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주노동자가 5일장에서 사 온 물건들이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 이주노동자 장바구니 이주노동자가 5일장에서 사 온 물건들이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어, 이거 어디서 샀어요?"
"시장에서."
"시장 어디? 나도 갔다 왔는데. 얼마?"
"하나 천 원. 시장, 남자 팔아요."

5일장에 갔다가 한국어교실에 온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두 손에 비닐봉지를 잔뜩 들고 나타났습니다. 일주일치 장을 보고 온 그녀의 비닐봉지 안에 든 무화과를 우연하게 본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물었습니다. 그는 아침에 장을 봤는데 무화과를 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여성이 사 온 무화과를 보더니 군침이 돌았는지 다시 장에 간다는 겁니다. 재래시장까지 걸어서 채 십 분도 안 되는 거리인지라,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동행했습니다. 시장 입구에는 머리에 수건을 쓴 등 굽은 할머니가 부추, 콩 등과 함께 한 소쿠리도 되지 않는 무화과를 팔고 있었습니다. 태국 사람은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장 안으로 한참 들어가자, 오십대 초반의 남자가 무화과를 잔뜩 늘어놓은 좌판대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맛 볼 것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무화과는 너무 익어서 많이 물러 보였습니다. 태국 남자는 상인이 권하는 무화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양손을 겨드랑이 밑에 넣고 심드렁하게 가격을 물었습니다.

"하나 천 원."
"비싸요. 만 원 사면 두 개 천 원."
"안 돼. 그래도 많이 사면 조금 더 줄게."
"이거 오래 됐어요. 얼마 못 먹어요."
"알았어. 두 개 천 원. 아~이 새끼, X나게 잘 깎아요."
"아저씨, 그거 욕인데요."
"아, 그냥 친근하게 하려고 한 말이지."

무화과는 저장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장날 다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할 판이었습니다. 상인 입장에서는 덤핑을 해서라도 떨이를 하는 게 손해를 피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태국 남자는 그런 상황을 꿰뚫고 있었던 모양인지 가격을 후려쳤습니다. 상인은 그런 외국인에게 불만이라도 드러내려 했는지 한 마디 했습니다. 그래놓고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욕' 아니냐고 지적하자 친근감의 표시라고 얼버무렸습니다.

물론 무화과를 팔던 상인이 외국인을 무시하거나 악감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의 웃는 얼굴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는 것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장사하던 습관에서 나온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의 말처럼 친근감을 표시했는지 모르지만, 손님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태국 남자는 그런 상황이 다반사였는지 무덤덤하게 계산하고 돌아섰습니다.

친근감과 존중을 표하는 방법을 다를 수 있습니다

무화과는 저장성이 좋지 않아 열매를 딴 직후부터 바로 물러지기 시작한다.
▲ 무화과 열매 무화과는 저장성이 좋지 않아 열매를 딴 직후부터 바로 물러지기 시작한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요즘 재래시장에서 주말에 이주노동자를 보는 일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조금 과장하면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시장에 파리만 날릴 정도입니다. 냉난방이 잘 되고, 다양한 할인혜택과 주차 편리성을 내세우는 대형유통업체와 홈쇼핑, 택배업체를 통해 장을 보는 경향이 강한 한국인들은 재래시장에서 점점 더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 이주노동자들은 접근성에 있어서 자신들에게 좀 더 편리한 재래시장을 애용합니다. 그 결과 중소 지방도시에서 내국인은 대형 유통업체, 외국인은 재래시장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재래시장은 고국에서 보아 왔던 시장과 정서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고, 흥정을 하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익히는 공간이 되기도 하다 보니까, 장을 보면서 만남과 여가를 즐기는 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말을 돌이켜 보면 이제 재래시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장사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 재래시장이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마저 없다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입니다. 즉, 소비자인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재래시장 상권 부활은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래시장 상인들 중에는 돈을 쓰는 소비자,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근하다는 표시로 반말을 하고, 심지어 욕설을 하기도 하는 모습에선 존중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고객으로 모셔야 할 사람들을 여전히 굴러 온 하찮은 돌로, 조금 무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벼운 존재로 취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님은 왕이라고도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손님, 소비자인 이주노동자에게 고마움을 잘 표시하는 것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사는 지혜일 것입니다. 친근하다며 '새끼, X나게 잘해'라는 말은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사장님, 핵노답입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재래시장, #존중, #친근감, #소비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