 하루였다. 내일은 또 다른 분위기의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라는데,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버렸다.

끝난 줄 알았더니 이제 시작에 불과했네.


태그:#인도여행, #인도결혼식, #아마다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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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설레며 살고 싶은 자유기고가. 현재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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