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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경영진은 우리 회사보다 규모가 더 큰 셋탑박스 회사를 무리해서 인수했다
▲ 셋톱박스 경영진은 우리 회사보다 규모가 더 큰 셋탑박스 회사를 무리해서 인수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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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능요원이 되어 병역 특례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나는 '이직'을 준비해야 했다. 병역 특례 기준법상 한 회사에서 1년 미만의 근무 경력을 가진 자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회사 사정으로 인한 이직은 허용이 되었다.

곧 대기업 반열에 오를 거라며 잘나가던 우리 회사는 하루 아침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회사 다이어리 1페이지에 보면 우리나라 지도 곳곳에 계열사 현황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돈 버는 사업부는 우리 영상사업본부밖에는 없었다. TV 팔아서 번 돈은 다른 계열사 사업자금으로 쓰기 바빴다.

또한 시장에서 브라운관TV는 이제 '끝물'이었다. 물론 중동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도 우리 회사의 브라운관TV 수요가 많았지만 거기에만 안주해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른 기업들이 PDP, LCD 등 평판 디스플레이 TV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회사는 그 브라운관TV를 놓치 못했다. 그렇게 디지털TV까지도 브라운관TV로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결정적으로 회사 가동이 멈추게 된 원인은 우리 회사보다 더 덩치가 큰 기업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2001년 당시 인천에 있던 모 셋톱박스 전문 회사가 시장에 나왔다. 꽤 규모가 큰 상장 회사였는데 우리 회사 경영진들은 무리를 해서 그 회사를 인수했다.

새로 인수한 셋톱박스 회사와 함께 호주 디지털TV 시장을 공략했지만 무리한 사업확장과 더불어 거듭된 경영난에 인수한 회사로부터 납품받은 셋톱박스 대금 지급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자 생산 라인이 가동되는 날도 점점 줄어 들었다. 일이 없는 날, 생산직 사원들은 출근해서 하루종일 생산 라인 청소하고 휴게실에 앉아 노닥거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관리직 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라도 무안공장에서부터 함께 해오다 외주 업체 공장장으로 발령이 났던 품질경영팀장님과 생산팀장으로 발령 나있던 품질경영팀 조장님도 외주 업체가 문을 닫자 본사로 복귀하셨다. 그렇게 주변이 하나씩 정리가 되어 갔다.

서울 사무소에 근무하는 경영진들은 당연히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1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던 사장님이 그렇게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단지 우리의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나와 같은 병역 특례 사원들이 많았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가끔 우리끼리 모여서 이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하곤 했는데 특례 사원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어린 사원들이었기 때문에 회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보다는 이렇게 한가하게 하루 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즐기고 있었다.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2002년이 지나고 2003년 새해가 밝았다. 남들은 송년회다 신년회다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 회사는 생사의 기로에 서서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새해 첫날인 1월 1일부터 15일간 생산 라인 가동을 공식 중단하고 전체 생산직 사원 및 간접부서 기능직 사원들 모두 보름간 무급 휴가에 들어갔다.

점점 기업의 마지막 모습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집이 근처라 따뜻한 집밥 먹고 출퇴근 하던 특례 사원들은 보름간 출근을 안 해도 된다며 아주 좋아하곤 했지만 나는 입장이 달랐다. 혼자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구미에서 김천까지 오가는 기름값을 빼고 나면 겨우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보름을 무급으로 집에서 쉬어야 한다니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사랑하는 회사를 떠나보내며 새겨진 DNA... '주인의식'

회사에서는 감원 결정이 내려졌고 과장님과 상의한 결과 빨리 이직해서 경력을 쌓기로 했다
▲ 이직 회사에서는 감원 결정이 내려졌고 과장님과 상의한 결과 빨리 이직해서 경력을 쌓기로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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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보름을 보내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지만 회사의 사정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생산직 사원의 70%, 관리직 사원의 30%를 감원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감원 대상에는 병역 특례 사원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 상황에 되자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끝까지 회사에 남아 있어보든지 아니면 이직을 하든지. 당시 나의 멘토였던 과장님께 의견을 여쭌 결과 사정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으니 빨리 다른 곳에 이직해서 더 경력을 쌓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우리 회사는 기업의 마지막에 서 있으면서도 떠나보내는 사원들에게 '의리'를 지켰다. 이직 할 만한 기업의 리스트를 뽑아 주기도 했고 관리직 사원들의 인맥을 활용해 이직할 곳의 관리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잘 봐달라'고 부탁해주기도 했다. 나는 회사의 지원과 상관없이 집에서 멀지 않은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마지막까지 멋있었던 우리 회사의 모습에 감격했다.

나는 지금까지 기업의 '마지막'을 많이 경험했다. 병역 특례를 받기 위해 구미로 올라오기전 부산에서 일하던 회사도 경영난에 허덕이며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회사가 힘들어지면 직원들도 힘들어진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마지막을 여러번 경험한 나에게는 그들과 다른 DNA가 생겼다. 바로 '주인의식'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처럼 사원들을 교육시킬 때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말을 내뱉는 그 사원마저도 자기가 편할대로 행동하고 자기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회사 전체를 생각해서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내가 더 불편해도 꼭 그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이런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한다고 생각하거나 '피곤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테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그 방법이 전체의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록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충고를 하더라도 삐딱하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직장인이 가져야 하는 주인의식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런 것이다. 단지 종이 좀 아껴쓰고 비용 얼마 줄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우리 회사가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끝에서 함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혹독하게 내 몸에 새겨준 DNA.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주인의식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경영, #감원, #생활고, #이직, #주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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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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