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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쿵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습니다. 볕이 잘 드는 남향 객실은 난방이 되는 듯 따스합니다. 침낭을 덮고 누워 오수를 즐깁니다. 몸도 마음도 온기로 가득합니다. 해발 4730 미터 고도인데도 집처럼 편안합니다.

포터의 일당과 건전지 충전 비용

늦은 점심을 하고 추쿵리(​해발 5550m)로 향했습니다. 두 시간이면 다녀 올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여유롭게 출발했습니다. 추쿵 마을 뒷산 언덕이 추쿵리라 생각했는데 착오였습니다. 바다에 떠 있는 유빙처럼 마을에서 보이지 않던 추쿵리가 우뚝합니다. 가이드가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추쿵리를 오르다 바라본 모습
▲ 아마다블람 빙하폭포 추쿵리를 오르다 바라본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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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계가 5000미터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고 바람은 점점 심해집니다. 시간과 준비 부족으로 추쿵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임자체, 로체, 아마다블람이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해발 5000미터는 안나푸르나 쏘롱라(5416m) 이후 5년 만에 다시 접합니다.

가이드와 포터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였습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기에 스태프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이벤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들에게 음식과 술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필요한 것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현금이겠지요.​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에 주고 받는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고 있는 포터 모습.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트레킹은 힘들 것 같음.
▲ 포터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고 있는 포터 모습.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트레킹은 힘들 것 같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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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와 일정을 조율했습니다. 가이드는 "폭설로 인해 꽁마라(5535m)를 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팀들도 모두 포기하는 분위기입니다. 등반대도 아닌 트레커가 목숨을 담보로 히말라야를 걷는 것은 무모하기에 딩보체로 우회하기로 하였습니다.

고도가 오를수록 물가는 상승합니다. 트레커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자는 대부분 카트만두에서 루클라까지 항공기로 운송되며 그 이후에는 야크나 포터의 등짐을 통해 고산지대까지 이동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마시는 차는 네팔리의 노고 덕분입니다.  

건전지 충전을 가이드에게 부탁했습니다. 충전기를 가지고 갔던 가이드가 다시 왔습니다. 주인이 충전 비용으로 1000루피(약 10달러)를 요구해 그냥 온 것입니다. 쿰부 지역은 수력과 태양열 발전을 하여 수도인 카트만두보다 전력이 풍부합니다. 객실 전등은 밤새 불을 켜 놓아도 비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루 숙박 요금이 200루피 안팎이고 포터 일당이 1500루피임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비쌌습니다. 히말라야 4000~5000미터 고지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포터의 일당이 건전지 하나 충전 비용과 비슷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박정헌과 최강식의 '촐라체'

세상에 같은 길은 없습니다. 올라올 때와 내려가면서 보는 세상은 다른 모습입니다. 거대한 협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갑니다. 좌우에는 아마드블람(6814m)과 타보체(6542m), 낭가르창 피크(5086m)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빙하지역이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너덜지대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박정헌과 최강식이 사투를 벌렸던 촐라체(뒤 봉우리)
▲ 타보체와 촐라체 박정헌과 최강식이 사투를 벌렸던 촐라체(뒤 봉우리)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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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보체(4350m)에서 며칠 전 남체(3440m)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패키지 팀을 만났습니다. 한국인 가이드와 두 명의 트레커는 부상과 고소 때문에 카트만두로 하산하였다고 합니다. 히말라야 4000~5000미터 고지를 신체 조건과 고소 적응 능력이 다른 20여 명이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딩보체 뒤편 가파른 경사면을 30여 분을 올라가니 넓은 평원이 있으며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계곡 건너편에는 타보체(6542m)와 촐라체(6440m)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왜소한 모습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모습입니다. 히말라야는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경관이 펼쳐 있습니다. 사전 준비를 했음에도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이드북의 지식과 눈으로 접하는 히말라야는 천양지차입니다.

촐라체는 2005년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곳입니다. 알파인 스타일로 촐라체 북벽을 오른 그들은 하산 길에 최강식이 크레파스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박정헌은 갈비뼈가 최강식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기적적으로 생환하였습니다. 그들은 사고 후유증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 더 이상 등반을 할 수 없지만 삶이라는 또 다른 촐라체에서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포터와의 불협화음

촐라체를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디보체(3820m)에서 인연을 맺은 트레커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를 만나자 포터에 대한 불만을 하소연합니다. 루클라에서 고용한 포터 때문에 고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트레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정을 변경하고 틈만 있으며 임금 인상과 팁을 요구합니다. 고산 지역에서 포터를 교체할 수도 해고할 수도 없어 마음고생을 하며 산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트레커와 악연을 맺은 포터 모습
▲ 포터 우리나라 트레커와 악연을 맺은 포터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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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글라(4600m)에 도착했습니다. 롯지 메뉴에 '신라면'이 보입니다. 중국에서 생산돼 티베트를 거쳐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많이 찾는다는 의미겠지요. 얼큰한 라면으로 점심을 하고 두글라 패스(4840m)를 오릅니다.

두글라 패스는 쿰부 히말라야에 3대 깔딱 고개(?) 중 마지막 관문입니다. 고도가 불과 200미터 차이에 불과하지만 해발 5000미터를 바라보는 곳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삼보일배를 하는 수행자 같습니다. 고산지대에 적응된 야크도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오르지 않고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기에 힘겨운 발걸음은 계속됩니다.​

쿰부 히말라야 3대 깔딱 고개 중 하나인 두글라 패스
▲ 두글라 패스를 오르는 모습 쿰부 히말라야 3대 깔딱 고개 중 하나인 두글라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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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모리(7145m)와 눕체(7873m)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오르고 모퉁이를 돌 때 마다 새로운 봉우리가 반깁니다. 두글라 패스에서 로부제(5018m)까지는 고도의 차가 거의 없어 평탄합니다. 넓은 개활지에는 눈이 덮여 있으며 작은 강물이 실핓줄처럼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두들라 패스에서 로부제로 향할 때 멀리 푸모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음.
▲ 로부제 가는 길 두들라 패스에서 로부제로 향할 때 멀리 푸모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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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작은 물줄기는 갠지즈강을 거쳐 뱅골만까지 여행합니다. 해발 8848미터에서 0미터까지 계곡과 평야를 지나는 길고 긴 여정입니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세상의 모든 강이 바다로 향하는 것은 바다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지친 발걸음을 떼고 있는 저에게 작은 물줄기는 겸손함을 배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추쿵을 떠난 지 8시간 만에 로부제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발 5018m 로부제 마을
▲ 로부제 해발 5018m 로부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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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올해 1월 네팔 쿰부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트레킹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4월 25일 지진의 발생으로 네팔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고 저는 4월 25일 ‘히말라야에 아들 남겨 놓고 하산하는 아버지’라는 기사를 끝으로 멈추었습니다.

네팔의 바람은 예전처럼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네팔 관광청에서는 'Back on Top of the World'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네팔과 히말라야에 관광객들이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기사를 작성을 재개합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쿰부히말라야, #추쿵, #로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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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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