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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표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표지
ⓒ 공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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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딸 '건드린' 마을아저씨, '제3의 인물'이 나타났다 편에서 이어집니다)

형사는 백희정씨를 조사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백희정씨의 답변은 언제나 엉뚱했다.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한참 뒤 생각났다'며 단편적인 부분을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혼자 웃어댔다. 백희정씨는 담당 조사관보다 잘생긴 형사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형사들은 내부에서 그 형사에게 "(백희정씨가) 너만 찾으니 네가 조사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경찰은 '각티슈'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동네 주민 장영환씨를 용의 선상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형사는 백희정씨가 어느 정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인지했다. 이모인 최숙자씨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형사들은 백희정씨를 조사할 때 최숙자씨도 동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이모는 백희정씨 옆에 앉아 아이 다루듯 달래면서 사건 당시 기억을 더듬게 했다. 경찰은 백희정씨에게 성추행과 더불어 성폭행 피해 여부도 물었다. 처음에는 당한 적이 없다던 희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결국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백희정 고소장 제출
 백희정 고소장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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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성폭행 혐의로 마을 주민 장영환씨를 긴급체포했고 죽은 최명자씨 딸들과 대질 조사를 벌였다. 첫째와 둘째가 먼저 조사를 받았고 백희정씨가 마지막으로 조사실에 들어갔다. 경찰은 조사를 끝내고 8월 18일 강간과 강제추행 혐의로 장씨를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 더불어 백희정씨에 대해서는 '정신지체가 의심된다'는 보고서도 덧붙였다.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자 희정씨는 이모 최숙자씨와 함께 검찰청으로 갔다. 8월 20일 오후 3시쯤 첫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가 쓴 기록을 보면 사건 서류를 받은 지 나흘째 되던 날인 8월 21일 오전, 검사가 사건 수사 기록을 보고 "우리가 한 번 그 사건을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넌지시 말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사건에 흥미를 느낀 검찰
 사건에 흥미를 느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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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검찰 조사는 사흘 뒤인 24일이었다.  경찰은 성폭행 사건만 송치한 것일 뿐 살인사건 수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8월 20일부터 23일 사이, 최숙자씨와 백희정씨는 형사도 계속 만났다. 이모는 당시 형부인 백경환씨를 담당했던 형사가 모두 백희정씨에게도 붙었다고 했다.

형사들은 희정씨가 구속된 장영환씨와 공모했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이모에게 이런 내용에 관해 백희정씨를 떠볼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모가 "장영환 아저씨가 너하고 그랬다고 불었다는데?"라고 묻자 희정씨는 "아닌데!"라고 툭 내뱉었다.

이 시기에 형사가 최숙자씨에게 "구속된 장영환씨 부인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형사는 이모에게 볼펜만한 녹음기를 건넸다. 이모는 조카 백희정씨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얘가 누군지 아세요?"
"밑에 집 희정이인데…"
"아, 그래요? 막걸리 지금 사고 났는데… 싸이나('청산가리'의 일본식 표현) 아세요?"
"하얀색에 동그랗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표현했다. 최숙자씨는 당시 검사에게도 이러한 진행 상황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제 백희정씨가 검찰에 자백하기 전날 상황을 살펴보자.

8월 23일 오후 3시, 이날도 백희정씨는 이모와 순천 경찰서 앞 삼산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당시 희정씨는 경찰이 묻는 질문에 엉뚱한 답변만 했다.

경찰 질문에 엉뚱한 말만 하던 백희정, 검찰에서는 갑자기...

삼산 파출소
 삼산 파출소
ⓒ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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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최숙자씨가 옆에서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희정씨는 수사관 앞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김밥 가게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늦었다"고 했다. 정식 아르바이트도 아니었는데 희정씨는 파출소 옆에 있는 다리에서 울며 방방 뛰기까지 했다. 최숙자씨는 택시를 잡아서 희정씨를 태워 보낼 수밖에 없었다.

택시를 탄 희정씨는 형사들을 향해 "있다가 내가 진짜 말해 줄게요"라고 소리쳤다. 이모 최숙자씨는 "백희정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형사들은 다시 기대에 부풀어 백희정씨를 쫓아갔다. 형사들은 가게 구석에서 희정씨가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가게 일이 끝나자 희정씨는 김밥 사장 김미순씨 친구 가게 오픈 기념식에 간다며 광양으로 가겠다고 했다. 최숙자씨가 말렸으나 희정씨는 울면서 고집을 피웠다. 형사들은 광양까지 따라갔고 회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희정씨는 형사들과 약속은 잊은 채 순천에 있는 김밥가게 사장인 김미순씨 집으로 가버렸다. 이날 백희정씨는 김밥가게 사장과 함께 지냈다.

