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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건물 입구에서 안쪽을 올려다본 모습.
 임시정부 건물 입구에서 안쪽을 올려다본 모습.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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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빠져나오니 열기가 훅 몰려들었다. 충칭을 중국의 3대 화로(火爐) 중의 하나라고 한다더니 과연 빈 말이 아니었다. 숯불을 담아두는 화로처럼 충칭 역시 태양열을 모아두는지 조금만 걸어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더위를 느낄 사이도 없었다. 생전 처음 하는 배낭여행인지라 바짝 긴장해서 더운 줄도 몰랐다.

예약을 해둔 호텔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여 가면 된다. 도중에 한 번 갈아타야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 사실 충칭은 우리나라와 크기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큰 도시다. 인구 또한 삼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나라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그러니 한 시간 정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어느새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땅, 동지애로 뭉치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잘 갖춰져 있고 테러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나라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말을 들어도 그저 그런 양 생각했는데 필리핀을 가보고는 우리나라가 정말 안전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큰 건물 입구마다 총을 든 경비가 서 있었다. 일상 가까이에 총이 있는 것을 보자 새삼 필리핀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것을 보았다. 지하철이나 기차역 같은 곳으로 들어가려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금속 탐지 검색대가 지하철과 기차역에도 다 있어서 가방과 소지품을 일일이 검색한다. 중국 사람들은 그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았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했지만 당황스럽고 귀찮았다. 

임시정부 입구
 임시정부 입구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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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절차들을 다 거치고 무사히 지하철을 탔다. 그제야 마음을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충칭의 지하철 안 풍경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었고 나이 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참동안 사람 구경을 하다가 안내방송에도 귀를 기울여봤다. 혹시라도 내릴 역을 지나칠까 싶어 안내도를 보며 확인에 또 확인을 하면서 안내방송을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큰일 났다. 이 실력으로 무슨 배낭여행씩이나 하려고 한단 말인가. 하지만 주의해서 듣다보니 조금씩 말이 귀에 들어왔다. 중국이라고 우리나라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다음에 내릴 역은 어디 어디입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일 게다. 눈치로 알아들은 중국말 한 마디에도 힘이 부쩍 났다. '그래, 어려울 것 없어, 할 수 있어'라는 뜻을 담아 남편을 바라보니 그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마주보는 눈빛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청년 장준하와 임시정부

우여곡절 끝에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서자 마치 내 집에라도 온 양 마음이 다 놓였다. 겁없이 배낭여행을 나섰지만 우리는 사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세 살짜리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아는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와 '씨에씨에'가 전부나 마찬가지이니, 이 넓은 대륙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어느새 우리 부부는 동지애로 똘똘 뭉쳐 있었다.

임시정부를 보러가야 한다. 중경에 왔으니 첫 순위로 임시정부부터 봐야 한다. 그래서 짐을 풀자말자 밖으로 나왔다. 한 시가 급했다.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혹시 입장시간에 늦어 못 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임시정부는 상해와 항주, 기강 등지를 거쳐 1940년 중경에 도착하였다.
 임시정부는 상해와 항주, 기강 등지를 거쳐 1940년 중경에 도착하였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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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려 오 분이나 걸었을까, 드디어 반가운 안내판이 보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 가슴이 뛰었다. 70년 전인 1945년 1월 31일, 임시정부 하나만을 보고 장장 6천 리를 걸어서 이곳에 온 젊은이들을 그려보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임시정부 청사를 보니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고 장준하 선생은 말했다. 그곳을 지금 눈앞에 두고 있으니 어찌 설레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뿔싸, 임시정부 청사의 문이 닫혀있다. 입장시간이 지났나 보았다. 다른 날에 다시 오면 되지만 빡빡한 여행 일정 속에 다시 시간을 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을 텐데, 큰일이다. 낭패스런 얼굴로 굳게 닫혀있는 임시정부 청사의 대문을 기웃대는 우리가 딱해보였는지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던 중국 사람이 안내판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한다. 그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월요일이었다.

가슴 속의 등불, 임시정부

그것도 모르고 기를 쓰고 달려왔다. 어차피 오늘은 볼 수 없었는데 혹시라도 입장 시간에 늦어 못 보게 될까 봐 뛰다시피 빨리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날에 오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호텔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니 따로 하루 시간을 내지 않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느긋해져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우리나라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헌법의 첫 머리인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중략)'였다고 나와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1919년 4월에 만들어져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역사가 약 백 년이나 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암담한 상황에서도 내일을 도모한 선열들의 분투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는 것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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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5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마지막 청사이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를 계기로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서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지를 거쳐 1940년 중경에 도착하였다.

중경 임시정부는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 등으로 옮겨 다니다 마지막에 이곳 유중구 칠성강 연화지 38호에 정착하였다. 이 연화지 청사에서 임시정부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하략)'

휘날리는 태극기, 벅찬 감동

일제의 압박을 피해 중국 대륙의 이곳저곳을 떠돌았을 망명객들의 고단한 발걸음을 그려보았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암담한 세월을 견딜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조국의 독립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밖에서 본 임시정부 건물.
 밖에서 본 임시정부 건물.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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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국에서 풍찬노숙의 나날을 보냈을 독립투사들에게 이곳 충칭의 임시정부는 등대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따라 중국 대륙을 횡단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장준하 선생과 동지들이다. 선생은 일본군으로 끌려갔던 그날부터 탈출을 도모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숨을 걸고 실행에 옮겼고 6천 리를 걸어 임시정부를 찾아왔다. 1945년 1월 31일, 이곳 중경임시정부에서는 감격에 겨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렇다 그것은 태극기였다. (중략) 임정 건물 위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점점 확대되어 보였다. 휘날리는 기폭마다 나의 뜨거운 숨결이 휩싸여 안겼다. 그리고 태극기의 기폭은 임정 청사가 아닌 조국의 강토를 뒤덮고 있었다.

물결치는 기폭 아래 두고 온 조국의 산하가 떠올랐다. 아니, 나의 조국에 지금 이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환상이었다. 그토록 경건한 기의 상념이 거룩한 조국의 이미지 위에 드높이 춤추고 있었다.'

장준하 선생이 쓴 <돌베개>를 읽으면서 그렸던 임시정부 청사를 마주보고 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본 순간 온 몸이 마비되는 듯이 굳어졌다고 했다. 피가 뛰고 혈관이 좁아졌던 그때의 감격스런 순간을 그려보면서 임시정부 청사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태그:#중경임시정부, #임시정부, #장준하,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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