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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①] 인천 연수구의 한 대형마트, A씨는 어머니의 심부름 때문에 일요일 오후 마트에 들렀다. 길게 줄이 늘어선 계산대, A씨 앞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이주노동자 둘이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불할 액수를 알려준 직원이 그들에게 물었다. "포인트 적립하시겠어요?" 두 이주노동자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둘은 점원에게 뭐라고 물어봤는지 재차 묻는다.

A씨를 비롯해 뒤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사람 많은데 뭐하는 거야'라는 눈빛. 두 이주노동자는 포인트를 적립하지 않았고, 이내 뒤에서 기다리던 A씨에게 "미안해요"라고 말한 뒤 황급히 사라졌다.

[장면②] 영국 맨체스터의 한 가전기기 매장. 한 남자가 하자가 있는 랩톱 컴퓨터를 교환하러 왔다. 그 남자는 전날부터 달달 외운 멘트를 문제없이 쏟아낸 뒤 새 제품을 받았다. '이제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직원이 물었다. "우리 매장에 나오는 신제품 정보를 이메일로 받아보시겠어요?" 그 남자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말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겨우겨우 "홍보 이메일은 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그 남자는 자신의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백인 중년 여성에게 그 남자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왜 당신이 미안해야 하죠?"

당신을 녹여드립니다...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위 사례에 등장한 A씨와 '그 남자'는 나다. 사람은 같은데 행동은 달랐다. 인천 연수구에서는 누군가를 의아하게 혹은 불편하게 쳐다봤고,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했을까봐 스스로 노심초사했다. 다수에 속한 곳에서는 편견으로 대상을 바라봤고, 소수에 속한 곳에서는 스스로에게 편견을 낙인 찍었다.

나는 이 경험을 한 뒤부터 사람을 바라보는 데 편견을 걷어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머릿속 다짐과 몸으로 하는 실천 사이에는 여전히 넓고 넓은 간극이 있다. 경험이 미천한 탓이었을까, 아는 게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선입견이라는 건 잘 깨지지 않기도 하고, 어떤 영역에서는 되레 더 견고해지기도 했다.

최근 편견 혹은 선입견이라는 이름을 가진 머릿속 얼음성을 시나브로 녹인 책을 만났다.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서해문집)이 바로 그것. 강윤중 <경향신문> 기자가 찍고 썼다. 이 책에는 <경향신문> 포토다큐에 실렸던, 한국 사회 16개의 편견이 담겨 있다.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는 무척 친절하다. 강윤중 기자는 이론으로 무장한 망치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부수려 들지 않는다. 또 당위라는 이름의 드릴과 톱으로 얼음성 같이 견고한 편견을 구멍 내고 썰어버리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라는 따뜻한 물로 포근하게 얼음벽을 녹여버린다.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 직접 읽어보는 것이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낫겠지만, 이 지면을 빌어 강윤중 기자가 어떻게 편견을 녹이는지 옮겨보고자 한다.

① 화장한 여성장애인, 당신의 머릿속은?

눈썹을 그리고 볼터치를 한 중증 여성 장애인이 립스틱을 바른다. 감히 추측해본다. 당신의 생각을. '아니, 어떻게 했지?'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왜 화장을 하는 거지?' 대략 이 정도 될 법하다. 자, 이제 그럼 아래 사진을 보자.
여성 장애인 윤수씨가 립스틱을 바른다. 불편할 것 하나 없다. 이상하게 볼 것 하나 없다. 윤수씨도 "예뻐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니까. ⓒ 강윤중
외부 강의 나설 때 입는다는 재킷으로 한껏 멋을 부린 윤수씨. 그녀가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한복 모델'이란다. 그리고 훗날 장애인 활동 보조인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꿈도 갖고 있다. ⓒ 강윤중
스스로를 가꾸는 데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필요 없다. 더 확실한 '편견 녹이기'를 위해 강윤중 기자가 인터뷰한 여성장애인 윤수씨의 말을 옮긴다. 이보다 적확한 설명은 없을 것이므로.