김밥집 사장 김미순씨는 백희정씨가 엄마가 죽고 나서 말수가 더 줄었다고 기억했다. 또 희정씨가 경찰서에서 오랜 기간 조사받으면서 짜증이 더욱 늘었다고 했다. 종종 "내가 했다고 하고 들어가서 살겠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8월 24일 희정씨는 김미순씨에게 가방과 통장을 맡기고 오후 2시 검찰청으로 갔다. 당시 김미순씨가 우연히 본 희정씨 휴대전화 '카카오톡' 창에는 '푹 쉬고 싶어'라고 적혀 있었다.

순천 법조 타운
 순천 법조 타운
ⓒ 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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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모 최숙자씨는 백희정씨가 오후 2시에 검찰조사를 받으러 간 사실을 몰랐다. 저녁이 돼도 희정씨가 돌아오지 않자 검찰에 전화했다. 수사관은 "금방 돌려보내겠다"고 말했으나 밤 11시가 넘어도 희정씨는 소식이 없었다.

8월 24일 검찰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용의자로 백희정을 긴급체포했다. 백희정씨가 검찰에서 자백했기 때문이다. 25일 '청산가리 막걸리 용의자 검거' 뉴스가 보도됐다. 뉴스를 접한 백경환씨는 "저 년이 일을 저질렀나 보네"라며 방에 들어가 머리를 찧어댔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검사는 백희정씨가 자백한 이튿날인 25일, 순천경찰서에 전화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범인으로 백희정씨를 검거했으니 경찰 수사기록 일체를 넘기라고 지휘한 것이다. 순천경찰서 살인사건 수사팀이 높이가 허리까지 닿을 정도인 서류를 가져왔다.

검찰의 수사지휘
 검찰의 수사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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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관련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백희정은 25일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와 공모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26일 오전, 검찰 수사관들이 자고 있던 백경환씨를 체포했다. 백경환씨는 당일 범행을 인정했다. 백씨 부녀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도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살해 동기는 '부녀 성관계'였다. 백경환씨는 '지난 2009.8.일자불상 밤 12시경 희정 방에서 성관계를 한 번 하였습니다'라고 자백했다.

자백 이후 <그것이 알고싶다> 두 번째 방송

가족의 반발
 가족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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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검찰 수사에 반발했다. 검사는 이모 최숙자에게 왜 언니가 죽었는데 가해자 편을 드느냐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숙자씨는 8월이면 백희정을 데리고 형사들을 만나야 했기에, 순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백희정을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즉, 검찰이 받아낸 자백대로라면 형사들이 백희정을 밀착 마크 할 시기에 '부녀 성관계'를 했다는 말이 된다.

이 시점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한재신 PD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붙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09년 8월 1일, '두 마을의 끝없는 공포 - 청산가리 살해 미스터리'를 내보낸 데 이어 두 번째 방송이었다.

사건의 흐름
 사건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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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신 PD는 순천 아랫시장 국밥집을 찾아다니며 국밥을 먹고 막걸리 3병을 사간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백희정씨가 다녔던 농업 고등학교를 찾아가서는 청산가리에 대해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지 확인했다. 9월 26일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미스터리,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 아버지와 딸은 공범이었나' 편을 방송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쳐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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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신 PD는 마지막 장면에 김밥가게 사장인 김미순씨를 등장시켰다. 당시 김미순씨와 한재신 PD는 백희정씨를 면회했다. 김미순씨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인터뷰했고 쓸쓸하게 돌아가는 뒷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쳐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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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를 향한 동정적인 시선을 강조하는 장면이었지만 검찰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검찰은 이 때 접견 녹취록이 검찰에 유리한 증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 이야기다.

"당시 SBS PD가 김밥가게 아줌마 데리고 가서 얼마나 백희정을 구슬렸는데요, 검찰에서 뭔 일이 있었느냐면서 울고불고 쇼를 다 했어요. 그런데도 백희정은 검찰에서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하잖아요."

이제부터 검찰의 활약을 살펴보자. 검찰은 분명 경찰 수사가 짚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냈다.

(제9화 - '검찰의 활약' 편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구겨진 제복 , #나흘간의 기억 , #경찰 ,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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