"누군가는 장애인이 화장하거나 옷을 차려입으면 겉멋이라며 아이 대하듯 쉽게 말해요. 장애인이기 전에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예요."(230쪽)

② "사장님 나빠요"와 "욕하는 직장 싫어요"의 차이

한 시절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한국인에게는 웃음을 유발하는 소재로 이주노동자가 쓰였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가 TV 속에서 봐왔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누군가는 "욕하는 직장 싫어요, 새벽까지 일해서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욕까지 들으면 너무 힘들어요"(146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후 10개월 된 딸아이를 보고 싶어서 사진만 어루만진다. 우리는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투에 웃었지만, 정작 왜 사장님이 나쁜지는 들여다보지 않은 것 아닐까.
"인마!" "새끼야!" "욕하는 직장 싫어요." 누가 이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바로 '한국인'이다. ⓒ 강윤중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사디 푸트란토씨(24)는 문서로 '한국인의 사고와 정서'를 배우고 있었다. 그가 아는 한국말의 전부는 "네, 아니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빨리빨리"였다. 그중 "빨리빨리"를 가장 정확하게 말할 줄 알았다. ⓒ 강윤중
③ 전기장판에 이불 덮고 수업하는 선생님과 아이들, 비정상일까

당신이 '전교생이 2명인 시골 분교'라는 설명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똬리를 틀까. '아이들이 외롭겠네' '아이들이 공부는 제대로 할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강윤중 기자는 책을 통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제 초등학교 가리산 분교의 학생은 세욱이와 선빈이, 단 두 명이다. 그리고 그 둘을 온종일 가르치는 선생님은 오세황 교사, 단 한 명이다. 이 셋은 전기장판 위에 한 이불을 덮고 국어 수업을 하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야외 수업을 나가기도 한다. 뜻을 모아 송사리를 잡아오기도 한다.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 놀이와 공부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내신 성적보다 "아이들이 애써 채집해 온 개구리알이 무사"(174쪽)하길 바란다. 우리는 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인제 초등학교 가리산 분교에 다니는 선빈이와 세욱이, 그리고 오세황 선생님. 이 셋에게 공부란 놀이고, 놀이란 곧 공부였다. ⓒ 강윤중
날씨가 춥자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한 이불을 덮고 수업을 진행하는 오세황 선생님. 강윤중 기자는 이렇게 적어놨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보다 아늑하고 멋스런 분위기가 있을까"라고. ⓒ 강윤중
돌격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의 저자 강윤중 기자는 편견에 정면으로 돌격하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편견 속에 놓인 사람들을 담아내지도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때로는 혼나기도 하면서 그들의 삶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한 편견을 '사람'이라는 피사체로 드러냈다. 강윤중 기자는 편견을 녹이기 위해 카메라에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고, 펜촉에 사람들의 속내를 묻혀 글로 써내려갔다.

강윤중 기자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탄광 노동자, 무슬림, 게이 커플, 철거민, 무연고 장애인 가족 등으로 향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과 늘어지지 않는 문장으로 편견을 서서히 녹인다. 책 중간 중간에 '감성지식'이라는 코너도 있는데,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진실은 아니다. 불편하다고 일컬어지는 대상, 자주 보면서도 외면했던 대상들을 진솔하게 드러낸 강윤중 기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지 않을 기회를 줘 고맙다고.
세계적인 사진가 존 스탠마이어가 찍은 강윤중 기자. 그리고 책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표지. ⓒ 존 스탠마이어·서해문집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강윤중 / 서해문집 / 2015.11.10 / 1만3900원)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 낯선 생각을 권하는 가장 따뜻한 사진

강윤중 글.사진, 서해문집(2015)


태그:#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강윤중, #경향신문, #편견,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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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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